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학 양성을 위해서는 ‘국제해양탐사 프로그램(IODP)’에 참여해야 합니다. 제가 직접 타겠습니다.”
정년을 2년 앞둔 2013년. 故 박영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63)의 나이는 당시 61세였다. 그는 IODP를 통해 해저 심부 생물권 연구에 우리나라도 뛰어들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열악한 연구환경에서 애쓰는 후학들을 위해서는 반드시 배를 타고 얻은 연구자료를 국제 공동연구진과 함께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인 흐름에서 뒤쳐지면 과학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2011년과 2012년, 4개월 동안 배를 타며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IODP는 미국과 일본 등 전 세계 26개국이 참여해 해양지구과학을 연구하는 국제공동 연구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는 ‘국제해저지각시추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부터 참여했다. IODP에 참여한 각국의 과학자들은 일본의 지구호, 미국의 조이데스 레졸루션 등의 해양 시추선을 타고 태평양과 같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해저 깊은 곳의 지각 및 생물을 추출해 연구한다. 현재 연료로 사용되고 있는 ‘가스 하이드레이트’도 IODP 연구로 발견됐다.
박 책임연구원은 해저 밑에 살고 있는 미생물을 분석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두 번이나 시추선에 올라 젊은 과학자들과 함께 해저 2.5㎞ 아래 있는 퇴적물을 채취한 뒤 미생물을 분리해 내는 작업을 이어갔다. 배를 타고 돌아온 뒤 위암을 앓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도 분석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박 책임연구원을 이어 IODP 한국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길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석유해저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은 “박 책임연구원은 병상에서도 분석 작업을 이어갔다”며 “국제 공동 연구에 참여함으로써 한국 과학자들의 역량을 높이고 후학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을 바치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박 책임연구원이 분석한 데이터는 IODP의 이름으로 세계적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23일자에 게재됐다. 서태평양지역 해저 2.5㎞의 극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새로운 미생물을 발견한 것이 이번 논문의 주된 내용이다. 김길영 책임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심부생물권 연구에 중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며 “아직 지구상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미생물을 분석함으로써 향후 신약개발은 물론 다양한 산업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 책임연구원은 연구를 하면서도 후학 양성을 위해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며 “끊임없이 연구하는 연구자로서의 모범을 보여 후배들의 본보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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