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변신하고 쇠락한다. 특히 오늘날 전세계에서 생겨나는 거대도시들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왜 21세기 들어 수백만명 이상의 거대도시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는가. 이는 사람, 자본, 물건의 전지구적인 이동과 개발의 광풍을 통해 가능했다. 정치학자들은 신자유주의 혹은 세계화라는 말로 이 현상을 설명하지만, 지리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도시화’라는 공간적 현상에 주목한다.
서울은 독특한 도시다. 1960년대까지 전쟁의 폐허와 농촌 풍경을 간직했던 서울은 순식간에 ‘도시 공간’을 만들어냈고, 50년만에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했다. 메트로폴리스는 그리스어로 ‘어머니의 도시’란 뜻. 서울은 반세기동안 한국의 어머니같은 도시였다. 1965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 및 수도원 인구는 약 10배가 증가했다. 75년 이후 20년간은 매년 50만명이 수도권으로 이주했다. 정부에게 이들은 경제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인적자원이었고, 동시에 이들에게는 거주를 위한 도시 기반 시설이 필요했다. 행정, 교육 치안, 도로, 병원까지 기능적으로 구획된 환경은 그렇게 태어났고, 서울는 산모의 배처럼 거대해졌다.
이 책에서 임동근 서울대 지리학과 BK교수는 동사무소의 출현부터 도시계획의 집행까지 서울을 만들어온 통치술의 변화를 추적한다. 그와 함께 방송을 진행한 전 언론인 김종배와의 대담을 묶어 술술 읽히는 장점도 있다.
1960년대만 해도 서울은 시청 앞에서 추곡수매를 할 정도로 시골 같았다. 1962년 특별시가 되고 1963년 행정구역 대개편으로 면적이 2배로 늘어나면서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이 갑작스런 개편은 아마도 20세기 초 일본을 통해 들어온 전원도시 개념으로 인해서라고 설명한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서울을 너무 번잡하게 느꼈고, 녹지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활량한 농지를 대거 편입시키는 시도는 일견 엉뚱했지만, 신의 한 수 였다. 그 후 수도권 인구는 5년에 100만명씩 증가했는데 인구가 늘 때마다 수시로 구청을 만들거나 동을 나누지 않아도 됐다. 이후 반세기 동안의 도시화가 다행히도 효율적으로 진행 된 것이다.
행정구역 팽창과 함께 집과 땅을 향한 욕망이 싹텄다. 부동산 투기의 시발점은 베트남전쟁 특수. 유동자금이 팽창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사람들은 땅을 사기 시작했다. 복부인이 처음 등장한게 1970년대. 당시 청담동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전원주택의 꿈이 많았다. 그런데 이 땅 투기가 역설적으로 개발의 발목을 잡았다. 땅값이 오르니, 도로를 깔수도, 개발을 할수도 없었다. 수유리 미아리 청량리 강남 등 갑자기 서울에 편입된 구역은 치안이 공백이었다. 통치가 안되던 우여곡절을 10년을 겪었는데 베트남전과 중동특수로 들어온 돈이 서울의 틀이 잡히는데 일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일 아우토반을 목격하고 돌아와 1967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시작한다. 2년 반 만에 450억원이라는 헐값에 고속도로 짓기라는 희대의 프로젝트는 주원 건설부 장관이 이끌었다. 바로 체비지 매각을 통해서다. 허허벌판을 국가가 개발할 땐 인근 지주들에게 땅을 환수해 그 일부를 판매하는데 그 땅을 체비지라 한다. 당시 송파, 동작, 서초의 7.4㎞ 땅의 체비지는 잘 안팔리는 문제가 있었고, 정부는 투자가 몰리는 다른 지역을 그린벨트로 묶어버렸다. 경부고속도로가 그린벨트의 어머니가 됐다는 얘기다. 이때 피해를 본 지역이 부천, 소사 등 당시 발전하고 있던 곳, 풍광이 좋아 리조트가 들어서려 했던 기흥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1970년대 아파트 개발사다. 정부가 채비지를 파는 과정에서 패키지 개발이 이뤄졌다. 땅을 개발하고 아파트를 지어서 같이 파는 것. 1972년 주촉법과 1973년 특정지구 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의 영향으로 민간 건설사들이 하나둘 아파트 건설에 뛰어들게 했다. 최대한 빨리, 많은 주택을 짓기 원했던 정부는 파격적인 조건을 걸고 민간업체를 아파트 시장으로 유인했다.
이 시절 두각을 나타낸게 현대건설이다. IMF 이후에는 래미안을 비롯한 브랜드도 탄생했다. 선분양제도와 주택청약제도는 재벌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유인요소가 됐다. 1980년대 신도시 개발은 해외 건설 축소로 중동에서 돌아온 뒤 비싼 장비를 쓸데가 없었던 메이저 회사를 위한 측면도 있었다. 저자는 “아파트는 토지 경제성 면에서 실익은 없었지만, 정말 빠르게 지을 수 있는 공급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정부의 요구와 민간의 자본이 목표를 같이 할 수 있는 건설 방식이기도 했다. 분양가 상한제와 선분양제도를 통해 주거자들은 주택 로또까지 노렸으니, 그야말로 모두가 행복한 아파트 공화국의 탄생이었다.
저자가 바라보는 미래의 서울을 어떤 모습일까. 앞으로는 관리나 유지로 먹고 사는 건설 자본이 등장하고, 중산층까지 대상이 확대되는 임대주택 제도가 발달하게 될 것이라 내다본다. 이 책은 이밖에도 마포 대신 테헤란로에 오피스타운이 된 이유, 서울숲과 도곡동에 주상복합타워가 올라간 이유, 청계천 복원과 한강 르네상스가 어떤 공통점을 가지는지 등의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지리학으로 다시 쓴 서울의 어제와 오늘이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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