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12시께 찾은 광진구 워커힐 호텔. 올해 연말 확장 오픈 예정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1층 면세점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게이트로 가려져 있는 입구에는 중국어로 ‘양해바란다’는 표지판이 세워져있었다. 외부 쇼윈도를 가려놓은 가림막에는 ‘새로운 워커힐 면세점이 2015년 찾아온다’는 말이 선명하게 쓰여져 있었다. SK는 그동안 워커힐면세점 규모를 2배 이상 확대하기 위한 대규모 리노베이션 공사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이 공간은 이제 다른 용도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면세점 재승인 심사에서 워커힐면세점이 탈락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럭셔리 면세점을 기치로 3000억원을 투자해서 오픈한 롯데의 월드타워점도 내년 상반기에 문을 닫아야 한다. 면세점 내부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지만 직원들의 표정만큼은 예전처럼 밝지 못했다. 면세점 곳곳에는 오픈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안내 문구가 붙어있었지만 이게 사실상 마지막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업자 되는 것 아니냐” 고용불안 후폭풍
워커힐면세점 화장품 코너 매장에서는 한 두명의 점원이 고객들을 상대하고 나머지 직원들은 삼삼 오오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주말에 있었던 면세점 특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내용의 대화가 오갔다. 각기 다른 브랜드의 유니폼을 입은 화장품 코너 점원들은 “신세계 면세점으로 우리가 갈 수 있을까”라며 걱정했다 .워커힐 내 셔틀버스 정류장에 모여있는 면세점 직원들 사이에서도 우울한 대화가 계속됐다. 직원들은 “혹시 한화나 신라면세점에 끈이 있는 사람이 있느냐”, “두산 채용공고는 언제 뜨느냐” 등의 대화를 나누며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신세계가 면세점을 크게 한다니 우리도 일단 갈 수 있을것 같지만 누가 확답을 하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또 “우리를 다 데리고 가도 (그쪽 입장에서는) 손해는 아니겠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고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잡화 매장의 직원을 찾아가 분위기를 묻자 “수년동안 여기서 일했지만 이런 일을 상상해 본 적 조차 없어서 많은 직원들이 크게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900여명의 워커힐면세점 직원들은 아직까지 회사나 지배인으로부터 어떠한 공식 통보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한 직원은 “전례가 없었던 일인 만큼 미래를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며 “빨리 회사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1300여명에 달하는 롯데 월드타워점 직원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면세점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해야 하는 SK와 달리 롯데는 소공점 등 다른 면세점 매장이 있다. 하지만 이동 인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월드타워점 직원들도 고용 불안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불과 보름전 월드타워점으로 배치를 받았다는 한 롯데면세점 신입사원은 “부모님이 취직했다고 좋아했는데 2주만에 큰 날벼락을 맞았다”며 “동기들끼리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재 계약직 신분으로 1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는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는데 기쁨은 잠시였고 지금은 마음의 상심이 크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롯데 정규직이 아니라 각 매장에서 일하는 파견직원들의 걱정은 더욱 컸다. 국내 화장품 회사에서 파견된 한 여직원은 “우리 브랜드의 경우 다른 회사 면세점에는 입점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닌지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1년전에 정부는 왜 이전 승인해줬는지”
워커힐과 월드타워 면세점 직원들은 정부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월드타워점의 한 매니저는 “1년전 롯데월드에서 제2롯데월드로 이사하기 위해 1달간 매일 철야근무를 했다”며 “만약 1년 뒤에 특허를 뺏어갈 생각이었다면 왜 그때는 관세청이 장소 이전 승인을 해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3000억원을 들여 최고급 시설을 갖춰놨더니 1년 만에 다시 방을 빼라고 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 일이냐는 지적이다.
워커힐면세점 관계자도 “20년 넘게 면세점을 운영하며 많은 노하우를 쌓아왔는데 하루 아침에 면세점 사업을 닫으라고 하는 정확한 이유가 너무 궁금하다”며 “정말 정부의 재승인 심사결과 점수표를 꼭 보고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은 정치놀음에 우리 일터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명품 매장들과의 관계도 그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한 직원은 “글로벌 명품업체들 사이에서도 한국 면세점 제도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며 “어떤 명품업체가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면세점과 신뢰있는 관계를 구축하려고 하겠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인사는 “1년 전 월드타워점을 오픈할 때 명품 업체들도 인테리어 등을 위해 상당한 비용을 투자했는데 이런 비용을 롯데가 모두 물어줘야 할 처지”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당장 수개월 내 사업을 아예 접어야 하는 워커힐면세점은 미리 확보해뒀던 물량들을 재고 처리해야 할 판이다. 한 관계자는 "미리 구매해둔 다음 시즌 제품과 새로 입점할 브랜드에서 받아놓은 물건들이 모두 재고로 창고에 쌓여 있다"고 털어놨다.
현장 직원들 만큼 SK본사와 SK네트웍스 면세사업 본부에서도 고민이 많다. 당장 다음주에 면세점 모바일 앱 오픈 예정이었으나 이 사업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워커힐면세점 관계자는 “몇달을 밤새 일한 직원들에게 앱 출시가 어려워졌으니 사업 중단해야된다는 말을 전할 때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며 “일부 직원들은 눈물까지 흘렸다”고 말했다.
[손일선 기자 /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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