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가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건희 회장 컬렉션 중 피카소 도자기(112점)를 기증했다는 신문 기사를 본 후 피카소 작품이 궁금해서 왔어요."(40대 여성 관람객)
피카소 특별전 `신화속으로` 전시장 입구에서 소독을 하고 있는 관람객들. [사진 제공 = 비채아트뮤지엄]
서양 근대 걸작들이 수두룩한 '세기의 기증품'에 대한 국민들의 폭발적인 호기심이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신화속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1일 가랑비가 내리는데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장 입구에서 시작된 관람줄이 야외 광장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동시입장 인원을 129명으로 제한해 오후 7시 미술관 문을 닫을 때까지 대기 관람객들로 북적거렸다. 이날 오전 10시 개막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오자 전시주관사 비채아트뮤지엄은 "바이러스 소독제를 분사하는 방역기를 설치해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피카소 '정면, 측면 얼굴과 두 올빼미장식으로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꽃병'(1961) ⓒ 2021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삼성가가 기증한 피카소 도자기 실물은 아직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번 전시장에는 피카소가 다채로운 그림을 그린 도자기 작품 29점이 펼쳐졌다. 1948년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작은 도자기 마을 발로리스에 정착해 작업한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작 '정면, 측면 얼굴과 두 올빼미장식으로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꽃병'(1961년), '알을 품은 비둘기'(1953년), '벽돌 조각, 여인의 두상'(1962년) 등은 피카소가 흙과 불의 힘을 빌려 완성한 예술품들이다.기증품 목록에선 빠졌지만 '이건희 컬렉션' 관련 언론 보도에 피카소 회화 '도라 마르의 초상' 사진이 자주 게재된 덕분에 이번 전시에 걸린 피카소 연인 도라 마르의 다른 초상화 3점과 또 다른 뮤즈였던 마리 테레즈 초상화 5점이 덩달아 화제가 됐다.
사진작가였던 도라 마르는 전쟁 중에 피카소가 파리 작업실에서 독일 나치 점령군의 감시를 받으면서 작품에 몰두할 때 만났던 여인이다. 9년간 피카소 작품 모델이 됐으며 스페인 내전 비극을 담은 대작 '게르니카'(1937년)를 제작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번 전시장에는 암울한 시대 상황을 반영한듯 고통으로 일그러진 도라 마르 초상화 '모자를 쓴 여인의 상반신'(1941년) 등이 걸려 있다. 대부분 도라 마르 초상화가 뒤틀리고 왜곡된 반면에 '파란 모자를 쓴 여인의 상반신'(1944년)은 담담하고 우아한 모습이다. 밝은 푸른색과 초록색으로 전후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을 그렸다.
피카소 '시계를 찬 여인'(1936) ⓒ 2021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마리 테레즈는 도라 마르에게 피카소를 뺏긴 여인이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듯한 슬픈 눈을 표현한 그의 초상화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인'(1937년)이 이별 시기에 그려졌다. 피카소는 애정이 식었지만 딸 마야를 낳아준 이 여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담아 노년의 모습을 상상한 '창문 앞에 앉아있는 여인'(1937년)을 완성했다. 또 다른 초상화 '시계를 찬 여인'(1936년)은 젊고 아름다운 그를 화려한 색채와 유연한 곡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피카소 '피에로 복장의 폴'(1925) ⓒ 2021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피카소가 첫 부인이자 러시아 발레단 무용수 출신 올가 코클로바 사이에서 난 아들 폴을 그린 '피에로 복장의 폴'(1925년)도 눈길을 끈다. 인물과 사물 형태를 해체하고 재구성한 입체주의 실험을 하던 피카소가 1920년대 고전주의로 회귀한 작품이다. 팔을 허리춤에 갖다대고 꿋꿋한 자세로 서 있는 아들을 늠름하게 그렸다. 화려한 여성편력을 보였던 피카소는 평생 두 번 결혼하고 연인 7명을 뒀으며 자녀 4명을 낳았다.이 작품들을 비롯해 6·25전쟁 참상을 담은 대작 '한국에서의 학살'(1951년) 등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 소장품 110여점으로 구성된 특별전은 8월 29일까지 열린다. 3년간 준비 끝에 성사시킨 대규모 전시로 전체 작품가격이 2조원, 보험평가액이 9000억원에 달한다.
피카소 사망 후 유족들이 막대한 상속세 대신 미술품 200여점을 기증해 설립된 국립피카소미술관은 프랑스 '상속세 물납제'의 산물이다. 삼성가가 국민의 문화 향유를 위해 이건희 회장의 대규모 미술품 컬렉션을 사회에 환원하자 국내에서도 기증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통해 미술품 기부를 활성화하는 상속세 물납제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도 곧 법안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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