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기는 삶을 살아왔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해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법무법인에 들어가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라는 생소한 분야를 개척했다. 돌연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진 그는 키이스트, 킹콩, JYP 등 쟁쟁한 연예기획사에서 배우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다. 남들이 보기엔 사회적 성공에 화려함까지 겸비한 인생인데, 몇 년 전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뭔가 놓치고 있다.'
불안함을 떨치려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다녀와 여행산문집 '남자, 친구'(라이프맵 펴냄)를 출간한 표종록 JYP엔터테인먼트 부사장(48)을 최근 강남 한 카페에서 만났다. 책은 드라마 '추노', 영화 '7급 공무원' 각본을 집필한 동갑내기 친구 천성일 작가와 함께 쿠바를 다녀와서 공동 집필한 여행기다. 중년의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행선지가 왜 하필 쿠바여야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멀어서"라고.
"사실 저희가 원래 여행 콘셉트로 잡았던 것은 '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기'였어요. 40대 남자들은 사실 한국에서 과로사가 제일 많잖아요. 일에 대한 중압감은 느껴지고,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늦은 것 같고, 그런데 이룬 것도 없는 것 같고…. 가족 여행도 가긴 하지만 식구들을 챙기다 보면 온전히 즐기기가 어렵잖아요. 마음이 맞는 친구와 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는 게 저희 의도였어요."
여행지가 아니라 '나'를 더 깊이 즐기는 여행. 여기서 여행은 더 먼 세상을 탐욕스럽게 '줌인'하는 망원경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현미경으로서 기능한다. 바쁘게 사느라 생긴지도 모른 채 지나쳤던 생채기를 더듬는다. 아바나 거리 위를 다니는 형형색색 올드 카를 보던 그가 자동차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는 순간이 그렇다. 그는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부친이 사법시험 공부 중인 아들에게 병환을 숨긴 까닭이다. 아버지가 사랑하던 차를 중고차 매수인이 가지고 가던 날 그는 비로소 이별을 실감했고,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지구 반대편에서 그때의 기억과 다시 마주한다.
"써 놓고 읽을 때마다 슬프게 느껴지는 부분이에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때문이죠.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신 적이 있었는데, 저는 그때 다 나으셨다고 생각한 거예요. 한국에서는 좀 힘든 수술이라 아버지가 포기하시고 말씀하시지 않았던 거죠."
그는 여행지가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또한 쿠바만큼 자기와의 대화에 적합한 여행지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쿠바 트리니다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곳인데요. 도로에 개가 그냥 누워 있어요. 애들은 앉아 있고요. 시간이 되게 느리게 가는 느낌이죠. 저희가 그곳에 갔을 때만 해도 와이파이 존이 거의 없었어요. 저희는 하루에도 카톡이 몇백 개 오고, 메일이 100개씩 오는 삶을 살고 있는데요. 요즘엔 로밍이 잘되니깐 한국을 떠나도 시시때때로 한국을 느껴야 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쿠바는 저에게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소속 배우 요구엔 귀 기울여도 정작 자신에게 경청할 시간이 없는 게 그의 일이다.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그에겐 5분이 멀다 하고 전화가 왔다.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출현하면서 전 세계 무한 경쟁 체제가 열렸다고 진단하는 그는 또 한 번의 '불편한' 여행으로 스스로를 돌아볼 날을 고대하고 있다.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불안함을 떨치려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다녀와 여행산문집 '남자, 친구'(라이프맵 펴냄)를 출간한 표종록 JYP엔터테인먼트 부사장(48)을 최근 강남 한 카페에서 만났다. 책은 드라마 '추노', 영화 '7급 공무원' 각본을 집필한 동갑내기 친구 천성일 작가와 함께 쿠바를 다녀와서 공동 집필한 여행기다. 중년의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행선지가 왜 하필 쿠바여야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멀어서"라고.
"사실 저희가 원래 여행 콘셉트로 잡았던 것은 '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기'였어요. 40대 남자들은 사실 한국에서 과로사가 제일 많잖아요. 일에 대한 중압감은 느껴지고,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늦은 것 같고, 그런데 이룬 것도 없는 것 같고…. 가족 여행도 가긴 하지만 식구들을 챙기다 보면 온전히 즐기기가 어렵잖아요. 마음이 맞는 친구와 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자는 게 저희 의도였어요."
여행지가 아니라 '나'를 더 깊이 즐기는 여행. 여기서 여행은 더 먼 세상을 탐욕스럽게 '줌인'하는 망원경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현미경으로서 기능한다. 바쁘게 사느라 생긴지도 모른 채 지나쳤던 생채기를 더듬는다. 아바나 거리 위를 다니는 형형색색 올드 카를 보던 그가 자동차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는 순간이 그렇다. 그는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부친이 사법시험 공부 중인 아들에게 병환을 숨긴 까닭이다. 아버지가 사랑하던 차를 중고차 매수인이 가지고 가던 날 그는 비로소 이별을 실감했고,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지구 반대편에서 그때의 기억과 다시 마주한다.
"써 놓고 읽을 때마다 슬프게 느껴지는 부분이에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때문이죠.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신 적이 있었는데, 저는 그때 다 나으셨다고 생각한 거예요. 한국에서는 좀 힘든 수술이라 아버지가 포기하시고 말씀하시지 않았던 거죠."
그는 여행지가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또한 쿠바만큼 자기와의 대화에 적합한 여행지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쿠바 트리니다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곳인데요. 도로에 개가 그냥 누워 있어요. 애들은 앉아 있고요. 시간이 되게 느리게 가는 느낌이죠. 저희가 그곳에 갔을 때만 해도 와이파이 존이 거의 없었어요. 저희는 하루에도 카톡이 몇백 개 오고, 메일이 100개씩 오는 삶을 살고 있는데요. 요즘엔 로밍이 잘되니깐 한국을 떠나도 시시때때로 한국을 느껴야 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쿠바는 저에게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소속 배우 요구엔 귀 기울여도 정작 자신에게 경청할 시간이 없는 게 그의 일이다.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그에겐 5분이 멀다 하고 전화가 왔다.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출현하면서 전 세계 무한 경쟁 체제가 열렸다고 진단하는 그는 또 한 번의 '불편한' 여행으로 스스로를 돌아볼 날을 고대하고 있다.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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