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유명한 미국 코미디 진행자 코넌 오브라이언이 자신의 쇼에 있는 코너 ‘개념 없는 게이머(Clueless Gamer)’에서 게임 플레이 영상이 소셜미디어 상에서 화제다. 이 영상은 지난 14일 올라왔는데, 단 3일만에 유튜브에서만 234만 건 가량 조회됐다. 오브라이언은 영상 속에서 “도대체 왜 이런 게임을 만든거야. 저의가 뭐야”라며 개임 개발사 관계자 멱살을 잡는다. 촬영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게임 개발자들에게도 “당신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든거야”라며 호통을 친다. 그러면서 “이건 정말 역사적인 (한박자 쉬고) 시간낭비야!” (Epic…Waste of time)라고 울부짖는다. 그를 이렇게 화나게 한 게임이 도대체 뭘까?
일본 게임회사 스퀘어에닉스가 오는 29일 플레이스테이션4와 엑스박스 용으로 발매하는 ‘파이널 판타지 15’다. 시리즈마다 전 세계적으로 1억 만장 이상 판매되는 블록버스터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15번째 판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매니아 층도 두터운 이 게임이 오브라이언의 미움을 산 이유는 먼저 거북이처럼 생긴 ‘아다만투아’라는 보스를 깨는데 꼬박 72시간이 걸린다는 무시무시한 설정 때문이다. 게다가 중간에 이 보스에게 당해서 주인공 일당이 전멸하면 ‘보스 깨기’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오브라이언은 “내 생애 이런 게임은 처음이야. 최악의 게임이라고!”라고 부르짖었고, 시청자들은 그런 오브라이언 모습에 배꼽 빠지게 웃음을 터트렸다.
개발사에 따르면 사실 파이널 판타지15 정규 플레이타임은 약 50시간 정도다. 보스 하나를 깨기 위해 72시간이니 걸린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고난의 행군을 하지 않으려는 게이머들은 굳이 이 보스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개발사 측은 이런 선택 미션들까지 합하면 전체 플레이 타임이 약 200시간 정도라고 밝혔다. 그러니 ‘파판월드(파이널 판타지의 세계)’가 좋아 거기서 벗어나기 싫은 게이머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한달동안 매달리면 그 세계를 샅샅이 돌아볼 수 있다. 3일간 밤잠 자지 않고 게임을 해서 유튜브에 거북이 보스를 깨는 영상을 처음 올린 사람은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국내에서도 두터운 매니아 층을 갖고 있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닌텐도 단말기 ‘패미콤’을 통해 1987년 1탄이 발매됐다. 그 역사가 증명하듯 인기가 대단한 게임인데 횟수를 거듭할 때마다 진행되는 혁신이 볼거리였다. 예를 들어 1996년 발매된 파이널 판타지7은 시리즈 처음으로 플레이스테이션 전용으로 발매되면서 3D(3차원) 게임으로 등장했다. 당시에도 3D 게임들이 있긴 했지만 파이널 판타지7처럼 스토리적 완성도와 높은 게임성을 고루 갖춘 3D 게임은 없었다. 이후에도 혁신을 거듭하면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게임 하드웨어들을 발전시키는데 공헌했다. 지난 17일 개막한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에서도 파이널 판타지 특별 버전이 소개됐다. 지스타 버전은 주인공과 친구들이 드라이브를 하다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곤란을 겪는 부분을 체험할 수 있다. 이 게임을 해 본 한 게임 엔지니어는 “‘초코보(시리즈에 나오는 동물)’를 타고 사막을 달리니 마치 라스베이거스에 여행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내년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나온 지 30년 되는 해다. 한 세대가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게임은 시간낭비’라는 강한 편견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게임은 게임이고 코미디는 코미디일 뿐이다. 나날이 연결되고 있지만 또 나날이 분리되고 있는 이 정신분열적 글로벌한 세상에서 게임 하나, 코미디 하나에 호탕하게 웃을 수 있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신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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