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의 언어들이 춤을 추자, 나와 당신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진한 아방가르드적 색채가 베어있는 무화(無化)의 시어들이, 그 분열의 읊조림이 아름답다 못해 처연하다.
안태운 시인(30)의 첫 시집 '감은 눈이 내 얼굴을'(민음사)이 출간됐다. 201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시인의 제35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집이다.
"뒷모습과/ 뒤를 돌아보는 모습/ 사이에서/ 걷고 있었다."
첫 페이지 서문은 시인의 시세계를 명료하게 압축해 놓는다. 뒷모습과 뒤를 돌아보는 모습 사이의 결여의 시간. 그 찰나의 틈을 거닐며 시인은 '안'과 '밖'의 구획을 허물고, 또 지운다.
"얼굴의 물 안으로/ 얼굴의 물 밖으로/ 비는 계속 내리고 물은 차오르고 얼굴은 씻겨 나가 이제 보이지 않고."(시 '얼굴의 물' 부분)
시인은 '읽는 자'와 '읽히는 자'의 관계마저 뒤집어 버린다. 그 전도된 관계가 주는 낯섦이 기묘한 충격을 자아낸다.
"나는 사람들 곁에 없었다 그림자를 사이에 두고서 그러나 낳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며/…/노을은 스미고 노을은 서서히 변천하고 그러나 너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가/…/너는 낳기로 하고…너는 내 얼굴을 찾고 있다 그러나 찾지 못했지 나는 사람들이 되어 울고 있지."(시 '낳고' 부분)
사람들 곁에 없던 '나'가 사람들이 되어 운다. 하지만 그 '나'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반복해서 읽다 보면 '읽는 자'는 자꾸만 '나'를 찾아 헤매고, 종래엔 어딘가에 있던 '나'가 또렷한 시선으로 '읽는 자'를 쳐다본다. 기이한 전이. 시의 바깥에 있던 존재는 그렇게 화자에게 노출되어, 읽힌다.
장은정 문학평론가는 "등장인물이나 화자가 분열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종적으로 읽는 자마저도 분열시키는 전면적인 경악 앞에서 자유와 혁명의 계기로서의 시에 대한 모든 기대는 파기된다"라고 했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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