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일 내놓은 22조원 규모의 재정보강 대책에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포함해 정부가 올해말까지 쓸 수 있는 자원이 총동원됐다. 이는 가뜩이나 경기회복세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까지 겹쳐 한국 경제의 ‘동력’이 힘을 잃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메르스 사태의 후유증과 가뭄에 따른 경기 여파를 서둘러 극복하기 위해서는 추경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정부·정치권·학계에서 이미 형성된 상태였다. 이에 정부는 추경과 더불어 금융보증·융자지원 방안까지 재정·금융을 동시에 담은 ‘패키지’를 내놓게 됐다.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3.8%로 내다봤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 경기의 회복세가 지속되고, 국내에서도 민간소비와 내수가 살아나면서 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세수부족에 따른 여파가 올해 초에 반영되고, 한국 경제의 주력으로 꼽혔던 수출까지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경기상황은 예측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여기에 5월 하순부터 불거진 메르스 사태라는 돌발변수까지 겹치면서 3%대 성장률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2차관은 “올해 예산 편성 당시 예기치 못했던 메르스 사태와 가뭄, 그리스 사태 등 대외불안 요인이 경제 하방 요인으로 적용하고 있어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내년에 총선이 있는 만큼 정부와 정치권은 올해 3%대 성장률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추경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도 이같은 배경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정보강 22조원 가운데 추경은 11조8000억원에 이른다. 재원은 대부분 국채발행으로 마련될 전망이다. 정부는 한국은행 잉여금 7000억원, 기금 재원 1조 5000억원 등을 활용하고, 나머지 9조 6000억원은 국채 발행으로 조달을 한다.
다만 올해 국채 발행물량은 5조~7조원대가 될 전망이다. 교환·조기상환용 시장조성 물량 잔여액 4조 6000억원 가운데 2조원을 추경 용도로 전환해 국채 공급 부담을 완화하기 때문이다. 시장에 나오는 국채공급 물량은 7조 6000원대로 줄어드는 셈이다. 나머지 시장조성물량 2조 6000억원도 시장 상황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운용할 방침이기 때문에 실제 국채 발행은 5조~7조60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는 연말까지 찍어낼 신규 국채를 매월 일정 수준으로 분산시켜 발행하는 내용의 ‘국고채 시장 안정화 방안’도 마련했다. 국고채 물량 증가분이 특정 시점에 집중되지 않도록 다음달부터 매월 1조~1조5000억원 수준으로 증액해 분산 발행할 계획이다.
추경 세출확대분 6조 2000억원은 민생안정과 경기활성화 효과가 큰 사업 가운데 연내 집행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입한다.
메르스 극복·피해업종 지원에 투입되는 2조5000억원 가운데서는 감염병 관련 장비·의약품 비축, 메르스 환자·격리자 치료비 지원에 1000억원이 쓰인다. 음압·격리병상(117개)을 확충하고 직간접 피해를 본 병의원 지원에도 8000억원이 투입되며, 메르스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관광, 중소기업, 수출업체 등 업종에도 1조6000억원을 지원한다. 타격이 큰 영세 공연업계를 위해 5만원 이하 공연관람권 한 장을 샀을 때 한 장을 덤으로 주는 ‘1+1(원 플러스 원)’ 사업도 도입한다.
가뭄·장마 대책으로 들어가는 8000억원은 저수지·양수장 등 수리시설을 확충해 6개 댐의 치수량을 올리는 데에 쓰인다. 또 재해발생에 취약한 노후저수지 408곳은 개보수하고, 농산물 수급불안에 대비하는 700억원 규모 긴급 수금안정자금도 신설한다.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배정된 1조 2000억원 가운데 75%인 9000억원은 청년 일자리 확충과 고용안전망 강화에 쓰인다. 취업성공패키지·청년인턴제 등 기존 사업 강화에 1746억원을 사용하고, 임금피크제 도입과 청년 신규고용을 동시에 유도하는 세대간 상생고용(206억원)의 시행시기도 당초 내년이었던 것을 올해로 앞당긴다.
이밖에 내년 완공 예정인 진주-광양철도 복선화, 성산-담양 고속도로 확장 사업도 올해로 앞당기는 등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도 1조 5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소방·안전 인프라 투자와 군부대 시설 정비, 세월호 인양을 통한 미수습자 수색작업과 사고원인 조사지원 예산도 추경에 반영됐다.
기금 지출 확대로 마련하는 재원은 영세 자영업자 경영안정자금지원(7100억원), 서민주거안정(2조원), 체불임금 대신 지급하는 체당금 증액(593억원) 등에 사용된다. 또 한국도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전력 등 정부투자기관의 지출계획을 변경해 2조 3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조기 집행하고,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에 대한 신규출자를 바탕으로 보증·보험·여신 등 신규 금융성 지원을 4조5000억원까지 확대한다.
전문가들은 신속한 추경의 결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중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저금리에서 추경이 더 효과가 있고, 대출보다는 정부가 직접 돈을 쓰는 부분을 중심으로 짜여졌다”며 “정부가 밝힌대로 올해 0.3%포인트 성장률 상승효과는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르스 사태가 없었더라도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컸다”며 “메르스 지원을 제외한 다른 재정은 장기적인 잠재성장률 높이는 방안에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추경효과 극대화를 위해 연내에 모든 자금을 집행하는 데 초점을 맞출 방침이다. 방문규 차관은 “추경 사업의 주요 선정 기준은 연내 집행이 가능한지 여부”라며 “각 부처가 9조원 이상을 4개월 내로 집행해야 하는 만큼 이번 추경안은 상당히 큰 규모”라고 강조했다.
[조시영 기자 /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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