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베이컨, 루시언 프로이드 등 영국 구상 회화의 맥을 잇는 살아있는 인물화 거장이 한국에 왔다. 자화상을 주로 그리는 토니 베반(65)이다. 한국에는 이름이 다소 덜 알려져 있지만 이미 글로벌 무대에서는 거장의 반열에 오른 핫한 작가다.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통의동 리안갤러리에 걸린 대형 작품 18점도 10일 개막 전에 대부분 예약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시장도 부침이 있지만 작가의 작업도 잘 풀릴 때가 있고, 안 풀릴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슬럼프가 와도 무조건 일하면서 극복한다. 이 나이에도 물감 만지는 것이 신기하고 좋다”고 했다.
그는 그 흔한 조수도 쓰지 않고 런던 작업실에서 매일 10시간에서 12시간 붓질을 한다.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 놓고 온 몸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특히 지금까지 그린 자화상만 무려 100점에 달한다.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담기 위해 얼굴을 그리고, 특히 자유롭게 제한없이 그리기 위해 제 얼굴을 그리죠. 다만 얼굴이라는 외양보다는 그 너머의 심연과 구조, 본질을 그리려 노력합니다.”
그의 자화상은 구체적인 얼굴 표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기 보다는 강하고 굵은 선으로 얼굴 안의 구조를 특징적으로 잡아낸다. 붉은 선(線)들은 특히 혈관과 피를 연상시키며 강렬한 에너지를 자아내는 동시에 인간의 상처나 폭력적인 욕망도 은유한다. 화폭 여기저기 뻗어나간 선들이 긴장감을 자아낸다.
“다른 사람을 모델로 초상화를 그리기보다는 더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제 얼굴을 그립니다. 얼굴 안에 세상의 모든 풍경이 담겨 있지요.”
1980년대 이미 영국에서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그는 지난달 초 런던에서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 마스터스’에 성공리에 데뷔하며 제2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지난해 모딜리아니의 ‘누워 있는 나부’를 무려 1980억원에 사들여 화제가 된 중국 상하이 갑부 류이첸 선라인그룹 회장이 최근 그의 작품 9점을 통째로 사들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그림은 결국 마음을 그린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제 그림 속으로 들어가 상상력을 발휘해 시공간을 넘나들었으면 좋겠어요. 결국 그림을 통해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죠.”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을 비롯해 전세계 유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그는 ‘마음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몸과 연결돼 있는가’를 화두 삼아 작업한다. 갤러리에 걸린 한국의 단색화 작품을 보더니 “제 작업과 다르지만 정신성이 놀랍다. 참 흥미롭다”고 했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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