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태양 흑점이 폭발했다. 곧이어 태양 표면에 존재하는 높은 에너지를 가진 ‘플라즈마’ 입자들이 우주로 방출됐다. 이 플라즈마 입자들은 인공위성에 고장을 일으키거나 지구 통신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기도 한다.
이런 뉴스를 접하다 보면 플라즈마는 인류에게 해로운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최근 플라즈마를 응용한 기술이 우리 삶 깊숙히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다. 차세대 에너지원에서 살균, 질병 치료, 농업까지 다양하다.
먼저 플라즈마에 대해 알아보자. 플라즈마는 우주의 99%를 구성하는 물질이다. 고체도, 액체도, 기체도 아니라서 제 4의 물질로 불린다. 고체에 열을 가하면 액체가 된다. 액체에 더 높은 열을 주면 기체가 된다. 기체 상태 물질에 더 큰 열과 압력을 가하면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와 전자가 분리돼 양의 성질을 띄는 이온과 음의 성질을 갖는 전자가 서로 공존하는 상태가 된다. 이를 플라즈마라고 부른다.
플라즈마는 1879년 방전관에서 처음 발견됐다. 현재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28년이다. 1970년대 반도체 제조 공정에 본격 활용되기 시작했다. 반도체에는 칩을 만드는 회로를 그려 넣는다. 이때 부식액을 사용한다. 부식액으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 회로를 그린다. 그런데 회로가 너무 작으면 부식액을 쓸 수 없다. 회로까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게 된 게 플라즈마다. 반도체 기판 위에 만들고 싶은 형태 회로가 담긴 ‘마스크’를 올려 놓고 플라즈마 형태로 물질을 쏴주면 수 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크기 회로를 만들 수 있다. 유석재 국가핵융합연구소 선임단장은 “반도체 칩 하나 만드는 공정의 약 80%가 플라즈마로 이루어져 있다”며 “플라즈마로 고성능 칩 개발이 가능해지면서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도 탄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이후 플라즈마는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기 시작했다. 현재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분야는 의료 부문이다. 플라즈마는 살균 효과를 갖고 있는데, 이를 피부나 조직에 쏴서 암세포나 세균 등을 없애는 방식이 임상시험 직전까지 진행됐다. 김병환 세종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플라즈마는 조만간 질병 치료를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플라즈마를 활용해 에너지를 얻는 기술도 상당히 진전됐다는 평가다. 고온의 플라즈마를 저급 화석연료와 분뇨, 폐기물 연료 등에 쏘아서 완전 연소시킨 뒤, 여기서 발생하는 증기를 이용해 터빈을 돌려 전기를 얻을 수 있다. 핵융합연구소 제1호 연구소기업인 ‘그린사이언스’는 이미 2013년 태백에 1MW(메가와트)급 시범용 플랜트를 만든 뒤 가동하고 있다. 이봉주 한동대 첨단그린에너지환경학과 교수(그린사이언스 대표)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축산 분뇨를 플라즈마로 태워 연료화하면 800MW(메가와트)급 발전이 가능하다”며 “환경 문제를 줄일 수 있는 차세대 에너지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플라즈마 살균 효과를 음식에 적용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김치연구소와 핵융합연구소는 플라즈마를 김치에 적용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플라즈마에는 ‘라디칼’이라는 활성산소·활성질소가 존재하는데 이 물질이 세균을 잡아낸다. 김치 맛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이유는 유산균 종류와 숫자가 달라지기 때문인데, 플라즈마를 김치에 쏴서 특정 유산균 수를 일정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365일 아삭아삭한 김치 맛을 유지할 수 있다.
플라즈마는 핵융합 발전에도 활용된다. 핵융합 발전은 거대 에너지를 끊임 없이 내뿜고 있는 태양의 원리를 지구에서 재현하기 위한 시도인데 이 과정에 높은 온도의 플라즈마가 필요하다. 핵융합에 사용하는 중수소 0.03g만 있으면 서울과 부산을 3번 왕복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휘발유 300L에 해당하는 양이다. 아직 활용까지는 30년 이상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병환 교수는 “국내에서는 플라즈마 활용이 반도체 제조에 머물러 있지만 일본, 미국, 네덜란드 등은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분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플라즈마를 다각도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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