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로자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092시간(2012년기준)으로 OECD 회원국중 2번째로 근로시간이 길고 평균치 보다도 420시간 더 오래 일한다. 최근에는 해외에서 '주말에도 일하는 나라'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장시간 근로의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그러나 경기불황이 지속되고 양극화가 심화된 현실에서 실제 노동자들은 여전히 근로 조건의 개선을 체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주위에서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리는 직장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긴 근무시간이 뇌출혈(출혈성 뇌출혈) 발생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루 평균 13시간 일하는 사람은 4시간 일하는 사람보다 뇌출혈 발생 위험이 무려 94%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당서울대병원 뇌신경센터 김범준 교수는 '과로와 출혈성 뇌졸중의 위험성'을 주제로 우리나라 근로자의 노동 조건과 출혈성 뇌출혈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국제 뇌졸중 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Stroke)'에 발표했다고 30일 밝혔다.
김범준 교수팀은 출혈성 뇌졸중 환자 940명과 정상인 대조군 1880명의 직업, 근무시간, 근무 강도 및 교대 근무 여부를 수집해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뇌출혈 발생 위험은 하루 평균 노동시간, 노동 강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3시간을 넘는 노동자는 하루 4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사람보다 뇌출혈이 발생할 위험이 94%나 높았으며, 우리나라 직장인의 대부분이 해당하는 9~12시간의 경우에도 그 위험이 38%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 강도도 뇌출혈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육체적으로 격한 근무를 1주일에 8시간 이상 지속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출혈 발생 위험이 77% 높았다. 이 경우 격한 근무를 1시간만 줄여도 위험도가 30%로 떨어졌다.
또 사무직(화이트 칼라) 종사자보다 신체 움직임이 많은 생산직(블루 칼라)종사자는 뇌출혈 발생 위험이 약 33% 더 높았다. 이에 반해 주야 교대 근무의 여부와는 특별한 관련이 없었다.
김범준 교수는 "과도한 업무로 인한 과로가 사망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잘 알려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노동 조건이 출혈성 뇌졸중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보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격무에 시달리는 노동자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고혈압 등의 문제가 생기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없어 병원을 찾아 이를 치료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관련돼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근로개정법에 명시된 법정근로시간은 주 5일, 40시간이다. 최근에는 초과 근무를 포함한 법정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려는 법안도 발의됐다.
김범준 교수는 "건강을 위해 퇴근 후 적당한 운동과 휴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평소 혈압이 높은 사람은 과로하지 않는 것이 뇌출혈을 예방하는데 있어 최선의 방법이며, 장시간 근로가 불가피한 상황일수록 혈압관리와 함께 금주와 금연 등 생활습관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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