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문화는 두 번의 '기적'을 만들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탄소년단(BTS)의 빌보드 차트 1위와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음악과 영화라는 재료는 다르지만, 두 '월드클래스'가 세계를 공략한 전략은 닮았다. 플랫폼과 세계관, 팬덤이라는 '삼두마차'야말로 이들을 세계 대중문화의 정점에 서게 만든 비결이다.
① 1인치 언어 장벽 넘은 플랫폼
태초에 스트리밍 플랫폼이 있었다. 2013년 BTS가 처음 데뷔했을 때, 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한 번도 남자 아이돌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당시 아이돌 산업은 SM·JYP·YG엔터테인먼트 3대 기획사 중심이었고 공고한 체계가 잡혀 있었다. 지상파 음악방송, 앨범 판매, 예능 프로그램 출연, 몇 개월간 지속되는 해외투어 등이 그것이다.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의 선택은 달랐다. 이들의 무기는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달려라방탄'과 같은 자체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공연장 백스테이지 영상과 연습실 영상, 숙소 영상 등 자체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 유튜브에 공개했다. 지난 3일 BTS는 인터넷상 영향력을 집계하는 미국 빌보드 '소셜 50' 차트에서 164주 연속 선두를 지키며 최장기 1위를 차지한 가수가 됐다. BTS 뮤직비디오 중 21편이 1억뷰를 넘었고, 빅히트의 유튜브 구독자는 3220만명에 달한다.
봉준호 감독은 넷플릭스가 선택한 감독이다. 넷플릭스는 그의 5번째 장편 '옥자'(2017)에 5000만달러(약 590억원) 제작비를 전액 투자해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했다. '옥자' 외에도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등은 전 세계 190여 개국 1억7000만명에게 스트리밍되며 어디서나 자막을 통해 '봉준호 월드'를 만날 수 있게 했다. '기생충'을 통해 세계적으로 히트한 '제시카 징글'과 아카데미 수상 소감 등은 유튜브를 통해 자막과 함께 수백만 회씩 조회되고 있다. 두 플랫폼이야말로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게 한 원동력인 셈이다. LA타임스 비평가 메리 맥너머라는 "넷플릭스 없이 '기생충'의 성공도 없었다"면서 "넷플릭스가 현실을 투영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저명한 영화 평론가나 영화 아카데미 등이 해내지 못했던, 자막이 '장벽'이 아닌 '다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에게 증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② 독자적인 세계관
BTS는 '세계관 아이돌'로 불린다. 모든 음악과 뮤직비디오는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며 확장된다. 바로 '청춘'의 성장 스토리다. 데뷔 때부터 BTS는 '흙수저 아이돌 성공기'라는 확고한 스토리텔링을 구축했다. 이들의 음악은 '학교 3부작' '청춘 3부작'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로 이어지며 소년에서 청년이 되는 성장 과정을 따라간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피땀 눈물), 어설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봄날) 등 문학 작품을 연상시키는 모티브를 음악에 담고, 팬들은 이 단서들을 활용해 세계관을 해석한다. 팬들은 뮤직비디오를 수없이 반복해 보면서 숨겨진 '떡밥'을 찾고 공유한다. 이 세계관 구축으로 BTS 팬클럽 'ARMY'(아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팬덤으로 성장했다. BTS가 '21세기 비틀스'(영국 BBC)로 수식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BTS 세계관을 담은 웹툰, 책, 게임, 드라마도 출시되며 이들의 세계관은 확장 중이다.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6), '기생충'(2019)까지 봉 감독의 모든 영화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연결되며 거대한 '봉준호 월드'를 만든다. 그의 영화에는 지하공간이 있고, 냄새가 있고, 터널이 있다. 공교히 나뉜 계급이 있고, 모호한 선악의 구분이 있다. 봉준호 월드가 집대성된 '기생충'을 팬들은 반복 관람하며 영화 속 '상징'인 산수경석, 계단, 냄새, 심지어 '짜파구리' 의미까지 찾아냈다.
일본의 저명한 평론가 사이토 미나코의 '문단 아이돌론'은 자국의 '하루키 신드롬'을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주인공을 레벨업시켜가며 새로운 적과 끊임없이 싸우는 '드래곤 퀘스트' 등의 롤플레잉 게임과 닮았다"고 분석한 적 있다. 이를 봉 감독에게 대입시켜 해석하면 이런 공식도 가능해진다. 39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봉 감독 영화는 온 국민이 '봉준호 퀘스트'에 열중하게 만들었다고.
봉 감독의 팬덤인 '봉하이브'의 열광적인 활동이야말로 북미에서 그의 지명도를 끌어올린 1등 공신이다. '기생충'의 북미 진출 후 트위터에선 봉 감독의 사진이나 영상을 재치 있게 패러디한 '봉준호 밈(Meme)'이 넘쳐난다.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인 지난 9일 전 세계 실시간 트위터 검색어 2위는 '기생충', 7위가 '봉준호'였을 정도다.
이들은 봉 감독의 수상 장면이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이나 짧은 영상으로 재가공하고 '봉하이브(BongHive)'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공유하며 흥행 열기를 지피고 있다. 직원이 28명에 불과한 소규모 북미 배급사 네온도 적극적인 SNS 홍보에 나서며 팬덤을 결집시켰다. 버라이어티는 "'봉하이브'가 Z세대, 밀레니얼 등 젊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아카데미 후보작이 통상 높은 연령층에 지지받는 것과 다르다"고 보도했다.
BTS의 아미도 숫자만 100만명에 육박하는 자타공인 세계 최강 팬클럽이다. BTS는 기존 아이돌의 신비주의 전략을 타파하고 팬카페와 SNS에서 채팅과 댓글을 통해 그 어떤 아이돌보다도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했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자신들의 거대한 글로벌 팬덤을 만든 비결이다. 마케팅 구루 세스 고딘의 이론에 따르면 BTS의 성공 비결은 '부족(Tribe)'을 만들었다는 점. 아미라는 부족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힘이 BTS를 세계 정상을 올려 놓았다. 이규탁 한국 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는 '갈등하는 K팝'에서 "기획사의 이름값이 아닌 스스로의 힘과 노력, 실력, 팬들과의 끊임없는 직접 소통 등을 통해 스스로 해외 시장에 진출했고, 그 결과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팬덤을 형성했다"면서 "BTS를 전형적인 K팝 그룹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① 1인치 언어 장벽 넘은 플랫폼
태초에 스트리밍 플랫폼이 있었다. 2013년 BTS가 처음 데뷔했을 때, 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한 번도 남자 아이돌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당시 아이돌 산업은 SM·JYP·YG엔터테인먼트 3대 기획사 중심이었고 공고한 체계가 잡혀 있었다. 지상파 음악방송, 앨범 판매, 예능 프로그램 출연, 몇 개월간 지속되는 해외투어 등이 그것이다.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의 선택은 달랐다. 이들의 무기는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달려라방탄'과 같은 자체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공연장 백스테이지 영상과 연습실 영상, 숙소 영상 등 자체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 유튜브에 공개했다. 지난 3일 BTS는 인터넷상 영향력을 집계하는 미국 빌보드 '소셜 50' 차트에서 164주 연속 선두를 지키며 최장기 1위를 차지한 가수가 됐다. BTS 뮤직비디오 중 21편이 1억뷰를 넘었고, 빅히트의 유튜브 구독자는 3220만명에 달한다.
봉준호 감독은 넷플릭스가 선택한 감독이다. 넷플릭스는 그의 5번째 장편 '옥자'(2017)에 5000만달러(약 590억원) 제작비를 전액 투자해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했다. '옥자' 외에도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등은 전 세계 190여 개국 1억7000만명에게 스트리밍되며 어디서나 자막을 통해 '봉준호 월드'를 만날 수 있게 했다. '기생충'을 통해 세계적으로 히트한 '제시카 징글'과 아카데미 수상 소감 등은 유튜브를 통해 자막과 함께 수백만 회씩 조회되고 있다. 두 플랫폼이야말로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게 한 원동력인 셈이다. LA타임스 비평가 메리 맥너머라는 "넷플릭스 없이 '기생충'의 성공도 없었다"면서 "넷플릭스가 현실을 투영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저명한 영화 평론가나 영화 아카데미 등이 해내지 못했던, 자막이 '장벽'이 아닌 '다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에게 증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② 독자적인 세계관
BTS는 '세계관 아이돌'로 불린다. 모든 음악과 뮤직비디오는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며 확장된다. 바로 '청춘'의 성장 스토리다. 데뷔 때부터 BTS는 '흙수저 아이돌 성공기'라는 확고한 스토리텔링을 구축했다. 이들의 음악은 '학교 3부작' '청춘 3부작'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로 이어지며 소년에서 청년이 되는 성장 과정을 따라간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피땀 눈물), 어설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봄날) 등 문학 작품을 연상시키는 모티브를 음악에 담고, 팬들은 이 단서들을 활용해 세계관을 해석한다. 팬들은 뮤직비디오를 수없이 반복해 보면서 숨겨진 '떡밥'을 찾고 공유한다. 이 세계관 구축으로 BTS 팬클럽 'ARMY'(아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팬덤으로 성장했다. BTS가 '21세기 비틀스'(영국 BBC)로 수식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BTS 세계관을 담은 웹툰, 책, 게임, 드라마도 출시되며 이들의 세계관은 확장 중이다.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6), '기생충'(2019)까지 봉 감독의 모든 영화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연결되며 거대한 '봉준호 월드'를 만든다. 그의 영화에는 지하공간이 있고, 냄새가 있고, 터널이 있다. 공교히 나뉜 계급이 있고, 모호한 선악의 구분이 있다. 봉준호 월드가 집대성된 '기생충'을 팬들은 반복 관람하며 영화 속 '상징'인 산수경석, 계단, 냄새, 심지어 '짜파구리' 의미까지 찾아냈다.
일본의 저명한 평론가 사이토 미나코의 '문단 아이돌론'은 자국의 '하루키 신드롬'을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주인공을 레벨업시켜가며 새로운 적과 끊임없이 싸우는 '드래곤 퀘스트' 등의 롤플레잉 게임과 닮았다"고 분석한 적 있다. 이를 봉 감독에게 대입시켜 해석하면 이런 공식도 가능해진다. 39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봉 감독 영화는 온 국민이 '봉준호 퀘스트'에 열중하게 만들었다고.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봉준호 감독. [사진출처 = 연합뉴스]
③ 열광적인 글로벌 팬덤봉 감독의 팬덤인 '봉하이브'의 열광적인 활동이야말로 북미에서 그의 지명도를 끌어올린 1등 공신이다. '기생충'의 북미 진출 후 트위터에선 봉 감독의 사진이나 영상을 재치 있게 패러디한 '봉준호 밈(Meme)'이 넘쳐난다.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인 지난 9일 전 세계 실시간 트위터 검색어 2위는 '기생충', 7위가 '봉준호'였을 정도다.
이들은 봉 감독의 수상 장면이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이나 짧은 영상으로 재가공하고 '봉하이브(BongHive)'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공유하며 흥행 열기를 지피고 있다. 직원이 28명에 불과한 소규모 북미 배급사 네온도 적극적인 SNS 홍보에 나서며 팬덤을 결집시켰다. 버라이어티는 "'봉하이브'가 Z세대, 밀레니얼 등 젊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아카데미 후보작이 통상 높은 연령층에 지지받는 것과 다르다"고 보도했다.
BTS의 아미도 숫자만 100만명에 육박하는 자타공인 세계 최강 팬클럽이다. BTS는 기존 아이돌의 신비주의 전략을 타파하고 팬카페와 SNS에서 채팅과 댓글을 통해 그 어떤 아이돌보다도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했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자신들의 거대한 글로벌 팬덤을 만든 비결이다. 마케팅 구루 세스 고딘의 이론에 따르면 BTS의 성공 비결은 '부족(Tribe)'을 만들었다는 점. 아미라는 부족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힘이 BTS를 세계 정상을 올려 놓았다. 이규탁 한국 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는 '갈등하는 K팝'에서 "기획사의 이름값이 아닌 스스로의 힘과 노력, 실력, 팬들과의 끊임없는 직접 소통 등을 통해 스스로 해외 시장에 진출했고, 그 결과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팬덤을 형성했다"면서 "BTS를 전형적인 K팝 그룹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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