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서소문로 동화약품 본사 앞에는 ‘서울 연통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서울 연통부는 일제시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내의 연락을 담당하던 비밀단체다. 이 기념비는 일제시대 동화약품이 독립운동에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14일 “당시 ‘까스활명수’ 수익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 민족기업으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동화약방(동화약품)의 사장이었던 민강 선생이 서울 연통부의 행정 책임자를 맡았다. 상해 임시정부와 국내의 연락을 담당했고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또 활명수를 직접 중국으로 보내 독립운동 자금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당시 활명수 한 병 값은 50전으로 설렁탕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말을 살 수 있는 비싼 가격이었다”며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으로 건너갈 때 돈 대신 활명수를 휴대했다가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전했다.
민강 선생뿐 아니라 동화약품은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5대 사장이었던 보당 윤창식 선생은 경제 자립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조선산직장려계’를 결성하고 총무로 활동했으며, 이 때문에 옥고를 치른 후에도 빈민 계층을 돕는 ‘보린회’ 사업을 지원했다. 그는 민족 운동 단체인 신간회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까스활명수’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 윤광열 동화약품 명예회장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재학시절, 일제에게 강제 징집되었다가 탈출하여 중국 상해에 있는 정부군을 찾아가 주호지대 광복군 5중대 중대장직을 맡았다.
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따자 동화약품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축하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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