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고색창연한 성들의 도시인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는 매년 여름 세계에서 가장 '힙'한 도시가 된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세계적 축제 에딘버러 페스티벌 덕분이다. 도시의 공연장들은 물론, 길거리 곳곳에서 한달 내내 연극·무용·넌버벌 퍼포먼스 등이 끊임 없이 이어지며 전 세계 450만 명의 관광객을 유혹한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공연장이 되는 셈이다.
매년 한국에서도 적잖은 공연 애호가들과 관계자들이 선망의 시선으로 에든버러를 찾는다. 그런데 올해는 그 선망을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채울 수 있을 전망이다.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은 가을밤 나흘간 서울 도심 곳곳이 무료 공연장이 된다. 영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한국 등 전 세계 8개국 출신의 세계적 예술단체들이 서울 길거리들에 자리를 잡는다. 웅장한 무대에서나 볼 수 있던 토슈즈 차림의 발레리나들은 광화문 횡단보도에서 우아한 춤을 춘다. 에든버러의 규모에는 못 미쳐도 함께 하는 즐거움 만큼은 꿀리지 않는다.
내달 10월 5일부터 8일까지 열리는 '서울거리예술축제 2017'은 유난히 긴 이번 추석 연휴 기간 도시에 머무는 시민들이 챙겨볼 만한 기회다. 나흘 간 서울광장과 서울 도심 곳곳에서 해외 작품 16개, 국내 작품 32개 등 총 48개의 수준급 무료 공연들이 펼쳐진다. 서울문화재단과 서울특별시가 주최하는 이 축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시작된 '하이서울페스티벌'을 작년부터 길거리 공연·전시예술에 초점을 맞춰 새롭게 단장한 결과물이다.
공중곡예와 무용, 서커스, 불꽃놀이와 넌버벌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을 망라한 이번 축제를 아우르는 주제는 '유쾌한 위로'. 지난해 겨울 시민들이 광장에서 정치적 혼란을 극복해가며 얻은 피로와 상처를 같은 장소에서 치유해보자는 의미다.
26일 광화문 인근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종석 서울거리예술축제 예술감독은 "촛불광장의 열기와 상처, 감격을 담고 현재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를 끌어 안는 축제를 지향했다"고 말했다. 그는 "거리예술이 아직 낯선 시민들을 위해 대중예술이나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과감한 컬래버레이션을 추구한 점이 이번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거리예술이 익숙지 않다면 주최측이 가장 공을 들인 개막작과 폐막작을 우선 눈여겨 볼 만 하다. 내달 5~6일 저녁 8시 서울광장에서 선보이는 개막작 '무아레(Muare Experience)'는 스페인·아르헨티나 배우들로 꾸려진 단체 '보알라'와 영국 락밴드 뒤샹 파일럿이 함께 만든 웅장한 공중 퍼포먼스다. 이들은 전 세계 20여개 국가에서 성공적인 투어를 마친 뒤 이번에 한국에서 작품을 초연한다. 휘황찬란한 대형 구조물들과 불꽃들 사이로 공중을 자유롭게 노니는 배우들의 몸짓과 라이브 음악 연주의 조합은 영화로 따지면 '블록버스터' 급이다. 특히 개막날인 5일 공연에는 국내의 대표적 뮤지션인 이승환밴드가 등장해 이들과 한 무대를 꾸민다. 폐막작으로는 스페인의 데브루 벨자크의 불꽃놀이 예술 '불꽃을 따라'와 한국의 불꽃놀이 예술 단체인 '화랑'의 '트랜스포밍 서울'이 선정됐다. 세종대로부터 서울광장까지 불꽃놀이와 화려한 무용, 리듬이 범벅된 퍼레이드 행렬이 이어지는 장면은 도심에서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이외에 동시대 청년들의 고민과 좌절을 담아낸 프랑스 '컴퍼니 아도크'와 한국 청년 배우들 합작 이동형 거리극 '비상'(10월 6~7일 청계천), 트램폴린 위에서 중력을 가지고 노는 듯한 무용수들의 개성적 몸짓을 담은 프랑스 얀 뢰르 무용단의 '그래비티.0'(10월5~6일 광화문 광장), 국내 대표적 현대무용단체인 LDP무용단의 첫 거리공연이자 화려한 의상과 몸짓으로 현대 사회의 고루한 편견들을 짚어낸 '룩 룩'(10월 6~7일 서울광장) 등이 기대작이다. 전 세계 각국 대도시의 공간들을 대형 전시장으로 만들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프랑스의 '그룹 랩스'는 이달 28일부터 내달 8일까지 광화문광장에서 방대한 조명 설치 예술 작품 '키프레임'을 선보인다.
그런가 하면 유니버설발레단·서울발레시어터·와이즈발레단 등 국내 6개 발레단으로 구성된 발레STP협동조합은 이달 27일 낮 12시 광화문 삼거리에서 도로에서 색다른 합동 발레 공연을 연다. '발레, 도시를 물들이다'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른바 '횡단보도 댄스'다. 평소 웅장한 공연장에서 엄숙하게 감상해야 하는 줄 알았던 발레를 평범한 일상 공간에서 부담없이 즐겨보자는 취지다. STP협동조합은 올해 수원 시내 일대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등을 거쳐 이번에 상징적인 도심 속 공간인 광화문 앞 대로에서 '횡단보도 댄스'를 처음으로 선보인다.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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