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발표한 '2017년 대외경제정책방향'의 초점은 G2(주요 2개국) 관리에 맞춰져 있다. 미국에는 경상수지 흑자를 줄여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하고, 중국과는 민관 경제협력을 강화함으로써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에 따른 각종 보복 조치에 대응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총론'만 있고 '각론'은 없는 수준이라 커져가는 미·중 불확실성을 가시적으로 줄이기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다.
◆ "필요하면 대표단 방미"…구체적 대책·일정 없어
정부는 대미(對美) 경제정책을 구상하면서 환율조작국 지정 방어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대응에 무게를 실었다. 미국산 셰일가스 280만t에 이어 항공기, 자동차,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등도 수입해 무역 흑자를 줄여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겠다는 심산이다. 이를 위해 수입 기업에 정책자금 등 금융 지원과 세제 혜택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품목에, 어느 정도 혜택을 줄지는 계획이 서 있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규모가 크고 부가가치가 큰 장비들을 들여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 때 정부가 도와줄 방안들을 검토하겠다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 재협상은 곧 현실화할 위험인데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대응하겠다"는 방침만 세웠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예상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면 장차관부터 실무자선까지 현재 가동 중인 소통 채널을 활용하면 충분하다는 판단 하에 선제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이나 일정을 언급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범부처 대표단을 미국에 보내겠다"는 정도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대미무역흑자를 줄이고 인프라시장 진출을 돕는다는 건 여전히 불투명하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소프트웨어, 제약 등 일찍부터 제기된 한미FTA 관련 미국 측 요구사항 대응을 명확히 하고, NAFTA 재협상 분석단을 꾸리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 대중 정책, 사드 보복 해결책 없이 교류·협력만 외쳐
대중(對中) 정책은 더 알맹이가 없다. 정부는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교류·협력을 강화하겠다"고만 밝혔다. 이날 내놓은 대중 경제정책은 △한중경제장관회의 등 소통·협력 강화 △양·다자 채널 동원 비관세장벽 적극 협의 △한중 국제학술대회·문화공연·특별전시회·대학생 교류 확대 추진 등이 전부다.
지난 10일 국내 화장품 19개 제품의 중국 내 통관이 불허되고, '한한령(限韓令)'이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되며 지난 24일에는 급기야 성악가 조수미 씨와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의 중국 공연이 일방적으로 취소됐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오히려 중국 이미지에 타격이 가서 손해 아니냐. 정부가 시비를 걸고 따질 일이 아니다"며 문화·예술 영역에 정부가 개입하는 건 부정적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7일 매경이코노미스트클럽 강연에서 "중국이 일련의 조치를 취하하면서도 사드를 공식적인 이유로 언급하지 않아 우리 쪽에서도 문제제기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드와 관련한 현상은 잘 알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어 사실상 속수무책인 지금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CIMM 가용 자금 960억달러 확대…1조 브랜드 3개 추가 육성
한편 정부는 대미·대중 경제정책 외에 역내 금융안전망인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M)에서 국제통화기금(IMF)와의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회원국에게 지원할 수 있는 한도를 720억달러에서 960억달러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외화자금을 늘릴 계획이다.
화장품·의약품, 패션·의류 등 5대 소비재 분야에서 1000만달러 이상 수출하는 기업을 80개 키우고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같은 매출 1조원 브랜드도 추가로 3개 육성하기로 했다. 유선·위성 방송업 등 28개 업종에서는 외국인투자 비율을 조정하는 등 외국인투자 활성화 방안도 상반기에 마련할 예정이다. 또 FTA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대중 교역에 필요한 전자원산지증명서 교환시스템 적용 범위를 작년 대비 40% 넓히고, 9월까지 원산지증명 간이발급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서동철 기자 / 김세웅 기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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