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빛 등 찬란한 무늬 가운데 배우 김혜자의 두 얼굴이 마주보고 있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연필 작품으로 유명한 화가 홍경택이 영화 '마더'를 담은 그림이다. 배우 마를린 먼로, 스칼렛 요한슨 등 스타들의 오라(Aura)를 표현한 '펑키스트라' 시리즈 중 하나다.
홍 작가는 "영화를 본 후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김혜자의 텅 빈 표정이 머리 속에 깊이 남았다"면서 "주변의 화려한 무늬로 현대인의 강박증에 가까운 시각적 자극과 경험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좋아하는 박찬욱 감독을 그린 '펑키스트라' 연작도 서울 잠실 에비뉴엘아트홀에 걸렸다. 김동유, 노세환, 문형태, 우국원, 이피, 황주리 등 현대미술 작가 100명이 한국 영화 100년을 반추한 전시 '100 무비(Movies) 100 아티스트(Artist)'를 위해서다. 롯데갤러리가 28일까지 전국 10개 지점에서 동시에 여는 '비하인드 더 신즈(Behind the Scenes)' 일환이다.
보헤미안 랩소디 전시전경
영화 뿐만 아니라 음악, 무용이 미술 전시장으로 들어왔다. 현대미술가 7명이 영국 록 그룹 '퀸' 전설을 설치·영상·회화 작품으로 풀어낸 '보헤미안 랩소디 : 퀸 월드투어전시'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10월 6일까지 펼쳐진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는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춤 인생 30주년을 풀어놓은 회고전 '안은미래'가 9월 29일까지 열린다.영화, 음악, 무용이 다른 예술 장르로 확장되면서 색다른 매력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수명이 연장되는 효과가 있다. 영화나 공연은 극장과 무대에서 몇 시간 펼쳐지는 '시간의 예술'이지만 미술 전시장에서는 수개월 지속 가능하다. 요즘 유행하는 장르 간 융복합 예술 실험이기도 하다.
잠실 에비뉴엘아트홀에서는 팝아트 작가 김동유가 영화 '맨발의 청춘' 포스터 속 신성일을 수많은 픽셀로 완성한 작품, 인기 작가 우국원이 영화 '터널'을 노란 빛이 쏟아지는 손전등을 들고 있는 개로 표현한 그림 등이 인상적이다. 이지현 작가가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 포스터를 프린터해 기생충처럼 구겨놓은 구조물도 눈길을 붙잡는다.
사진 작가 구본창이 포착한 영화 '서편제' '취화선' '춘향전' 등의 주요 장면, 사진 작가 오형근이 작업한 '공동경비구역 JSA' '장화, 홍련' 등, 홍장현 작가가 담은 '아가씨' '신과함께' 등의 사진도 감상할 수 있다. 영화 컬렉터인 양해남, 최규성, 최지웅이 모아온 포스터와 전단지 등도 전시돼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 전시 전경
퀸의 강렬한 음악은 빛과 물감으로 되살아났다. 대표곡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영어와 한국어 가사가 붉고 노란 네온사인 400개로 빛났다. 지난해 관객 994만여명을 동원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영상이 흘러나오는 TV브라운관 30대를 지나면 프레디 머큐리가 입었던 청바지와 흰색 러닝셔츠가 유리관에 우뚝 서 있다. 1985년 관객 7만2000명이 들어찬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착용해 프레디 머큐리의 상징으로 남은 의상이다.전시는 프레디 머큐리의 파란만장한 삶과 퀸 음악에 담긴 메시지 등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혼란스러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고민, 성(性) 정체성 문제는 퀸이 살았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공감이 간다.
전시장 입구에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등장했던 프레디 머큐리 방을 재현한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 공간이 나온다. 피아노와 붉은 유럽풍 의자 탁자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전설적 가수의 흔적을 품고 있다.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는 프레디 머큐리가 오랜 뮤즈이자 소울 메이트였던 메리 오스틴과의 사랑 이야기를 토대로 쓴 곡으로, 전시장에는 두 사람의 다정했던 시절을 기록한 사진이 걸려 있다.
'라디오 가 가(Radio Ga Ga)'방에는 스위스 몽트뢰에 세워진 프레디 머큐리 동상을 원형 그대로 제작한 조각작품, 펩시 콜라 종이컵이 올려진 그랜드 피아노를 재현한 설치·미디어 작품이 있다. 퀸 매니지먼트사인 퀸 프로덕션, 머큐리 피닉스 재단이 소장한 퀸 앨범과 의상, 작곡 노트, 뮤직 비디오 등도 전시됐다.
안은미래 전시전경
'인간은 춤추는 동물이다'는 신조로 살아가는 안은미 전시장에는 투명한 공 수백개가 굴러다니고 있다. 그 안에는 안은미의 삶과 예술을 포착한 사진이 들어 있다. 천정에는 그가 입었던 무대 의상이 주렁 주렁 매달려 있고, 벽에는 그의 일대기 회화가 펼쳐져 있다. 이후 오랜 협업자이자 작곡가 장영규가 제작한 사운드, 형형색색 조명 아래 빛나는 무대가 기다린다. 이 곳에서 관람객들도 춤을 출 수 있다. 그들의 몸짓이 모두 현대미술 작품이 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댄스 레슨 프로그램 '몸춤', 공연 리허설 '눈춤', 인문학 강연 '입춤' 등이 준비돼 있다.[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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