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9일. 당대불패가 2012년 대통령배 대회 우승 때 등에 올렸던 안장을 두른 채 마방에서 모처럼의 외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병복 조교사와 관리사들이 당대불패 곁으로 왔습니다. 유 조교사는 철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 당대불패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못내 서운한 듯 말문을 엽니다.
"당대불패! 이제 갈 시간이야." 철창이 덜커덩 열리고, 어두운 마방을 나와 밝은 햇살이 비추는 곳으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경주마, 당대불패의 은퇴식이 곧 열립니다.
(6) 최후의 경주
2013년. 그 해 첫 경주에 나선 당대불패의 몸은 가뿐했습니다. 5살로 이제 하향곡선을 걷지 않겠느냐는 염려가 있었지만, 당대불패의 독주가 계속되는 듯 했습니다. 첫 경주에서 가볍게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승리였습니다.
당대불패는 5월 구절활막염이 심해져 경주 출전을 취소했습니다. 구절활막염은 관절에 이물질이 굳어져 걷거나 뛸 때 발을 디디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결국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혈청배양 주사를 맞는 시술이었습니다. 회복도 빨랐고 수의사들도 경기력에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7월 말엔 시술 후 첫 경주를 치렀습니다. 3위로 결승선을 골인합니다. 9월에 뛴 경주에서도 2위를 기록했습니다. 몸 상태가 다시 정상으로 올라왔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당대불패의 마주 정영식 씨는 당대불패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자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정 씨의 꿈은 당대불패가 대통령배 4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뒤 '당대불패답게' 은퇴하는 것이었습니다. 2013년 11월 10일 열린 대통령배 대회에 출전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애초에 2013년 대통령배 대회는 당대불패의 마지막 경주로 예정돼 있었습니다.
왕복 9시간. 부산에서 뛰는 말이 대통령배 대회같은 큰 대회에 나가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핸디캡이 있습니다. 당대불패도 마찬가지. 4시간이 넘게 '무진동차'에 갇혀 있어야 합니다. 당대불패처럼 거친 말에게는 고역의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날 당대불패는 불운하게도 14번 주로에 서게 됐습니다. 끝 번호일수록 당대불패와 같은 선행마는 불리합니다. 경주 시작부터 끝까지 선두를 유지하는 선행마인 당대불패는 오버페이스를 유도하는 상대의 작전에 휘말리기가 쉽습니다. 당대불패가 지닌 딱 하나의 단점이었다. 마주 정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선 모든 작전을 동원해야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당대불패의 그 선행마로서의 기질이 불행한 거죠. 당대불패가 3~4세마 때에는 그런 작전이 있어도 다 뚫고 우승을 했습니다. 그 견제를 뚫고 우승한 건 기적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 6세가 다 돼 가니,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가 좀 약해진 거죠. 4연패가 물거품이 됐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해 대통령배 대회 우승마는 '인디밴드'였다. 이 말 역시 부산경남 소속으로 정 씨가 소유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정 씨는 아내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당대불패의 패배가 너무도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마주로서 대통령배 대회를 4연패하는 것은 대단한 기록이지만, 그보다는 당대불패의 '당대불패답지 않은' 퇴장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7) 은퇴, 그리고 질주본능
2013년 12월 29일 오후 4시 5분.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경주마, 당대불패의 은퇴식이 시작됩니다." 마주 정영식 씨, 유 조교사와 함께 마사회 관계자들이 은퇴식장으로 나왔습니다. 은퇴식장의 한 켠에는 작은 원형의 공간이 있습니다. 각종 행사가 있을 때 말이 올라가는 곳입니다.
출발대에 섰을 때의 긴장감, 모래주로에 발굽이 닿던 촉감, 마지막 코너를 돌 때 터질 듯한 심장 소리, 1위로 골인했을 때의 환호성…. 출발대가 열리면 오직 앞만 향해 달려 나갔습니다. 잔재주 따윈 부리지 않았습니다. 당대불패. 내 이름은 이제 역사가 됐습니다.
당대불패가 은퇴식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심상치 않았습니다. 두 명의 관리사가 당대불패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경주로를 본 당대불패는 흥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뛰고, 뒤로 뛰고, 불같이 성질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어찌어찌 은퇴식장의 원형 공간까지 다다랐을 때, 당대불패의 흥분은 절정에 이릅니다. 당대불패를 보기 위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경주로를 본 뒤 흥분한 당대불패를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당대불패의 '질주본능' 때문일까.
당초 당대불패에게는 '고별질주'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조성곤 기수가 당대불패를 타고 경주로를 한 바퀴 도는 행사입니다. 하지만 당대불패가 생각보다 지나치게 흥분을 하자 혹시 모를 사고를 막기 위해 고별질주는 취소해야 했습니다.
은퇴식장을 벗어난 당대불패는 경주로를 향해 달려가려 했습니다. 관리사들이 당대불패를 막아서자 뒷발로 펜스를 걷어찼습니다. 당대불패의 '난동'은 마치 주로를 더 달리고 싶다는 외침처럼 보였습니다. 당대불패가 마지막으로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경마장을 찾은 관중들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누군가 말했습니다.
"저런 기질이니 우승하는 거 아니겠어."
(8) 다시 초원으로
당대불패의 은퇴식이 열린 부경경마공원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휠체어를 탄 채 맨 앞자리에서 당대불패의 은퇴식을 지켜본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입니다. 당대불패는 2011년부터 매년 장애인들을 위해 1억원씩을 기부해왔습니다. 말이 사람에게 '튼튼한 다리'를 선물한 셈입니다.
이준하 씨와 서정국 씨는 추운 날씨에도 나란히 서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씨는 오른쪽 다리가, 서 씨는 왼쪽 다리가 없습니다. 장애인 철인3종 경기에 도전하는 이 두 선수에게 당대불패는 다시 달릴 수 있는 꿈을 선물했습니다.
마주 정영식 씨는 뿌듯한 듯 말했습니다.
"당대불패가 수 많은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건강한 다리 덕분이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거기서 벌어들인 것을 전부는 못하더라도 일부분이라도 사회에 환원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꾸준히 기부를 해왔던 거고요. 이렇게 훌륭한 말이 또 나올 수 있을까. 하긴 당대불패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런 말이 될 줄 몰랐으니까요. 인생이나 마생(馬生)이나, 정해진 운명이란 게 있는 모양입니다. 당대불패가 최고가 된 것도, 돌이켜보면 운명같은 일이었습니다."
당대불패는 부마인 비와신세이키처럼 제주도에서 씨수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당대불패가 지낼 곳은 제주도에 있는 이시돌 목장입니다.
마주 정 씨는 벌써부터 당대불패의 짝을 점지해 놨습니다. 2013년 국제신문배 경주에서 우승했던 '벌마의 꿈'의 모마 '와일드딕시갤'입니다. 이 말의 혈통은 지구력이 강점이라니 괜찮은 짝이 될 것 같다는 게 정 씨의 생각입니다. 이제 치열했던 경주로를 떠나 다음 시대를 장식할 후손을 만드는 것이 당대불패에 남겨진 소명입니다.
출발대에 섰을 때의 긴장감, 모래주로에 발굽이 닿던 촉감, 마지막 코너를 돌 때 터질 듯한 심장 소리, 1위로 골인했을 때의 환호성…. 출발대가 열리면 오직 앞만 향해 달려 나갔습니다. 잔재주 따윈 부리지 않았습니다. 당대불패. 내 이름은 이제 역사가 됐습니다.
"당대불패! 이제 갈 시간이야." 철창이 덜커덩 열리고, 어두운 마방을 나와 밝은 햇살이 비추는 곳으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경주마, 당대불패의 은퇴식이 곧 열립니다.
(6) 최후의 경주
2013년. 그 해 첫 경주에 나선 당대불패의 몸은 가뿐했습니다. 5살로 이제 하향곡선을 걷지 않겠느냐는 염려가 있었지만, 당대불패의 독주가 계속되는 듯 했습니다. 첫 경주에서 가볍게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승리였습니다.
당대불패는 5월 구절활막염이 심해져 경주 출전을 취소했습니다. 구절활막염은 관절에 이물질이 굳어져 걷거나 뛸 때 발을 디디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결국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혈청배양 주사를 맞는 시술이었습니다. 회복도 빨랐고 수의사들도 경기력에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7월 말엔 시술 후 첫 경주를 치렀습니다. 3위로 결승선을 골인합니다. 9월에 뛴 경주에서도 2위를 기록했습니다. 몸 상태가 다시 정상으로 올라왔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당대불패의 마주 정영식 씨는 당대불패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자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정 씨의 꿈은 당대불패가 대통령배 4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뒤 '당대불패답게' 은퇴하는 것이었습니다. 2013년 11월 10일 열린 대통령배 대회에 출전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애초에 2013년 대통령배 대회는 당대불패의 마지막 경주로 예정돼 있었습니다.
왕복 9시간. 부산에서 뛰는 말이 대통령배 대회같은 큰 대회에 나가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핸디캡이 있습니다. 당대불패도 마찬가지. 4시간이 넘게 '무진동차'에 갇혀 있어야 합니다. 당대불패처럼 거친 말에게는 고역의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날 당대불패는 불운하게도 14번 주로에 서게 됐습니다. 끝 번호일수록 당대불패와 같은 선행마는 불리합니다. 경주 시작부터 끝까지 선두를 유지하는 선행마인 당대불패는 오버페이스를 유도하는 상대의 작전에 휘말리기가 쉽습니다. 당대불패가 지닌 딱 하나의 단점이었다. 마주 정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선 모든 작전을 동원해야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당대불패의 그 선행마로서의 기질이 불행한 거죠. 당대불패가 3~4세마 때에는 그런 작전이 있어도 다 뚫고 우승을 했습니다. 그 견제를 뚫고 우승한 건 기적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 6세가 다 돼 가니,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가 좀 약해진 거죠. 4연패가 물거품이 됐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해 대통령배 대회 우승마는 '인디밴드'였다. 이 말 역시 부산경남 소속으로 정 씨가 소유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정 씨는 아내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당대불패의 패배가 너무도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마주로서 대통령배 대회를 4연패하는 것은 대단한 기록이지만, 그보다는 당대불패의 '당대불패답지 않은' 퇴장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7) 은퇴, 그리고 질주본능
2013년 12월 29일 오후 4시 5분.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경주마, 당대불패의 은퇴식이 시작됩니다." 마주 정영식 씨, 유 조교사와 함께 마사회 관계자들이 은퇴식장으로 나왔습니다. 은퇴식장의 한 켠에는 작은 원형의 공간이 있습니다. 각종 행사가 있을 때 말이 올라가는 곳입니다.
출발대에 섰을 때의 긴장감, 모래주로에 발굽이 닿던 촉감, 마지막 코너를 돌 때 터질 듯한 심장 소리, 1위로 골인했을 때의 환호성…. 출발대가 열리면 오직 앞만 향해 달려 나갔습니다. 잔재주 따윈 부리지 않았습니다. 당대불패. 내 이름은 이제 역사가 됐습니다.
당대불패가 은퇴식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심상치 않았습니다. 두 명의 관리사가 당대불패를 단단히 붙들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경주로를 본 당대불패는 흥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뛰고, 뒤로 뛰고, 불같이 성질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어찌어찌 은퇴식장의 원형 공간까지 다다랐을 때, 당대불패의 흥분은 절정에 이릅니다. 당대불패를 보기 위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경주로를 본 뒤 흥분한 당대불패를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당대불패의 '질주본능' 때문일까.
당초 당대불패에게는 '고별질주'가 예정돼 있었습니다. 조성곤 기수가 당대불패를 타고 경주로를 한 바퀴 도는 행사입니다. 하지만 당대불패가 생각보다 지나치게 흥분을 하자 혹시 모를 사고를 막기 위해 고별질주는 취소해야 했습니다.
은퇴식장을 벗어난 당대불패는 경주로를 향해 달려가려 했습니다. 관리사들이 당대불패를 막아서자 뒷발로 펜스를 걷어찼습니다. 당대불패의 '난동'은 마치 주로를 더 달리고 싶다는 외침처럼 보였습니다. 당대불패가 마지막으로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경마장을 찾은 관중들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누군가 말했습니다.
"저런 기질이니 우승하는 거 아니겠어."
(8) 다시 초원으로
당대불패의 은퇴식이 열린 부경경마공원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휠체어를 탄 채 맨 앞자리에서 당대불패의 은퇴식을 지켜본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입니다. 당대불패는 2011년부터 매년 장애인들을 위해 1억원씩을 기부해왔습니다. 말이 사람에게 '튼튼한 다리'를 선물한 셈입니다.
이준하 씨와 서정국 씨는 추운 날씨에도 나란히 서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씨는 오른쪽 다리가, 서 씨는 왼쪽 다리가 없습니다. 장애인 철인3종 경기에 도전하는 이 두 선수에게 당대불패는 다시 달릴 수 있는 꿈을 선물했습니다.
마주 정영식 씨는 뿌듯한 듯 말했습니다.
"당대불패가 수 많은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건강한 다리 덕분이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거기서 벌어들인 것을 전부는 못하더라도 일부분이라도 사회에 환원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꾸준히 기부를 해왔던 거고요. 이렇게 훌륭한 말이 또 나올 수 있을까. 하긴 당대불패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런 말이 될 줄 몰랐으니까요. 인생이나 마생(馬生)이나, 정해진 운명이란 게 있는 모양입니다. 당대불패가 최고가 된 것도, 돌이켜보면 운명같은 일이었습니다."
당대불패는 부마인 비와신세이키처럼 제주도에서 씨수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당대불패가 지낼 곳은 제주도에 있는 이시돌 목장입니다.
마주 정 씨는 벌써부터 당대불패의 짝을 점지해 놨습니다. 2013년 국제신문배 경주에서 우승했던 '벌마의 꿈'의 모마 '와일드딕시갤'입니다. 이 말의 혈통은 지구력이 강점이라니 괜찮은 짝이 될 것 같다는 게 정 씨의 생각입니다. 이제 치열했던 경주로를 떠나 다음 시대를 장식할 후손을 만드는 것이 당대불패에 남겨진 소명입니다.
출발대에 섰을 때의 긴장감, 모래주로에 발굽이 닿던 촉감, 마지막 코너를 돌 때 터질 듯한 심장 소리, 1위로 골인했을 때의 환호성…. 출발대가 열리면 오직 앞만 향해 달려 나갔습니다. 잔재주 따윈 부리지 않았습니다. 당대불패. 내 이름은 이제 역사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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