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돌아왔다. 지난 2008년 소극장 초연 당시 창작뮤지컬 돌풍을 일으키며 중극장, 대극장으로 무대를 넓혀 앙코르 공연을 해온 창작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PMC 프러덕션)가 지난 23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여섯 번째 막을 올렸다.
11월 8일까지 공연하는 '형제는 용감했다'의 무대는 안동의 종갓집이다. 집안 말아먹은 못난 형과 서울대 출신의 까칠한 동생이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고향에 내려와 유산과 묘령의 여인을 놓고 다투는 해프닝을 그렸다.
'형제는 용감했다'가 롱런하고 있는 비결은 의외의 장소와 상황에서 터지는 웃음과 감동이 주는 반전 매력에 있다. 종갓집 장례식이라는 다소 고리타분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힙합, 보사노바,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코믹한 안무를 버무렸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객석의 웃음은 더 빵빵 터지고, 서먹했던 형제가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관객들은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한다.
이번 공연에는 2009년 형과 동생으로 출연했던 정준하와 김동욱이 6년 만에 형제로 다시 만났고, 윤희석, 최재웅, 정욱진, 보이프렌드의 동현, 최유하, 최우리가 새 얼굴로 합류했다.
'형제는 용감했다'는 '김종욱 찾기', '그날들' 등 만드는 뮤지컬마다 객석을 가득 채우는 창작뮤지컬계의 ‘미다스의 손’ 장유정 연출(39)의 작품이다. 그는 뮤지컬 외에도 연극, 영화, 창극, 전국체전 개막식행사 등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은 체구에서 단단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를 서울 중구의 한 공연장에서 만났다. 그는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다 못 만들까봐 고민이라고 했다. 그가 무대에 미처 올리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형제는 용감했다'는 뮤지컬로써는 드물게 안동 종갓집을 무대로 한다.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처음부터 안동을 무대로 생각한 건 아니었다. 사이가 나쁜 형제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나 아버지의 유산과 미모의 여인을 놓고 티격태격한다는 중심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그땐 배경을 안동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야기를 조금 더 극단적으로 끌고 가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세대갈등 뿐만 아니라 전통을 지키는 노인과 전통에 맞서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함께 풀면 공감할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종갓집이 떠올랐다.”
- 종갓집을 뮤지컬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외갓집이 종갓집이어서 지금도 어린 시절 종갓집에 대한 향수가 있다. 명절 때마다 음식을 정말 많이 했는데 그걸 나눠주는 방식에도 체계가 있는 게 신기했다. 손님들이 오면 신발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걸 정리하는 건 아이들의 몫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자식 세대가 서로 원망하며 살지만 사실 다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지 않나. 나는 어릴 적부터 그런 사연들을 보고 들어왔기 때문에 접근하기 쉬웠다.”
- 우리 사회 가족에 대한 가치관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형제는 용감했다'가 처음 만들어진 2008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또 다를 것이다. 이 이야기가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지면 좋을까?
“시대는 바뀌었지만 나는 가족에 대한 관점은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카인과 아벨' 시대부터 형제는 태어나자마자 경쟁하고 질투한다. 오히려 ‘형제들끼리 싸우지 말고 잘 지내야 한다’는 명제가 명확해서 형제들이 더 부담스러워하지 않나? (인류의 탄생 이래) 가족은 조금씩 변형되어 왔지만 어느 시대나 (그 원형은) 비슷하다고 본다.”
- 송승환 회장은 최근 “'난타'는 돈 벌어온 자식이고, '형제는 용감했다'는 귀한 자식”이라고 했다. 그만큼 '형제는 용감했다'는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독보적인 이야기다.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만 처음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웃음) 이 작품을 다 쓰고 난 후 투자자에게 대본을 가져가면 다들 “이것 말고 다른 것 없어요?”라며 돌려보냈다. 의상이 한복이고, 무대는 안동 종갓집의 장례식인 뮤지컬이 다들 생소했던 거다. 그러다가 송 회장이 하고 싶은 거 하라며 밀어줬다. 첫 번째 소극장 공연 때 좋은 평을 많이 받았고, 그해 받을 만한 상은 다 받았던 것 같다.”
- '형제는 용감했다'가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여섯 번째다. 이번 공연은 어떻게 바뀌었나?
“'형제는 용감했다'는 2013년 일본 공연이 가장 최근이었고 한국에선 2012년이 마지막이었으니 3년 만에 다시 올리는 거다.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관객들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조금씩은 바뀌었다. 코믹한 부분은 동시대와 함께 가야하기에 꼭 바꿔준다. 예를 들어 요즘 인기 있는 셰프를 대사로 집어넣는다든지 하는 식이다. 재공연을 할 때마다 다양한 수를 둬본다. 이번엔 안동이 아닌 서울을 무대로 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걸 바꾸면 안 되겠더라. (웃음) 이렇게 여러 가지를 시도해본 결과물이 지금 공연이다.”
- '형제는 용감했다'는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영화화는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나?
“'김종욱 찾기'에 이어 뮤지컬을 영화로 만드는 두 번째 시도다. '김종욱 찾기'를 영화로 만들 때 느꼈는데 뮤지컬과 영화는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달라야겠더라. 그래서 이번 영화 시나리오는 내가 쓰지 않고 전문 시나리오 작가에게 맡겨놓은 상태다.”
- 캐스팅을 염두에 둔 배우가 있나?
“누구든 출연해준다면 좋지. (웃음) 예전엔 어떤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 적도 있는데 막상 바뀌면 적응하기 힘들어서 이젠 미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 창작뮤지컬뿐만 아니라 라이선스 뮤지컬, 연극, 영화, 창극, 전국체전 개막식행사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 중이다.
“궁금한 게 많아서 그렇다. 부담은 있다. 새로운 분야로 가면 그쪽 사람들이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저 사람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이다. 그러면 나는 그들의 신뢰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나를 보고 누구나 “넌 잘 할 거야”라고 생각해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그러면 안주하게 된다.”
- 꼭 만들어보고 싶은 작품은 뭔가?
“너무 많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 뭐 할래?” 이렇게 묻는다면 난 작품 쓸 거라고 대답한다. 더 써야한다. 쓰고 싶은 소재도 많고, 써놨는데 마음에 안 들어 접어놓은 것도 있다. 마무리 못하는 게으른 나에게 많이 섭섭하고 속상하다. 노는 것도 아니고 매일 뭔가를 하고 있는데도 글 쓰는 시간이 늘 턱없이 부족하다.”
- 구상하고 있는 많은 작품 중 딱 하나만 해야 한다면?
“판타지다. 에로 코믹 판타지. (웃음) 이야기는 대충 잡아놨다. 음악감독도 오케이 했다. 그런데 아직 이야기가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좀 더 묵혔다가 공개하겠다. 섣불리 했다가 (작품에 참여한) 남의 인생 망치면 안 되지 않나? (웃음)”
■ 장유정 연출은?
1976년생. 극작가·연출가·영화감독.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 더 뮤지컬 어워즈 극본상, 창작뮤지컬상 등 다수 수상
▷ 대표작
창작뮤지컬: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형제는 용감했다, 그날들 (극본, 연출)
라이선스 뮤지컬: 리걸리 블론드 (연출)
연극: 멜로드라마 (극본, 연출)
영화: 김종욱 찾기 (각본, 연출)
[글·사진 =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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