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백화점 3사는 지난 2013년 정기세일을 하고 나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세일기간 동안 10% 할인행사를 했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판매촉진 비용을 납품업체에 전가했다는 혐의로 재판부 격인 전원회의에 회부한 것. 본래 판촉 행사를 하면 백화점이 반, 납품업체가 반씩 비용을 부담하는데 그 비용을 백화점이 부담하지 않았다는 논리였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당시는 판촉이 아니라 10% 정기세일을 하는 시즌이었고, 업계 관례상으로도 판촉과 세일은 엄격히 구분돼 진행해왔기 때문에 그 전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고 밝혔다. 결국 이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지어졌고, 공정위 공식 기록은 모두 사라지게 됐다.
공정위가 산업 체계나 업계 관행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조사를 진행하다가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짓는 행태가 반복되면서 기업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
공정위는 자체 조사 혹은 민원 신청을 받은 후 이를 근거로 삼아 내부적으로 검찰역할을 맡은 사무처가 조사에 들어간다. 그 후 조사결과에 따라 혐의가 인정되면 공정위 자체의 재판부 격인 ‘소회의’ 또는 ‘전원회의’에 송부한다. 그 후 9명의 위원(소회의는 3명)이 사건을 심사한 후 혐의가 인정되면 과징금이나 시정조치를, 그렇지 않으면 무혐의 결정을 한다.
문제는 무혐의 결정이후 조사를 받은 기업은 억울함을 풀 길이 전혀 없다는 데 있다. 공정위가 무혐의 결정 사건에 대해서는 ‘의결서’를 남겨두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조사 사실조차 허공으로 사라진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해당 사건에 대한 의결서를 남겨둘 경우 조사 대상 기업 명예가 훼손되거나 잘못된 해석을 낳을 수 있어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행태가 법적인 투명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법조계 인사는 “법은 예측가능성이 중요한데 어떤 논리로 인해서 무혐의 판정을 받았는지 공개되지 않아 기업들의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게된다”고 말했다.
공정위 측에서는 억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한해 거의 수천 건에 달하는 민원, 그리고 각종 조사 지시 등으로 인해 업무가 과중한 상태에서도 잘못된 조사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보통 민원의 10% 가량이 조사를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며 “악성민원이 워낙 많다보니 사건의 경중을 분별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국 무혐의 결정이 내려져 억울한 조사의 피해자가 된 기업은 눈뜨고 코베이는 격이다. 한 기업인은 “나중에라도 또 다시 다른 건으로 조사가 들어올까봐 억울함마저 표현하지 못한다”며 “그래서 그냥 사건에 대해서 기업 내부에서도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밝혔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는 결국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무혐의 판결이 난 후에도 해당 의결서를 공개해서 자신들의 귀책사유를 밝히고 있다. 연방거래위원회가 어떤 사건을 ‘불공정 거래행위’로 인식하지 않았는 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법적인 투명성과 안정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한국 공정위는 무혐의 판결에 대해 제대로 공개를 하지 않고 있어 큰 사건의 경우 공정위가 내린 결론을 두고 정치적인 해석이 난무하는 등 신뢰를 주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함께 제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 한국 공정위는 국무총리 소속 중앙행정기관인 반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행정부와는 별도로 독립된 기관이다. 위원 임명방식도 다르다. 미국의 경우 상원 승인을 얻어 대통령이 위원장과 위원을 임명하는 반면 한국은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오승한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도 공정위원장의 임기를 보장하고 독립성을 강화시키면서, 그 반대급부로 위원회 회의 결과를 모두 공개해 투명성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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