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지 오웰의 '1984'와 '동물농장'이 다시 서점가의 문학 부문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1984' 다시 읽기 바람이 한국까지 건너온 걸까. 그런 이유가 아니다. 열린책들이 작품에 대한 오웰의 구체적 생각을 담은 우크라이나판 특별 서문과 에세이 '작가와 리바이어던' 등을 책에 싣고, 표지를 다시 입힌 '리커버' 판으로 재출간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 국내 최고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간판주자는 '호밀밭의 파수꾼''오만과 편견''동물농장'이었다. 부동의 1~3위를 지키던 이 상위권 랭킹에 지난해부터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의 주인공은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다. 교보문고와 알라딘에서 각각 독점으로 리커버 판을 나란히 내면서 각각 3000부와 6000부(1·2권 합계)가 완판됐다.
다시 고전이 읽히고 있다. '고전의 부활'을 이끄는 일등 공신은 '리커버' 열풍이다. 고전이 낡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날려줄, 예쁘고 세련된 표지를 입고서 신간 못지 않은 파괴력을 자랑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서양 고전문학 도서의 지난해 판매량은 전년대비 8.5%가 상승한데 이어, 올 들어서는 4월까지 21.2%나 훌쩍 뛰었다. 2014년에는 판매량이 23%가 떨어졌고, 2015년에는 무려 40.5%가 급락한 걸 감안하면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독서계층도 서점가의 주고객인 여성보다 남성이 50.6%로 더 높은 것도 눈에 띄는 대목. 40대 여성(24.6%)과 30대 남성(23.9%)이 나란히 최대 독자층으로 자리를 잡았다.
고전의 이같은 몰락과 부활의 원인은 공교롭게도 모두 '개정 도서정가제'에서 왔다. 2014년 말 정가제의 시행 직전 독자들이 가장 많이 쓸어 담은 건 세계문학고전이었다. 당시 50%를 넘나드는 파격 세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호밀밭의 파수꾼' 등은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정가제 시행 이후 가격 메리트가 떨어지면서 판매는 곤두박질쳤다.
그러다 지난해 4월 교보문고가 독점으로 민음사의 '셰익스피어 4대 비극'과 '제인 에어'를 리커버판이 완판되면서 반전의 계기가 찾아왔다. 민음사 관계자는 "정가제 시행이후 세계문학의 판매량이 급격하게 떨어져 이를 극복할 방법을 궁리하다 리커버를 기획하게 됐다. 단조로운 표지를 예쁘게 다시 만든 것이 인기 비결이겠지만, 온라인 서점 배너 등으로 노출되면 홍보 효과도 크다"고 설명했다.
이후 예스24와 알라딘 등은 앞다퉈 고전을 리커버판으로 내고 있다. 예스24에서는 조지 오웰의 '1984'와 '동물동장'을 열린책들과 리커버했고, 알라딘은 민음사와 '제인 에어'를 리커버했다. 교보문고는 문학동네와 '롤리타''불안의 책''한밤의 아이들'을, 열린책들과 '헤밍웨이 선집''도스토예프스키 선집' 등을 리커버했다. 이들 도서의 대부분은 2000~3000부가 한 달 내 완판됐다.
고전이 최근 집중적으로 재출간되는 이유는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풀려 인세를 아낄 수 있는 데다, 책 디자인에서도 자유롭다. 신간과 달리 이미 독자들에게 검증된 책이라는 이유도 크다. 책을 접한 독자들도 '소장용'으로 다시 구매하는 수요도 많다.
이처럼 고전이 각광받으면서 기존의 강자였던 민음사와 열린책들, 문학동네 이외에 출판계의 '신흥 강자'인 위즈덤하우스도 이 시장에 뛰어들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열린책들은 노년층을 위해 펴낸 '큰글자판' 시리즈에 '그리스인 조르바'와 '죄와 벌' 등 고전 2권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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