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수많은 군중 사이에서 아는 얼굴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빠른 눈동자의 움직임만 있으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연한 듯 보이는 일이지만 과학자들에겐 골머리를 앓는 일이었다. "대체 왜 인간은 얼굴 인식을 이토록 빠르게 할 수 있을까." 수만 기보를 외운 알파고보다 뛰어난 인공지능도 이처럼 사람의 얼굴을 빠르고 정확하게 인지할 수는 없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에서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미국 연구진이 원숭이의 뇌를 연구해 '힌트'를 찾아냈다.
리 창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생물·생명공학과 교수와 같은 학과 도리스 타오 교수 공동 연구진은 뇌가 얼굴을 인지할 때 여러개의 신경세포가 얼굴 곳곳을 확인한 뒤 종합적으로 인지한다고 밝혔다. 연구결과는 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셀' 1일자에 게재됐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뇌가 얼굴을 인지하는 메커니즘을 두가지로 설명했다. 얼굴 인지에 관련된 뉴런이 개별적으로 활성화된다는 가설과 뉴런의 집단이 동시에 움직이며 인지한다는 가설이다. 두 가설 모두 실험적 증거가 부족해 학계에서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데이비드 레오폴드 미국국립정신건강연구소 박사는 학술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전자는 개별적인 세포가 개개인을 인식한다는 가설"이라며 "후자는 그룹으로 이루어진 뉴런이 얼굴을 인식하기 위해 함께 일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얼굴인식에 관여하는 세포를 '얼굴세포(face cell)'라고 부른다. 이 얼굴세포는 안면에 있는 특정한 조합을 파악한 뒤 이를 자신만의 암호로 인식한다. 컴퓨터가 0과 1일이라는 숫자로 정보를 전달하듯 얼굴세포 역시 자신만의 언어로 얼굴의 특징을 인지하는 것이다. 타오 교수는 "얼굴세포가 안면에 있는 특정한 조합을 파악하는 코드를 해킹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먼저 히말라야 원숭이 두 마리의 뇌를 분석했다. 원숭이에게 사람의 얼굴은 물론 과일이나 사람의 신체 등 랜덤한 패턴을 갖고 있는 사물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이후 '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이용해 사람의 얼굴을 봤을 때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지 관찰했다. 얼굴에만 반응하는 부위가 바로 얼굴세포가 있는 곳이다.
'핫스팟'을 찾은 두 과학자는 서로 다른 얼굴을 갖고 있는 2000명의 사진을 보여주며 얼굴세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관찰했다. 이후 원숭이의 뇌에 전극을 심고 다른 얼굴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 뉴런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두 마리 원숭이의 뇌에서 총 205개의 뉴런 반응이 나타났는데 각각의 반응은 특이한 안면 모양과 연관이 있었다. 예를들어 A라는 뉴런이 눈과 눈 사이의 거리에 크게 반응한다면 B라는 뉴런은 얼굴의 길이에 특히 활성화됐고, C라는 뉴런은 코와 인중의 크기에 초점을 맞춰 반응하는 식이다. 연구진은 이를 이용해 시각피질에 존재하는 뉴런의 반응지도를 만들었다.
레오폴드 박사는 "뇌는 얼굴을 인식할 때 종합적 분석을 통해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뇌는 안면 탐지기가 아닌 안면분석기"라고 말했다. 타오 교수는 "인간의 뇌 역시 이같은 과정을 거쳐 얼굴을 인식하거나 상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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