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시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소속 심사관 3명이 참석하는 ‘천연물의약품 규제당국자 초청 워크숍’이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주최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국내 천연물 신약 개발사례가 소개되고 FDA 허가 심사자들이 허가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내 신약 허가를 담당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천연물신약 개발에 우리나라가 유리한 여건들을 가지고 있어 해외에서도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의학자가 천연물 소재 개똥쑥으로 개발한 말라리아 치료제 ‘아르테미시닌’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생리학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전통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중국 의·과학 수준에 새삼 놀라움을 표시하면서도 그 실체에 대해 한의계와 의료계가 서로 대립하며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한의계는 정부와 정치권이 한의학을 방치하고 있어 천연물 신약 개발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의료계는 국내 천연물 신약 효능 입증 등 과학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천연물 신약은 생물과 미생물을 포함한 자연계 물질 중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성분을 추출해 만든 의약품을 뜻한다. 천연물 신약 개발을 비롯해 천연물을 이용한 바이오산업은 이미 선진국에서도 주목받는 분야댜. 중국은 1967년부터 마오쩌둥 지시로 인민해방군 산하 비밀사업 ‘523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고서적에 기록된 치료물질을 찾아내는 프로젝트로, 서구 과학적 방법을 사용해 그 효능을 검증해왔다. 이런 노력으로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전통의학 분야에 가장 앞선 나라로 부상했다. 천연물의약품을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이라고 칭하며 막대한 자금도 투입했다. TCM은 이미 서양 의학과 접목되면서 점유율을 급속히 늘려 나가고 있다. 연평균 34% 성장을 이어가면서 2012년 기준으로 중국 내 전체 처방액의 26.5%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도 커졌다. 최근에는 태슬리, 상하이 선다이즈 등 중국 TCM기업들이 미국 등 전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의약품 선진국에서도 천연물의약품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미 2004년부터 천연물신약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2006년 생식기 사마귀 치료제 승인을 시작으로 HIV바이러스로 인한 설사 치료제 등 제품이 출시되면서 천연물의약품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영국 회사가 개발한 ‘사티벡스’가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등에 효능을 보이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이처럼 천연물을 이용한 의약품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합성 의약품 부작용이 많아지면서 천연물을 소재로 한 질병 예방과 치료 효능을 발견하려는 연구가 차츰 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전통 의학 기반이 있어 천연물신약 개발에 유리한 여건을 가지고 있는데다 그동안 개발과정에서 기업과 연구기관들 역량이 축적됐지만 천연물신약 개발이 쉽지 않다. 한 개 화합물이 하나의 목표물로 작용한다는 기존 제약 연구방식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연물은 수많은 화합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천연물이 인체에 들어올 경우 다양한 종류의 단백질, 유전체와 작용한다. 천연물신약 개발사 관계자는 “신약 개발이 부진했던 이유는 천연물이 갖고 있는 어떤 성분이 어떻게 효과가 있는지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데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천연물신약은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최근 한의학계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IBM과 경희대 천연물의약소재개발 및 표준화지원사업단은 슈퍼컴퓨터 ‘왓슨’을 도입해 이를 신약 개발에 이용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IBM과의 공동 연구는 한의학 분야에 빅데이터를 적용해 새로운 치료 방법을 개발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태후 경희대 한방재료공학과 교수는 “한의약의 체계적 개발과 표준화를 통해 시스템 구축하고, 이를 통해 한방 과학화와 신약 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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