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우유부단한 ‘햄릿’의 피비린내나는 복수극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셰익스피어(1564~1616) 작품인 것으로 조사됐다. ‘햄릿’을 비롯한 4대 비극은 모두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서거 40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축제와 행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최근 이경식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의 ‘햄릿’이 번역돼 나왔고, 세계적인 영문학자 스티븐 그린블랫의 셰익스피어 평전 ‘세계를 향한 의지’도 번역출간 되는 등 출판계에서도 재조명 열기가 뜨겁다.
본지는 예스24에서 국내에 출간된 셰익스피어 작품 517종을 전수조사해 최근 10년간의 판매 순위를 뽑고, 개별 출판사에서 판매량을 조사했다. 결과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햄릿’이 14만부로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셰익스피어연구회가 번역한 ‘한 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5대 희극’(아름다운날 펴냄)이 차지했다.
3~5위도 민음사의 ‘맥베스’(6만부), ‘오셀로’(5만 5000부), ‘리어왕’(5만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4대 비극이 나란히 가장 많이 팔린 것이다. 6위는 4대 비극의 합본은 민음사의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컬렉션 세트’가 올랐다. 이어 7위에는 희극 중에 가장 높은 순위로 ‘한여름 밤의 꿈’(3만 5000부)이 올랐다. 반면 여러차례 영화화되면 낭만적 사랑의 신화로 기억되고 있는 로맨스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3만부가 팔리며 8위에 그쳤다. 9위는 강명희가 편역한 ‘베니스의 상인’(지경사 펴냄)가 올랐다.
민음사의 판본이 높은 순위에 독점한 것은 국내에 1300만부가 넘게 팔린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꾸준히 소개됐기 때문이다. ‘햄릿’은 1998년 시리즈의 3호로 포함됐고, ‘맥베스’는 2004년 99호로 포함됐다. 단행본으로 10위권에 오른 작품 중 ‘베니스의 상인’을 제외한 모든 책을 번역한 이는 최종철 연세대 영문과 교수다. 전화로 인터뷰한 최 교수는 ‘햄릿’의 인기에 대해 “‘햄릿’은 인간의 내면을 고민하는 매력적인 인물의 이야기다. 여기에 복수와 로맨스, 부모와 자녀간의 갈등, 정치, 도덕, 범죄 문제 등 인간사의 모든 갈등 요소가 광범위하게 들어있으며, 가장 긴 작품이어서 설득력도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오셀로’는 인종문제, ‘맥베스’는 야망과 권력의 문제, ‘리어왕’은 부녀간의 갈등이 주제라 모든 세대에게 보편적으로 읽히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4대 비극을 향한 지지에 대해서는 “희극은 문화권을 넘어가면 웃음의 요소가 잘 전달되기 어렵지만 비극은 번역이 되어도 작품의 정수는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라며 “4대 비극이 작품성에 있어서도 가장 뛰어나다. 삶과 죽음, 선악의 문제, 존재와 성 등 근본적 문제를 다루면서 흡인력 있는 줄거리와 뛰어난 인물을 창조해냈다. 세계적으로도 비극이 가장 많이 읽힌다”고 설명했다.
본토인 영국에서는 ‘햄릿’만큼 인기있는 인물로 ‘헨리 4세’ 1·2부에 등장하는 폴스타프가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희극이라는 벽 때문에 무대에서도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헨리 4세’는 국내 번역된 책 중 219위에 올랐다. 최 교수는 “4대 비극 위주로 이루어지는 대학 교육의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놀라운건 셰익스피어의 4세기전 작품이 국내에서도 100만부 이상 팔리며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범한 대중들의 작가였던 그를 대문호로 승격 시킨 영국 작가 벤 존슨의 말처럼 셰익스피어는 “한 시대를 뛰어넘는 모든 시대의 사람”이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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