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재즈 피아니스트 로랑 권지니(46)는 한국 민속음악 산조(散調·기악 독주곡)에 겁을 먹었다. 지난 2월 류형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50)이 작곡을 제안했을 때 많이 망설였다.
권지니는 “산조는 아주 깊은 한국 전통음악이다. 전통을 존중하기 때문에 수년간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짧은 기간에 작곡하는게 두려웠지만 공동 작업에 끌렸다”고 털어놨다.
그는 원래 호기심이 강한 음악가다. 피아노 외에도 타악기, 오르간, 트럼펫, 화성, 지휘, 즉흥연주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한 때는 탱고에 빠져 남미투어를 다녔고 연극과 뮤지컬에 참여했다. 현재 파리 오케스트라 합창단에서 바리톤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늘 새로운 선율에 갈증을 느꼈던 그는 2002년 한국 음악에 매료됐다. 사물놀이 김덕수, 작곡가 원일,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 등 대가들과 협연하면서 국악의 정수를 배웠다. 2007년 ‘아리랑’과 ‘사노라면’ 등 한국 노래를 담은 솔로 음반을 발표했을 정도로 애정이 깊어졌다.
이번에는 산조에 푹 빠졌다. 그는 “산조를 배울 때 마다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됐다. 산조의 결을 따라가다 보니 내 피아노가 새 옷을 입은 것 같다”고 고백했다.
한국 음악을 깊이 이해하는 그가 직접 작곡하고 연주법을 고안한 피아노 산조 협주곡을 초연한다. 15~17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창작악단이 연주할 관현악 파트 작곡은 김대성(48)이 맡았다.
열정과 섬세함으로 음악을 빚는 권지니는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국악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대화 형식과 대비, 전체 합주 등 모든 제약을 존중하려 애썼다. 한국 전통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선율을 쓰면서 산조 형식을 바탕으로 협주곡을 썼다”고 설명했다.
김대성은 “산조의 전형적인 구성인 ‘진양’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작품은 ‘휘모리’까지 연결되어 진행한다. ‘중모리’ 다음에 ‘엇모리’가 연주되는 점이 특이하다. 힘든 공동 작곡 과정을 겪으면서 새로운 문화적 만남의 가능성을 느꼈고 새로운 음악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고 했다.
기타리스트 함춘호(50)도 한국 기악 독주곡의 정점에 있는 산조의 장단과 선율 구조를 연구해 기타 산조를 들려준다. 그와 류 감독이 공동 작곡했다.
서양 악기는 농현(弄絃·줄을 흔들어 떠는 소리)과 떨림 등 국악기 특유의 시김새(장식음) 표현이 어렵기 때문에 더 색다른 산조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성악곡인 민요, 판소리와 협연하는 국악관현악 무대도 마련된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과 함께 ‘성주풀이와 화초사거리’ 와 ‘바람과 나무와 땅의 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류 감독은 “국악이 다양한 악기와 음악적 경계를 넘나들어야 세계화와 대중화를 이룰 수 있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세상의 다양한 악기들이 ‘산조’라는 옷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길 바라며 국악관현악단만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국악관현악 산조’도 많이 들려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 지휘는 김경희 숙명여대가 맡는다. (02)580-3300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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