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를 넘어 ‘유일한 미국’으로
국토, 인구, 자원, 기술을 비롯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세계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지난 80여 년 동안 유지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뭐 하나 부족할 것이 없다. 그런데 요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그의 정책, 목표를 보면 미국은 ‘아직 배가 고프다’는 것처럼 들린다.
#1 2025년 1월 6일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총리직 사임’을 발표했다. 직접적인 이유는 트뤼도의 우호적인 이민 정책 등등에 대한 캐나다 국민들의 반발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트럼프가 캐나다와 멕시코 상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자, 지난해 트뤼도는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로 트럼프를 찾아가 설득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처참했다. 트럼프는 12월 초, SNS에 “위대한 캐나다주의 트뤼도 주지사”라며 조롱했고, 트뤼도 사임 발표 직후에는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야 한다”고 발표했다.
#2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남부의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부르겠다고 말했다. ‘동해’를 ‘일본해’라 주장하는 일본처럼 이를 이슈화하려는 것이다. 이어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매입, 통제권을 강화하겠다고 언급했다. 또한 이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경제 또는 군사적 강압수단 사용 배제’를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린란드 주민의 독립과 미국 편입에 대한 주민투표에 대해 덴마크가 방해하면 덴마크에 관세를 비롯한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넘어 ‘유일한 미국’으로
현재 미국의 영토는 약 982만㎢로 세계에서 3번째로 넓은 나라이다. 한반도의 약 45배 크기에 인구 3억4,181만 명으로 세계 3위, GDP 역시 압도적인 세계 1위이다. 국토, 인구, 자원, 기술을 비롯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세계의 패권국가 지위를 지난 80여 년 동안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 편입, 영토 매입과 파나마 운하의 지배권을 다시 되찾겠다는 발언은 ‘블러핑’이 아니라는 것이 세계의 분석이다. 2019년에도 트럼프는 덴마크에게 ‘그린란드를 팔라’는 제안을 했고, 덴마크는 이에 대해 일고의 가치가 없다며 사실상 무시했다. 당시 트럼프는 백악관에 ‘그린란드 매입’을 전담하는 특별팀까지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는 ‘대규모 부동산 거래’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덴마크가 거부하자 트럼프는 2019년 덴마크 공식 방문을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세계를 ‘미국에 이익이 되는 나라, 미국에 돈이 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희토류를 비롯한 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요구했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럼프 독트린’이 고립주의가 아닌 ‘신제국주의’에 가깝다고 본다. 미국의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을 막기 원하는 트럼트의 기준에서는 그동안 미국이 전 세계의 패권국가로서 유지했던 명분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제도의 실현’, ‘인권에 대한 기본적 보장’ 등의 이른바 도덕적 가치가 ‘미국의 우방’을 가르는 기준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뉴욕 타임스」의 보도대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미국 유일주의America Only’도 가능한 현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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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 영토를 확장한 시기1776년 7월 2일, 미국은 필라델피아에서 제2차 대륙회의를 통해 미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 뒤 영국과의 치열한 독립전쟁을 통해 1783년 파리조약으로 독립국 지위를 공식 인정받았다. 이때 미국의 영토는 뉴욕과 워싱턴을 중심으로 한 미국 동부 일대의 13개 식민지였다. 당시 유럽은 식민지 분쟁, 유럽 패권 전쟁의 중심에 있었다. 아무도 미국에 대해 신경을 쓰지도, 쓸 겨를이 없었다. 이때부터 미국의 영토 확장은 이루어졌다.
그 첫 시작은 1803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다. 당시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한창 전쟁 중이었다. 전쟁 비용이 필요했던 프랑스는 루이지아나 즉 미시시피에서 로키 산맥, 그리고 멕시코만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약 215만㎢의 땅을 1,500만 달러에 미국에 팔았다. 지금 가치로는 약 3억 달러이다. 이때 미국은 기존 영토의 몇십 배가 확장되었다. 그리고 1819년 애덤스-오니스 조약을 통해 미국은 스페인에게 지금의 플로리다를 넘겨받았다. 이로 인해 미국은 미시시피 강 유역에 도시를 세웠고 미시시피 강을 통해 미국 동부의 꼭대기에서 미국 남부의 멕시코만까지 물류 유통이 가능해졌다.
1846~1848년, 3년간의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두 나라는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으로 미국은 지금의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를 손에 넣었고 1854년에는 애리조나 일부와 뉴멕시코 남부를 1,000만 달러에 멕시코에게서 매입했다. 지금의 미국 국토와 멕시코와의 국경선이 이때 거의 결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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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있다. 1867년 10월 18일, 미국 국무장관 윌리엄 헨리 수어드는 러시아에게 720만 달러, 현재 가치 1억 3,000만 달러를 주고 얼음 땅이었던 알래스카를 인수했다. 당시 미국 내에서는 ‘온통 얼어붙은 땅을 그렇게 비싼 값에 사는가?’라고 비난하며 알래스카를 ‘수어드의 얼음 상자Seward’s Icebox’로 조롱하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면적 172만㎢의 알래스카는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면서 자원의 보고, 미국 안보의 최전선으로 가치가 급상승, 지금은 무려 몇천 조 달러를 상회한다. 1898년 미국과 하와이가 합병하고 이후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되며 현재 미국의 영토가 확정되었다.미국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거의 ‘제국’을 형성했다. 이후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친 미국은 전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서 세계 각처에 미국 자치령을 내린 것은 물론 우방국 등에 군사기지, 위성 감시 및 레이더 기지를 설치했다. 그린란드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10배인 217만㎢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인 그린란드의 인구는 약 5만 6,000명이다. 덴마크가 18세기부터 지배, 2009년 자치정부가 세워졌지만 외국, 국방, 안보는 덴마크가 담당하고 있다. 미국은 그린란드에 1943년 미 우주군 기지인 피투픽을 설치했다. 이 기지는 냉전시대 이후 지금까지 러시아의 핵미사일을 방어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 또한 러시아 해군의 대서양 진출의 감시로도 그 역할이 막중하다.

그린란드의 모습
총 길이 81.6km의 파나마운하는 미국이 약 2만 명의 노동자의 죽음 끝에 1914년 개통한 요지이다.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바로 건너갈 수 있는 이 운하 덕분에 남미대륙을 삥 돌아야 하는 많은 배들은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었다. 이후 수로 지배권을 놓고 미국은 파나마와 많은 분쟁을 겪었다. 해서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2000년에 운하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파나마에 넘긴다며 1977년 파나마운하 조약을 맺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는 미 군함과 상선 통행료가 터무니없이 비싸고 불공평하다. 미국이 증여한 운하를 운영하는 파나마가 도덕적이고 법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파나마운하의 반환을 요구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그린란드, 파나마운하는 트럼프 전략의 지렛대
트럼프 대통령은 ‘비즈니스맨 출신’이다. 이는 이익과 손해에 대한 계산이 본능적으로 발달되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는 4년간 대통령으로서 정치적 경험을 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3선 도전’에 대해 스스로 선을 그었다. 이는 향후 4년이 미국 대통령으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겠다는 트럼프의 야망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임을 의미한다. 그가 남기고자 하는 업적은 많다. 패권 국가, 세계 경찰국가 지위를 포기하는 대신 얻어낼 경제적 이익, 러시아와 중국의 도전을 막아내고 미국을 다시 세계 유일의 정치, 군사, 경제, 산업, 금융, 테크의 기준이자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린란드는 자원의 보고다. 얼음 땅으로 알았지만 희토류는 전 세계의 25%, 그 밖에 자원도 무궁무진하다. 여기에 기후 변화로 인해 그린란드와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해는 지금 새로운 항로가 열리고 있다. 이 길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국가는 당연히 러시아와 중국이다. 현재 러시아는 얼음을 가르는 쇄빙선만 약 50척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은 2척뿐이다. 트럼프는 러시아의 대서양 진출, 북극해 항로의 길목에 자리잡은 그린란드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고작 6만 명인 그린란드 주민들이 독립을 원한다면 덴마크는 법적으로 이를 구속할 방법이 없다. 이는 덴마크와 유럽연합에게 가장 악몽 같은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독립된 그린란드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파나마운하의 모습
파나마운하 역시 마찬가지다. 파나마 정부의 운하 자율 경영 이후 중국의 자본이 대거 파나마에 투입되었다. 운하 인근 5개 중요 항구 중 2곳은 홍콩계 기업이 운영 중이고 다리 건설 등을 통해 중국은 지금도 막대한 자본을 파나마운하에 쏟고 있다. 이는 중국의 야망인 ‘일대일로’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만약 미국이 파나마운하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한다면, 그래서 혹시라도 운하에 대한 중국 상선의 통행을 불허한다면 중국이 입는 손해는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가 될 것이다.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를 얻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그의 강한 메시지에는 유럽연합의 국방비, GDP의 5% 유지, 유럽연합이 매년 미국에서 가져가는 수천 억 달러 무역 수지에 대한 관세 압박, 파나마운하를 통해 중남미와 교역을 확대하는 중국에 대한 강한 경고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전략적 목표에,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목표 즉 ‘위대한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두 개가 합쳐진 것이다. 이제 세계는 좋든 싫든, 트럼프의 시대에서 4년을 보내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선택이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 전체가 한 몸과 머리가 되어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 권이현(라이프컬처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71호(25.03.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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