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가 미시령 터널을 지나자 여기 저기서 “야 드디어 떴다. 떴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포켓몬고 게임을 즐기기 위해 강원도 속초를 향하고 있던 이른바 포켓몬 사냥꾼들 외침이었다.
13일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은 아침 일찍부터 인파로 북새통이었다. 여름 휴가철이긴 했지만 평일날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계속 만석이어서 한참을 기다려 올라탄 버스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대학생들 상당수가 눈에 띄었다. 이들 모두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지난주부터 전세계적 열풍 현상을 낳은 일본 닌텐도의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 고’였다.
구글맵 기반으로 진행되는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 7일 미국 시장에 정식 출시된 이 게임은 5일만에 약 750만회 다운로드됐으며 매출액도 하루 평균 100만달러(약 11억5000만원)를 기록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간으로 따지면 무려 10억 달러(1조1500억원)에 이른다. 이용자들이 앱은 무료로 다운로드 받지만 아이템은 유료로 구매하기 때문이다. 앱 평균 이용시간도 약 43분으로 미국 대표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왓츠앱(30분), 인스타그램(25분)을 넘어 단숨에 대표 ‘모바일 앱’이 됐다.
미국에서는 포켓몬을 잡기 위해 최대 수백명의 이용자들이 몰려 다니면서 안전사고까지 발생하자 샌프란시스코 경찰은 “포켓몬고 열풍이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를 강타하고 있다. 포켓몬으로 전투를 벌이고 훈련을 시키고 포획할 때도 현실 세계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7개 항목의 ‘포켓몬 고 안전수칙’을 발표하기도 했다.
포켓몬고 예외지대로 알려졌던 한국도 뒤늦게 열풍에 휩싸였다. 이 게임은 닌텐도가 iOS와 안드로이드용으로 출시했으나 아직 한국에 출시되진 않았다. 그런데 지난 12일 밤부터 강원도 속초·양양 등지에서 이 게임이 가능하다는 소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전파되면서 게임 마니아들이 아침부터 짐을 싸매고 속초행 버스에 오르는 등 ‘포켓몬 고 신드롬’ 이 일고 있다. 버스에서 만난 대학생 이창훈 씨(19)는 “포켓몬 게임은 가장 최근작인 6세대 까지 플레이 해봤다”며 “속초에도 포켓몬들이 시간대에 따라 많이 나오는 ‘명당’이 있는 모양인데 지금은 속초 코엑스에 포켓몬들이 가장 많이 나온다고 한다”고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전문가들은 포켓몬 고 게임이 스마트폰 시장 포화 이후 슬럼프에 빠진 전세계 모바일 산업에 일대 전환점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증강현실(AR) 기술에 ‘포켓몬’이라는 콘텐츠가 접목되면서 이용자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전문기관(마켓앤마켓츠, 디지캐피털)은 AR 시장이 올해부터 매년 70~80%씩 성장해 오는 2022년 약 798억~1200억 달러(92조~139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 모바일산업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뒤처져 있던 국내 증강현실 분야에 대한 기술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리콘밸리 = 손재권 특파원 / 속초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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