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정우현 전 MP그룹(미스터피자) 회장이 업무방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 이준식)가 MP그룹 본사 등을 압수수색한지 딱 보름만이다.
정 전 회장은 친척·친구가 세운 회사를 통해 가맹점에 치즈를 시중가보다 비싸게 공급하면서 일명 '치즈 통행세'를 물렸고, 탈퇴 가맹사업자의 매장 근처에 일부러 점포를 내는 '보복 출점'을 하는 등 불공정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은 2015년 초 전 미스터피자 가맹점주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이미 신고했던 것이다. 당시 신고·항의했던 가맹점주들은 부당하게 가맹계약을 해지당했고, 보복출점을 당한 점주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년반 가까이 계속되던 비극은 마침내 검찰의 손에 의해 종지부를 찍게 됐다.
공정위가 직권조사 후 2년을 넘게 끌었던 사건을 검찰이 보름만에 정 전 회장을 구속시키는 등의 성과를 낸 까닭은 무엇일까. '검찰이 유능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공정위가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업계와 관계당국의 공통된 시각이다.
2015년 초 미스터피자 가맹점주들은 가맹본부가 광고비를 일방 전가하고 시중 가격보다 비싼 값에 치즈를 판매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미스터피자는 물론이고 다른 프랜차이즈 업체의 갑질이 만연하던 때였다. 여론을 의식한 공정위는 그해 3월 미스터피자를 시작으로 프랜차이즈업체 전반에 대한 직권조사를 진행했다. 그뿐이었다. 조사에 들어간지 2년 4개월이 지났지만 공정위는 미스터피자에 대해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고 사건파일을 덮어높았다.
그동안 미스터피자 가맹점주협의회 소속 점주들은 본사에서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고 상생협약을 지키지 않는 미스터피자에 항의하면서 길거리에서 농성했다. 미스터피자 체인을 탈퇴한 후 "본사 갑질에서 벗어난 피자 협동조합을 만들어 좋은 품질의 피자를 제 값에 팔겠다"며 독립매장을 열었던 이 모씨는 미스터피자가 보복성으로 인근에 매장을 열면서 영업이 어려워지자 결국 지난 3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온 미스터피자 점주협의회 대표는 "본사와 상생협약을 체결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부풀려진 식자재 가격, 부당한 광고비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단순하게 봐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판단'은 그로부터 더 길어졌다.
공정위는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정부 3.0에 코드를 맞춘 '사건처리 3.0' 대책을 발표하며 원칙적으로 6개월 이내 사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비공개 내부지침에만 기재돼있던 사건처리기간을 공개 지침에 명시하고 6개월 이내에 처리하지 못할 경우 사무처장의 인가를 받아 연장할 수 있고, 지연이 계속될 경우 감사담당관실 등에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미스터피자 가맹점주들이 이 내용을 근거로 사건을 빨리 처리해달라고 공정위에 민원하자 "이 사건은 사건처리지침 발표 이전 건이어서 6개월 이내 할 의무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한 가맹점주는 공정위에서 이 일을 맡았던 직원을 '미꾸라지'로 표현하기도 했다.
공정위의 사건처리 시계가 느리게 돌아가는 동안 프랜차이즈 등 갑질 관련 분쟁·사건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은 9일 올해 상반기 가맹사업거래분야에서 356건의 분쟁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2% 늘어난 규모다. 이 추세대로라면 최근 3년간 매년 500여건 수준이던 가맹사업 관련 사건은 올해 700건을 넘어설 전망이다. 가맹본부의 허위·과장정보공개, 정보공개서 미제공 등 불공정행위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관련 분쟁도 급증한 것이다.
같은 기간 일반불공정거래 분야에서도 전년 대비 96% 늘어난 358건의 분쟁이 처리됐다. 일반불공정거래분야 내에서도 '거래상 지위를 남용한 불이익제공 행위'가 171건으로 전체의 47.8%를 차지했다. 민간의 거래행위 전반에서 '갑질'이 횡행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일반불공정 사건의 상당수는 대리점 관련 분쟁이 차지하고 있다. 공정거래조정원은 "대리점거래 관련 분쟁이 증가하는 추세인데 대리점법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 일반불공정거래 사건으로 분류돼 관련 사건이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전체적으로는 상반기동안 1377건의 분쟁이 접수돼 1242건이 처리됐다. 전년동기대비 각각 19%, 28% 늘어난 규모다.
조정원의 상반기 평균 분쟁처리기간은 43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2일에 비해 11일가량 늘어났다. 2015년 상반기(40일)에 비해서도 분쟁조정에 걸리는 기간이 다소 늘어난 셈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6일 취임 후 첫 정책행보로 '공정위 신뢰 제고 방안'을 발표하면서 공정위의 조직혁신이 외부 개혁보다 앞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가 그동안 사건처리를 지연시키고, 청와대 등 권력자의 눈치를 보고, 전관예우로 스스로 논란을 자초하는 등 연이은 과오를 저지르며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당시 "조만간 지난 10년간 공정위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국민들께 사과드리겠다"고 말했다.
[석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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