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들이 대우조선해양의 손실을 막기 위해 또 다시 국민의 돈으로 측면 지원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에 드릴십(원유시추선) 2척을 발주하고 인도대금 약 1조원을 치르지 못하는 앙골라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에 자금을 빌려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방안이 확정되면 산은·수은은 소난골이 인도받은 드릴십을 활용해 개발한 유전의 원유 판매 수익을 담보로 잡을 예정이다.
문제는 드릴십이 원유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유전의 채산성을 평가하는 장비라는 데 있다. 소난골이 드릴십을 투입한 유전의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 결과가 나와 원유 생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산은·수은은 소난골에 빌려준 돈을 떼일 수 있다. 소난골에 대한 금융지원은 국책은행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대우조선의 발주사를 지원해 대우조선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셈이다.
대우조선을 도와주면서 국책은행이 떠안는 리스크가 크다는 점도 문제다. 유전개발사업의 성공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석유개발업계는 드릴십을 투입한 뒤 실제 원유가 생산될 확률을 10% 정도로 본다"고 말했다.
해저 유전을 개발하려면 먼저 바다 위에서 충격파를 이용해 해저 지질 구조를 획득한 뒤 이를 분석한다. 분석 결과 석유 부존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나오면 직접 땅을 뚫어 석유가 있는지, 생산에 나설 만큼 석유가 많은지를 확인한다.
드릴십으로 분석한 뒤 유전을 개발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와도 바로 원유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전의 채산성이 충분하고 생산설비가 갖춰져 있는 상태에서도 실제 원유가 생산되기까지 3~6개월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유전 근처에 이미 원유 생산 유전이 있어 파이프라인만 연결하면 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만약 근처에 원유 생산 유전이 없다면 드릴십을 투입한 뒤 원유를 퍼 올리는 데까지 수년이 걸린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설치될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생산설비를 짓는 데 최소 2~3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또 지금처럼 소난골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으면 생산설비 건조 비용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FPSO) 1기를 짓는 비용은 1조원 이상 되기도 한다.
조선업계는 대우조선이 또 다시 유동성 위기에 빠지는 것을 우려한 국책은행이 우회적으로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소난골에까지 돈을 빌려주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 경제부처 수장들이 "대우조선에 대한 추가 유동성 지원은 없다"는 원칙을 강조해와 직접 지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은 조선업황이 고꾸라진 지난 2015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국책은행으로부터 대규모 지원을 받았다. 2015년 10월 정부는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대우조선은 지난해 2분기에도 대규모 적자를 내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결국 주식거래가 중지됐다. 이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말 대우조선의 부채를 자본으로 바꿔주는 자본확충 지원을 해줬다.
하지만 대우조선이 상반기 안에 소난골로부터 드릴십 인도대금 1조원을 받지 못하면 하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로 인해 또 다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대우조선이 갚아야 할 회사채 규모는 4월 4400억원, 7월 3000억원, 11월 2000억원이다. 아직 정부로부터 지원받기로 한 4조2000억원 중 7000억원이 남아 있어 4월은 넘길 수있지만 7월부터 자금이 부족해진다.
대우조선의 위험을 대신 떠안아 준다는 지적에 대해 산업은행 관계자는 "소난골이 1조원 넘는 고가의 장비를 발주한 것은 유전을 개발해 수익을 내려는 것 아니겠느냐"며 "여러 광구를 탐사한 뒤 수익성이 있는 유전을 확보하면 그로부터 나오는 수익을 담보로 잡겠다는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만 내놨다.
하지만 조선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설령 경제성 있는 유전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국제유가가 지금 수준이라면 심해 유전에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시중 은행이 자기 책임으로 대우조선을 지원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손실을 국민의 돈으로 메워야 하는 국책은행은 사정이 다르지 않느냐"고 말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아직 소난골에 자금을 빌려주는 방안은 확정된 게 아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관계자도 "소난골로부터 인도대금을 받지 못하면 지난해처럼 발주사들에 요청해 대금을 미리 받는 방안도 있다"며 유동성 위기 재발설에 대해 반박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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