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총칼 앞에 선 임산부와 아이들이 공포에 질려 있다. 실오라기조차 걸치지 못한 회색빛 몸은 곧 다가올 죽음을 암시하듯 창백하다. 저 너머 언덕 위 작은 집은 폭격으로 파괴돼 있다.
스페인 출신 입체주의 창시자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1951년 한국 전쟁 참상을 고발한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이 국내에 처음 전시된다.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 소장품으로 5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Into the Myth(신화속으로)'를 장식한다.
폭 2m에 달하는 이 작품은 과거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이 여러 차례 국내 전시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작품이다. 피카소는 1951년 1월 이 그림을 완성해 4개월 후 파리 '살롱 드메 전'에 공개했다. 한국전쟁 중 특정 지역 학살을 그렸다는 설도 있었지만, 피카소는 1998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낸 저서 '예술에 관한 글'을 통해 "전쟁의 모습을 표현할 때 나는 오로지 '잔혹성'만을 생각한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 군인들의 군모와 군복 같은 것들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피카소가 한국전쟁을 그린 유일한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은 스페인 내전 비극을 담은 그림 '게르니카'(1937년), 제2차 세계대전을 그린 '시체구덩이'(1944~1946년)와 더불어 피카소의 반전예술 3대 걸작으로 일컫는 작품이다. 힘 있는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해 저지르는 만행을 작품을 통해 고발하면서 인류애를 실현하고자 했다. 탄생 후 70년 만에 작품 배경인 한국을 찾은 이 작품은 우리의 지난 역사에 대한 교훈일 뿐만 아니라 휴머니스트였던 피카소의 평화에 대한 염원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의 학살'을 비롯해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걸작 110여점을 펼칠 예정이다. 피카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마리 테레즈의 초상', '피에로 옷을 입은 폴'을 비롯한 유화와 판화, 도자기 등을 전시한다.
전시주관사 비채아트뮤지엄은 "그동안 국내에서 피카소 전시회는 여러 차례 열렸지만 파리 국립피카소미술관의 대규모 걸작이 한국을 찾는 것은 처음"이라며 "특히 피카소의 청년 시절인 1900년대 초부터 황혼기인 1960년대까지 예술 여정을 연대기별로 한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는 매우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1951년작 '한국에서의 학살'ⓒ 2021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국립피카소미술관은 최근 국내에서 상속세 물납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롤모델로 주목받는 곳이다. 1973년 피카소가 사망한 후 유족이 상속세 대신 미술품 200여점을 기증한 덕분에 1985년 문을 열었다. 피카소 전 생애를 아우르는 회화, 조각, 판화, 데생, 도자기, 자료 등 방대한 소장품 5000여점을 소장해 작가의 삶과 예술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보고이기도 하다.이번 전시작 중에서 피카소 연인이자 뮤즈 마리 테레즈 초상화가 눈길을 끈다. 의자에 편히 앉아있는 상반신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여인의 시선은 화가를 향하고 있다. 피카소가 존경했던 19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앵그르(1780~1867)의 작품 '므와테시에르 부인의 초상'(1856)에 영감을 받은 자세다. 전통 화법에서 벗어난 구도에도 불구하고 모델의 젊고 밝은 분위기를 화사하게 담아내고 있다. 여성성을 돋보이게 하는 곡선, 명암 대비 효과 없이 색채만으로 인물에 입체감을 주는 피카소 재능을 엿볼 수 있다.
1926년 45세 피카소는 아내 몰래 17세 테레즈를 만난 후 딸 마야를 낳았다. 1930년 노르망디 부아젤루 작은 성을 매입해 함께 살면서 테레즈를 모델로 유화와 조각 작업에 몰두했다. 새로운 연인이자 젊은 사진 작가 도라 마르가 등장하기까지 10여년간 관계가 지속됐다고 한다. 테레즈는 피카소 사망 4년 후인 1977년 스스로 목을 매달아 생을 마감했다. 딸 마야는 사후 소송을 통해 피카소 유족으로 인정받아 유산 일부를 상속받게 된다.
피카소의 예술은 그가 사랑한 여인들과 분리해서 논할 수가 없다. 입체파시대를 함께 했던 페르낭드 올리비에로부터 젊은 나이에 병사한 에바 구엘, 첫 부인 올가 코클로바, 청순하고 어린 테레즈, '게르니카'의 산 증인이었던 도라 마르, 두 자녀를 낳고 그를 떠난 프랑수와즈 질로,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 자클린 로크에 이르기까지 여인들이 예술의 원동력이 됐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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