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경 사진[2] (1)
오직 선(線) 만으로도 산세(山勢)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산맥은 가파르게 달리다가도 젖무덤처럼 아늑하게 펼쳐졌다.동양화가 윤영경(42)이 새로운 필묵법으로 그린 산수화 '강산무진 2017'를 발표한다. 15~26일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9번째 개인전 '와유진경(臥遊眞景)'에서다. 꿈틀거리는 산맥을 묘사하기 위해 흙산은 먹칠로 양의 기운을, 여백으로 음의 기운을 표현했다.
그는 "물을 거의 안 쓰고 생먹으로 산줄기와 덩어리감을 표현했다"며 "대부분 먹물이 번져 퍼지게 하는 발묵(潑墨)으로 산을 그리며 선으로만 표현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신작 '강산무진 2017'은 세로 210cm, 가로 150cm 종이 30장을 이어 총 길이 45m에 달하는 장대한 수묵진경산수화다. 전시장 공간 제약으로 5~6장씩 끊어서 모두 23장을 선보인다. 가로로 길게 펼쳐지는 두루마리 횡권산수와 우리나라 산하를 직접 답사해 그리는 진경산수를 모두 보여주는 대작이다.
횡권산수의 전통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겸재 정선(1676~1759년)은 금강산 입구부터 내금강 마지막인 비로봉까지 긴 두루마리에 담아 몇 날 며칠의 여정을 한 폭에 담았다. 두루마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겸재가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걷는 것 같다. 윤 작가의 작품을 따라 가다보면 고성 동해바다에서 시작한 여정이 통영 남해바다를 거쳐 어느덧 경기 과천 관악산 자락까지 이어진다.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원은 "이것이야 말로 방안에 있으면서 참 경치를 유람한다는 와유진경(臥遊眞景)"이라며 "더군다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점(부감법)을 그림 전체에 적용해 하늘에서 날며 산과 물을 굽어보는 장쾌한 경험을 맛본다"고 평했다.
화폭에 담은 산천은 모두 화가가 살던 곳이다. 옛 시간과 공간을 담은 산수화는 하얀 종이 위에 검은 먹으로 줄줄이 추억을 꽃피었다.
탁 연구원은 "윤영경은 무수한 능선과 골짜기를 마치 조물주가 손으로 차근차근 빚은 듯 정성 들였다. 저 단단한 기운은 땅속을 흐르는 화강암 기운일 것이며 저 윤기나는 먹빛은 푸른 나무들의 싱싱함일 것"이라며 "검은색 하나로 이어진 저 산맥은 기의 덩어리인데 이 땅의 기운이 살아서 뻗어 나간 모습을 이보다 대담한 구성과 꼼꼼한 필치로 그린 화가는 없었다"고 호평했다.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윤 작가는 "요즘 한국화의 위기라고 하는데 산수화에 대한 목마름을 채우는 전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화여대 동양화과 박사 출신으로 2002년 첫 개인전 '그곳에···'(관훈갤러리)를 열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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