항공업계가 일부 블랙 컨슈머(악덕 소비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상악화에 따른 항공기 지연 출발은 보상 대상이 아니지만, 숙박비와 교통비는 물론 추가적인 보상금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식이다. 일각에서는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만든 소비자 분쟁조정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단 지적도 나온다.
2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항공사들의 다자간 조약인 몬트리올 협약에는 항공사의 면책 범위로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조치를 다하거나, 합리적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단 것을 증명한 경우 (항공사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 상법 역시 몬트리올 협약에 맞춰 "손해 방지를 위한 합리적 조치를 다했거나, 그 조치가 불가능했단 것을 증명할 때 책임을 면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항공사업법에서도 기상악화나 안전운항을 위한 정비, 천재지변 등에 대해서는 면책한다.
하지만 이 같은 면책 조항에도 국적 항공사들은 정비로 인한 지연편 탑승객에게도 보상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지연 시간에 따라 식비와 교통비, 숙박비 등을 제공한다. 일부 해외 항공사가 정비로 인한 비정상 운항에 대해서는 보상을 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항공사 관계자는 "면책 조항에도 불구하고 국내 항공사들은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보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무리한 보상을 원하는 이용객이 있어 소비자 분쟁 조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대한항공에 접수된 소비자 분쟁조정 접수 건수는 23건이다. 이 중 12건은 환불 위약금 또는 환불 서비스 수수료를 면제해달란 요청이며, 8건은 정비에 따른 지연 보상 요구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항공권을 연기 또는 취소했음에도 위약금이나 수수료를 면제해달란 요구가 대부분이란 게 대한항공의 설명이다. 취소 시 수수료가 많은 특가운임의 경우에도 수수료를 면제해 달라는 요구도 많다.
초법적인 요구를 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소비자 피해 접수 건수로만 소비자실태조사가 이뤄져 블랙컨슈머를 제대로 구분해내지 못한단 지적도 나온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지난해 항공교통서비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항공 관련 피해구제 현황은 ▲2013년 528건(증감율 33.3%) ▲2014년 681건(29.0%) ▲2015년 900건(32.2%) ▲2016년 1262건(40.2%) ▲2017년 1252건(0.79%)으로, 지난해를 제외하곤 매년 30% 가까이 증가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들 중 실제 피해를 입은 것보다 더 많은 보상액을 요구하거나 정해진 법률과 기준을 근거한 것이 아닌 막무가내식 요구가 많다"면서 "현 조사 방식으로는 블랙컨슈머를 선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로지 접수 건수로만 분석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고시 등을 개선해 정비 면책 조항 문구를 수정하고, 항공권 수수료 부과 관련 약관을 점검하는 등 항공사와 이용객 양측의 권익 증진에 나서고 있다. 항공사들은 이에 맞춰 항공사 귀책으로 탑승을 못할 시 제공하는 보상금을 증액하는 등 승객의 권리 향상 요구를 받아들이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비자 피해구제 접수 건수가 늘어나자 일각에서는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 조정 기능이 일부 블랙 컨슈머의 요구 창구로 악용되고 있단 주장이 나온다. 막무가내식 요구와 합리적 요구를 구분할 필요가 있단 설명이다.
미국의 경우 미 교통부의 항공여행 소비자 가이드에는 "정시 운항을 불가능하게 하는 많은 요소가 있지만 기상악화, 항공 교통 지연, 정비 문제 등은 예측하기 어렵고 항공사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며 항공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구분해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가 막무가내식 요구를 수용하면 손실을 줄이기 위해 결국 선의의 이용객까지 피해가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며 "구제 범위가 늘어날수록 이와 관련하 사회적 비용이 늘어 결과적으로 소비자 전체에 대한 불이익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뉴스국 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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