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은 최근 밀려드는 사과와 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 기록적인 무더위로 사과와 배 모두 작황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추석 성수기를 앞두고 물 밀듯이 물량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과와 배 가격은 연일 폭락을 하고 있다.
13일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지난 12일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사과(홍로) 5㎏ 상자는 2만1953원에 그쳤다. 이는 지난 8일 보다 무려 26.2% 폭락한 것이다. 심지어 올해는 사과 가격이 예년의 절반 수준에 그쳐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올 사과 가격은 지난 5년 동안 추석 성수기 가격에 비해 66%에 그치고 있다.
대전에서 청과물 소매점을 운영하는 김 모씨(71)는 “추석 연휴가 끝나면 28일부터 곧바로 김영란법을 시행한다는데 지금 팔지 못하면 남아돌 것 같아 걱정”이라며 “썩혀 내버리느니 좀 싸게라도 다 팔아치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과 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추석 성수품인 배(신고) 7.5㎏ 상자는 가락시장에서 지난 12일 2만4160원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 5년 동안 추석 성수기 평균 가격 보다 15%나 낮다.
이처럼 추석 성수품 가격이 맥을 못추는 까닭으로는 연휴가 끝나고 열흘 뒤면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는 때문으로 분석된다. 명절 기간 유통량이 한해 절반을 넘는 배의 경우 올해 생산량은 지난해 보다 2% 줄은 25만5000t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배는 생육 기간 동안 충분히 비가 와야 당도가 높지만 올해 기록적인 무더위로 수분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량은 줄었는데 배 가격은 되레 예년을 밑도는 것인데, 추석 연휴 기간 농민들이 대량으로 물량을 공급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과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보다 5% 줄은 55만5000t을 생산하는 데 그칠 전망이지만 가격은 폭락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는 “폭염으로 올해는 사과와 배의 수확이 늦어져 출하가 추석 연휴 기간 집중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아무래도 선물 수요가 급감할 것을 우려해 추석을 대목으로 보는 것이 최근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앞으로 추석 연휴가 끝나고 10월 들어서 일부 과일의 가격이 더 폭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사과(홍로) 10㎏ 상자 가격은 9월 말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9000원 보다 낮은 2만2000~2만4000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사과는 지난해 보다 생산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추석 연휴 1주를 앞두고서는 출하량이 전년 대비 1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심지어 10월 들어서 만생종 사과 후지가 본격 출하하면 사과 가격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다음달에는 그동안 무더위로 출하가 늦어졌던 사과와 더불어 만생종 사과까지 한꺼번에 풀리면 전년 동월 대비 23% 가량 많이 생산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대표적 추석 성수품인 밤은 지난 5년 평균 가격 보다 무려 83%, 단감은 16% 비싸게 거래됐다. 추석 성수품에 속하지 않는 포도 역시 지난 5년 가격 보다 4% 정도만 올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더라도 수요에 큰 변화가 없는 품목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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