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실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당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박근혜 정부 3기 경제팀을 어떻게 이끌어갈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탄탄한 신임을 받고 있는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의 목소리에 밀릴 것이란 주장부터, 당으로 돌아간 최 부총리의 ‘아바타’가 될 것이란 얘기까지 유 후보자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 학자 시절부터 최근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내기까지 주변에 머물렀던 인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전혀 다른 분석이 나온다. 유순한 이미지와는 달리 일처리에서는 강단을 보여왔다는 지적이다. ‘옆박’이라는 별명처럼 대통령의 신임도 그 누구보다 두텁다는 평가다.
◇옆박 대 붙박...사석에선 형·동생 사이
박 대통령의 신임이 탄탄하게 이어져 ‘붙박’이란 별명까지 붙은 안 수석이 유 후보자와 미묘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두 사람을 함께 아는 관계자들은 “유 후보자는 특유의 리더십으로 안 수석과 좋은 관계를 이어왔다”며 “두 사람이 미묘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억측”이라고 일축한다.
유 후보자는 안 수석과는 사석에서 ‘형님, 동생’하는 관계다. 유 후보자가 1996년 조세연구원 부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안 수석이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 모두 전공이 재정학으로 공통 분모가 많았다. 유 후보자와 안 수석은 2012년 초 공동 저서를 내기도 했다.
대통령의 신임도 붙박과 옆박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유 후보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18대 국회의원 시절 함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했다. 특히 당시 유 후보자는 박 대통령 옆자리에서 귓속말을 나누는 장면이 자주 포착돼 ‘옆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2년말 유 후보자는 박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을 맡아 ‘복심’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기재부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박 대통령과 바로 소통한다는 점, 유 후보자가 선배라는 점에서 ‘최경환-안종범’ 관계가 3기 경제팀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할 말은 하는 ‘외유내강’
유 후보자는 과거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조세연구원 등에 재직할 당시에도 ‘안티가 없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꼽혔다. “자기 색깔이 확실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결단을 내리는 그의 스타일에서 나온 오해라고 말한다.
그가 조세연구원장 시절 연구원에서 내놨던 재정전망 관련 보고서는 그의 ‘스타일’을 보여준 대표 사례다. 2000년 조세연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재정지출이 당시 추세대로 이어진다면 약 15년 후에는 파탄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었다. 재정확대 정책을 추진하던 당시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졌고,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물론 민정수석실까지도 진상파악에 나서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유 후보자는 본인의 확고한 신념을 꺾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조세연에 몸 담았던 한 박사는 “당시 정부가 여러 방면에서 압박을 했지만, 유 후보자는 본인이 물러나면 된다는 생각에서 연구자들에게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당시 나이가 40대 중반이었다”며 “조용한 듯 하지만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유 후보자는 당시 연임이 내정돼 있었지만 이를 계기로 연임에 실패한 채 2001년 야인으로 돌아갔다.
◇“순둥이? 겪어보니 다르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때에도 평소 부드럽던 유 후보자가 ‘목에 핏대를 세우는’ 모습이 가끔 연출되기도 했다. 그는 2010년 공공기관 탈세를 언급하며 공기업 투명경영을 주장했던 바 있고, 2011년에는 탈세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내용의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고액체납자에 대해 조세정의 차원에서 명단을 공개하는 예외조항이 2004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 전문직 종사자, 유명 연예인 등의 탈세에 대한 제재수단이 미흡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국토교통부 장관 시절에는 ‘카리스마를 내뿜지는 않지만 업무장악이 확실하다’는 평가가 내부적으로 나왔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한두번의 업무보고만 듣고 실국장들의 업무역량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안목이 있었다”며 “소신이 없는 간부들에 대해서는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관료사회 장악이 관건
비고시, 학자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유 후보자의 업무 장악력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유 후보자는 경제팀의 수장으로서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이기권 노동부 장관,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내정자 등 정통 관료 출신들을 이끌고 노동개혁, 구조조정 등의 현안을 돌파해나가야 한다.
장관을 지낸 한 전직 관료는 “관료사회를 휘어잡지 못하면 ‘외과수술이 필요한 자리에 왜 내과의사를 앉혔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며 “유일호 경제팀의 성패가 여기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국토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합리적 마인드와 능력위주 인사로 조직을 움직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7, 9급이나 외부 출신도 능력이 있으면 중용했고, 현장경험이 있는 인물을 발탁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최, 당에서 측면 지원할 듯
재선 의원답게 국토부 장관 시절 유 후보자는 국회의원들과의 소통에 많은 힘을 썼다. 건설사에 대한 특혜라는 야당 반대에 막혀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사업)법 국회 통과가 불확실했던 상황에서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해 결국 8월 통과를 이뤄냈다. 유 후보자가 경제부총리로 취임한 뒤에도 국회와의 소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경제정책 방향과 관련해 유 후보자는 21일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전임자인 최경환 부총리의 ‘초이노믹스’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당으로 돌아갈 예정인 최 부총리는 최근 사석에서 여러차례 “당으로 돌아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친박 선후배인 두 전·현직 경제부총리가 국회와 정부에서 경제 정책을 입법화하는 데 찰떡궁합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편 유 후보자는 내정 당일인 21일 인터뷰에서 “정부와 당·청간에 이의는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조시영 기자 / 최승진 기자 / 전정홍 기자 /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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