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재정·통화 정책' 경로 바꾸나

중동호흡기중후군(메르스)이 확산되면서 우리 경제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수출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지개를 켜던 내수시장마저 다시 얼어붙어 올해 경제성장률이 2%대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경기부양 효과가 큰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어 정부의 대응이 주목됩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도 병행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 메르스 이전 3% 턱걸이…메르스 이후는?

메르스 여파로 올 경제성장률이 2%대로 주저않을 것이라는 우려는 결코 과장된 게 아닙니다.

메르스가 확산되기 이전에 나온 주요 기관들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 중에 2%대가 있습니다.

노무라증권은 이미 지난 3월에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5%로 내렸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5%에서 3.0%로 하향조정하면서 사실상 2%대 성장을 예측했습니다.

KDI는 당시 4대 구조개혁의 성공, 기준금리의 1∼2차례 추가 인하, 세수결손 미발생 등의 전제 조건을 충족해야 3.0% 성장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구조개혁의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고 세수결손도 지난해보다 규모는 줄겠지만 피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은행의 올해 성장률 수정 전망치는 각각 3.0%와 3.1% 입니다.

전망의 전제 조건 중 하나만 악화돼도 전망치는 2%대로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OECD 수정 전망치는 지난 3일, 한은의 수정 전망치는 4월에 나왔다. 메르스 여파가 반영되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소비심리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메르스 여파가 장기화된다면 성장률 하락은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 '회복 조짐' 내수에 치명타…미 금리인상 겹치면 충격파 커질 듯

메르스 확산 사태는 개선 조짐을 보이던 내수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습니다.

메르스 감염 우려 때문에 '공공장소 기피증'이 확산되면서 당장 소비 위축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 음식점, 영화관은 손님의 발길이 확연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여행·관광업계는 메르스 사태로 가장 심각하게 타격을 입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최대 손님인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의 한국 여행 취소사태가 빚어지면서 급격한 매출감소를 겪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요가 줄면 심화되고 있는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6개월째 0%대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점차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던 정부의 기대와 달리 계속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경제에 미치는 후유증은 한층 커지게 됩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르스가 빨리 진정되고 불안심리가 해소되면 미뤘던 소비를 한꺼번에 하면서 회복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외국인 관광객 감소 여파에 따른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관광산업에 타격이 있지만, 아직까진 지표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박사는 "메르스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면 소비부진은 물론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올해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지는 걸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우리 경제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형국을 맞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전에 구조개혁과 단기 부양책 등을 통해 경제체질을 키우려 했던 정부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기는 것입니다.

◇ 힘 받는 추경 편성·기준금리 인하론

정부는 필요성이 거론되는 추경 편성 여부를 놓고 즉답을 피하는 상황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경기 반등에 걸리는 시간 등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경기부양 효과가 큰 추경을 편성해 메르스로 위축된 내수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아져 추경 카드를 꺼내들 분위기는 한층 더 무르익었습니다.

정부는 추경 외에 메르스로 피해가 큰 관광산업 살리기 대책 등 경기부양책을 추가로 내놓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은행도 오는 11일 현재 연 1.75% 수준인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시장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고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고위관계자는 "이번 금통위에서는 기준금리 결정에 영향을 주는 가계부채 동향 등 다양한 지표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게 될 것"이라며 "고려 요소 중에는 메르스 변수도 물론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경기 살기기 방안으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쓰는 문제를 놓고 다소 온도 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부진과 디플레이션을 타개하고 메르스의 악영향을 줄이려면 우선 적극적인 통화정책과 함께 추가로 재정정책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임희정 박사도 "메르스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추경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통화정책도 병행해야 정책 효과가 커질 수 있다"고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근태 수석연구위원은 기준금리 인하에는 동의했지만, 추경 편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반면에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메르스 사태를 기준금리 인하와 연결짓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재정정책은 피해를 본 업계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