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체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6일 새벽 4시 30분께. 자택에서 보고를 받은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오히려 표정이 담담했다.
“다들 수고했다. 하지만 시작일 뿐 세계 10대 바이오기업이 되려면 램시마 하나로 되겠는가. 다음 목표인 트룩시마, 허쥬마, 나아가 신약개발을 위해 다시 뛰자.” 서 회장의 첫 반응은 이랬다. 그의 관심은 이미 다음 목표에 옮겨가 있었다.
설립된지 14년 밖에 안된 한국 바이오 기업이 ‘바이오산업 본토’인 미국시장에 진출하게 된 씨앗은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이오를 미래성장 산업으로 점찍고, 넥솔이란 회사를 창업한 직후였던 2000년 초여름, 서 회장은 미국 LA와 샌프란시스코로 달려간 하루종일 바이오산업 관계자들을 만나며 신규사업 아이템 발굴에 골몰했다.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만나려 뛰어다니다 늦은 밤이 돼서야 모텔방에 몸을 뉘이곤 했다. 침대 메트리스만 덩그러니 놓인 어둡고 침침한 방이었다. 100킬로가 넘는 거구인 서 회장이 그 좁은 방에서 그린 셀트리온은 지금 정도의 모습이 아니었다.
서 회장은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기를 거쳐 34세에 대우자동차 임원에 오른 잘나가는 샐러리맨이었지만 바이오 분야에는 문외한에 가까웠다. 그래서 오히려 겁없이 도전할 수 있었다. 서 회장은 “나에게는 바이오산업의 무궁무진한 성장성이 보였다. 다른 기업들은 왜 이 분야에 뛰어들지 않는지 의아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수많은 발품과 노력 끝에 구체적인 계획이 잡힌 것은 이듬해인 2001년이었다. 서 회장이 우연히 항체바이오의약품도 복제약을 만들 수 있고, 오리지널 약들의 특허가 2014년부터 줄줄이 끝난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다. 오리지널 항체 바이오의약품은 의사들 사이에서도 성공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풀리지 않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서 회장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발상의 전환을 하고 더 먼 미래를 내다봤다. 2002년 넥솔을 셀트리온으로 재창업하고 본격적인 바이오시밀러 산업에 착수했지만 당시만해도 인천의 콘테이너박스를 사무실로 쓸 정도로 초라했다.
6일 서 회장은 자신이 꿈꿨던 그림의 밑바탕이 될 미국 FDA 허가를 받아냈다. 그의 ‘문샷 싱킹(Moonshot-Thinking)’이 마침내 적중한 것이다. 문샷싱킹은 사람들의 생각의 한계를 벗어난 혁신적 사고를 말한다. 단순히 생각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곧바로 실행하는 능력, 불가능해 보이는 혁신적 사고를 실제로 만들어 나가는 실리콘밸리의 문화다.
서 회장은 샌프란시스코 모텔에서 얻은 확신을 실현하기 위해 끈질기게 매달렸다.
그 사이 항체 바이오의약품은 세계 제약 시장에서 확실한 메이저 부문이 됐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는 제약부문 매출 중 45%를 리툭산, 허셉틴, 아바스틴 등 항체바이오 의약품에서 얻고 있고, 미국 제약사 애브비의 매출 60%는 휴미라 한 품목이 차지할 정도다. 이번 램시마의 오리지널약을 만드는 존슨앤존슨 역시 전체 매출의 21%를 레미케이드가 차지하고 있다.
FDA허가를 받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2014년 8월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나오자 셀트리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FDA에 허가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이듬해 3월 셀트리온 신청을 논의하려던 FDA 자문위원회가 돌연 취소되면서 온갖 억측에 시달려야 했다. J&J가 유럽시장에서 램시마로 인해 매출에 타격을 받으면서 바이오시밀러를 향한 글로벌제약사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 주요 언론까지 나서 셀트리온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특허를 연장해 갖은 방법으로 허가를 늦추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런 난관을 뚫고 FDA 허가를 통해 기술력을 인정받았지만 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셀트리온은 다음 목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김형기 셀트리온 대표는 “서 회장의 비전은 ‘글로벌 톱10 바이오 기업’이다. 작년 유럽 허가를 신청한 비호지킨스 림프종 치료제 트룩시마와 연내 허가절차에 돌입할 예정인 유방암 치료제 허쥬마 등도 램시마처럼 세계최초 기록을 쓰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또 “현재 개발중인 바이오시밀러까지 개발을 마치면, 적어도 10년 이내에 글로벌 매출 10조원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며 “10년후에는 신약개발에도 뛰어들겠다”고 강조했다. 셀트리온은 현재 항체 독감 치료제와 항암 치료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신찬옥 기자 /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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