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사기냐 관행이냐. 가수 겸 화가 조영남(71) 씨가 그림 ‘대작(代作)’ 논란에 휩싸이면서 현대 작가들에게 어느 정도 관행인 대작이 어느 선까지 용인돼야 하느냐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조 씨에게 사기죄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조영남은 1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작가들 관행인데 억울하다. 내 그림이 100% 맞다”고 반박했다. 미술계에서도 “대작은 개념미술이나 팝아트 계열에서 종종 있는 일”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 조수를 쓴다는 사실을 미리 공개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4월 속초에 거주하는 대작 화가 A(61)씨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불거졌다. A 씨는 “내가 90% 그린 그림에 조 씨가 마지막 손을 본 뒤 사인하고서 그림을 고가에 팔았다. 나는 점당 10만~20만원만 받았다”고 주장하며 검찰에 제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춘천지검 속초지청은 지난 16일 조 씨의 사무실과 갤러리 등 3∼4곳을 압수수색했으며 다음날 “실제로 그림을 그린 작가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본다면 조영남 씨는 다른 사람이 그린 작품을 자신의 것처럼 판매한 것이기 때문에 사기죄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조 씨의 대작 작품이 얼마나 되고, 얼마나 판매했는지, 판매 액수는 얼마인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이에 조영남은 ‘조수를 이용한 대작이 미술계의 오랜 관행’이라고 맞서고 있다. 조 씨는 “전시회가 많다보니 시간이 없어서 조수를 서너명 둬서 아르바이트를 시킨 것인데 사기라고 하니 억울하다. 오리지널리티(독창성)은 내게 있다. 조수 써서 그리는 것은 세계적 추세인데 어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그린 원작 샘플을 보내면 A씨는 밑그림에 기본 색칠을 해오는 수준이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미술계는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 상당수가 조수를 쓰고 있다고 당당히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누구 손으로 그렸는지 보다 작가의 아이디어와 개념이 중요하게 취급되는 분위기다.
조영남 씨는 1980년대부터 화투 그림을 발표했으며 조수를 사용한 것은 7년 전 쯤인 2009년으로 알려져 있다. 미술계에서 조 씨의 호당 가격은 30만원~50만원 수준으로 20호 정도는 500만~8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문제가 커지자 조 씨는 “많은 분들이 불쾌하다면 내가 사과를 할 용의가 있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처벌받을 것이고, 내 그림 산 사람들이 불쾌해 환불을 요청하면 그림을 바꿔주거나 환불해주겠다”고 말했다. 조수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왜 밝히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미술계 반응은 엇갈린다. 한 화랑 관계자는 “작가가 작업실에서 조수를 두고 그리는 경우는 많지만 이렇게 조수와 떨어져서 작품을 오더하고 받아 사인만 하는 것은 진정성과 도덕성을 의심케 한다”고 밝혔다. 작품 관리가 미흡한 점도 아마추어적이라는 지적이다. 한 젊은 작가는 “유명세를 이용해 작품을 쉽게 팔아 돈을 버는 것에 좌절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반면 미술평론가 최열은 “이미 많은 기성 작가들이 조수를 쓰고 있다. 조 씨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사기를 친 것도 아니다. 피해자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옹호했다. 문화비평가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작가는 콘셉트만 제공하고 물리적 실행은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게 꽤 일반화된 관행”이라고 조 씨 측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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