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 실적이 되살아나고 있지만 지난해 겪은 최악의 발주 가뭄의 여파로 당분간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해부터 강하게 추진해온 구조조정 여파로 인력 유출도 심각한 상황이라 정작 최근 수주한 선박을 지을 때 일할 사람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1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한달동안 한국 조선업체들은 145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선박의 건조 난이도를 고려한 무게 단위)의 일감을 따내 중국(89만CGT)을 제치고 월간 수주실적 1위에 올랐다. 올해 누적으로 따지면 한국은 504만CGT의 일감을 확보해 509만CGT의 중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올해 들어 선박 발주 시장에 온기가 돌면서 지난달 말 기준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잔량은 전달보다 68만CGT 늘어난 1665만CGT로 집계됐다.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잔량이 늘어난 건 지난 2015년 10월 이후 23개월만이다.
하지만 당분간 조선업체들은 매출과 이익이 동반 감소하는 보릿고개를 넘어야 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집계된 현대중공업의 3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 전망치는 각각 4조1049억원과 935억원이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현대중공업의 3분기 실적이 매출은 반토막(-53.6%), 영업이익은 세토막(-70.9%) 이하로 줄어든다고 본 것이다.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도 매출(-35.3%)과 영업이익(-63.4%)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활기가 도는 선박 발주 시장 분위기와 달리 조선업체들 실적 전망이 암울한 이유는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된 수주 절벽이 이제 실적에 반영되는 데 있다. 조선업체들은 선박을 수주하면 설계 과정을 거쳐 실제 배를 짓는 1~2년여 뒤부터 공정 진행률에 따라 매출을 인식한다.
문제는 조선업체들의 실적 규모가 축소되는 현상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수주량은 전년(1100만CGT)의 5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는 216만CGT에 불과했다. 올해 수주한 물량의 설계가 끝나기까지 약 1~2년동안 이번 3분기보다도 부진한 실적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가능하다.
이에 조선업체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종훈 의원은 조선해양플랜트협회로부터 받은 자료를 인용해 조선·해양 산업 종사자 수가 올해 상반기에만 약 3만5000명 감소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하반기에도 이 같은 추세로 구조조정이 이뤄진다면 조선·해양 산업 종사자가 얼마나 남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구조조정이 시작된 지난 2015년에만 국내 조선 빅3에서 연구·개발(R&D), 설계, 생산관리 등 핵심 인력 1000여명이 퇴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일본으로의 인력·기술 유출이 우려되기도 했다.
조선소 현장의 생산 인력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선박 건조는 아직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할 일이 많고, 경험이 얼마나 쌓였느냐에 따라 품질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을 위해 경험 많은 현장 인력을 회사에서 내보내면 최근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야 하는 1~2년 뒤 배를 지을 숙련 노동자가 부족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를 바닥으로 조선업황이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현재 규모를 계속 유지할 정도는 아니다"며 "지난달 수준의 수주 실적이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구조조정을 통해 매출 규모도 줄이기로 한만큼 호황기 때의 인력 구조를 유지하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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