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완성하지 못함.”
그의 초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청소년기 미술에 이렇다 할 재능이 있다고 느낄 틈이 없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에 춤추고, 메이컵을 공부한 것이 전부였다. 소원대로 스타가 됐고 그것도 잠시 악성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동영상 속 인물은 그가 아닌데 그라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 스캔들의 늪에 빠졌다. 솔비(본명 권지안·31)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이야기다. 그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이 그림이었다.
최근 매일경제신문 사옥에서 만난 솔비는 “동영상 파문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쓰러졌다. 원망할 데가 없었다. 루머는 루머대로 끝나고 나는 만신창이가 됐다. 누군가 심리치료로 그림을 권했는데, 그 때 스스로 그린 이미지를 보고 큰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림과 ‘친구’가 된 그가 10일부터 13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창고’에서 이색 개인전 ‘trace(흔적)’전을 연다. 그는 500호짜리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물감을 칠한 다음 온 몸으로 춤을 추며 캔버스에 격렬한 흔적을 남긴다. 새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부르면서. ‘공상’을 부르면 ‘공상’이라는 그림이 탄생하고, ‘진한 사이’를 부를 때 ‘진한 사이’라는 회화가 완성된다. 액션 페인팅 기법을 차용한 신개념 팝추상화이자 노래와 미술을 결합한 ‘온에어 아트’다. 미술을 독학으로 배운 그는 빛나는 열정으로 2012년 화단에 데뷔했고 10여점을 팔기도 했다. 판매금은 전액 기부했다.
“처음으로 공부가 재밌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예인은 너무 불안정한 사람들이고, 저도 한때는 ‘사회적 알람’에 맞춰 안정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불안정한 삶도 나쁘지는 않구나 인정하게 됐어요. 그림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도구가 된 것이죠.”
연예인들이 잇달아 전시를 여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도 많다. “연예인이 화가인척 해서 반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생각한 게 가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팝추상 그림입니다. 악플에 대해서도 긴말 필요 없이 꾸준히 하면 될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하니까 주변 시선에 흔들리지 않더군요.”
시련과 붓질로 내면이 단단해진 그지만 무대에 서는 것은 여전히 두렵고 무섭다. “사람들은 연예인을 마치 복권 당첨된 것처럼 생각해요. 그 자리에 가기까지 얼마나 힘든 지 알아주질 않지요.”
그에겐 그림 그리는 순간, 노래 부르는 순간이 모두 무대다. 그 무대는 내가 아닌 타인에게 웃음과 재미, 감동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화단에서 활동할 때는 본명 권지안으로 불리길 원하는 그는 “예술은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죽을 때까지 가수를 할 것이고, 미술은 내 영원한 친구”라고 했다. 전시 개막에 맞춰 가수로서도 컴백 무대를 가질 예정이다. 전시는 13일까지. (02)3217-0233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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