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인터뷰 인용 보도시 MBN 유튜브 '나는 정치인이다'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MBN에 있습니다.
진행 : 송주영 MBN 기자
출연 : 김대식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
방송일 : 2025년2월13일(목)
[전문]
○ 앵 커> 여러분 안녕하세요. 송주영입니다. <나는 정치인이다> 이번 시간에는 최초 호남 출신 부산 국회의원이십니다. 여당 초선의원 대표도 맡고 계신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 김대식 의원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김대식>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앵 커> 조금 전 소개를 드렸는데 고향은 야당 텃밭인 전남 영광, 지역구는 여당 텃밭인 부산 사상구. 정치 역사상 처음이에요. 그래서 헌정사상 최초 호남 출신 부산 의원이다. 이런 수식어가 붙었는데 개인적으로 기분이 어떠세요?
● 김대식> 그렇습니다. 저는 고향이 영광이고 함평중학교를 졸업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럼 왜 서울로 오지 않고 부산으로 갔느냐. 부산 갈 차비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목포행 완행열차가 아니고 부산행 완행열차를 타고 밤새도록 부산에 도착했죠. 그래서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시작했습니다.
○ 앵 커> 그때가 몇 살 때신 거예요?
● 김대식> 열여섯 살 때죠. 막노동을 시작하고 제가 부모로부터 중학교를 졸업하고 단돈 1천 원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공부도 주경야독했고 그리고 대학도 야간을 마쳤고 그러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죠. 왜 이렇게 됐냐면 고등학교도 주경야독하면서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달동네가 있었잖아요. 달동네에 새벽 1시에 저를 부르는 거예요. 새벽 1시에 불러서 '대식아. 지금 이 시간에 모든 사람들이 자고 있는데 너는 깨어 있어야 한다. 이 사람들이 공부할 때 공부하고 이 사람들이 잘 때 공부해라. 그것이 자네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다' 이런 말씀을 듣고 제가 30년 동안 4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습니다. 낮잠도 잔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제가 일본 국비유학생 시험에 합격을 해서 일본에 유학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됐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부산의 많은 사람들, 한 사람의 소중함, 제가 이제 교수 총장을 35년을 했습니다. 그 중간에 제가 정부의 부름을 받고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도 하고 차관급인 민주 대통령 직속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도 하고 그리고 이제 국민권익위원회부위원장에 있죠. 국민의 고충과 기업의 애로를 듣고 해결해주는 암행어사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을 하면서 전국을 돌고 민주평통 하면서 해외 108개국을 돌면서 많은 그런 경험을 좀 쌓았죠. 그러면서 이번에 우리 장제원 의원의 지역구고 지난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거기에서. 제가 이렇게 캐치 프레이즈를 걸었죠. 저는 국회 가면 싸우지 않겠다.
○ 앵 커> 싸우지 않겠다?
● 김대식> 화합하고 통합하는 정치를 하겠다. 섬김의 정치를 하겠다. 이렇게 부르짖었죠. 그것을 우리 위대한 부산 사상구민들이 저를 인정해주고 선택을 해주신 것 같아요. 부족하지만, 그래서 저는 헌정사상 아버지가 호남이 아니라, 본인이 호남 출신으로서 헌정사상 보수당의 텃밭인 PK에서 그것도 부산에서 최초로 당선된 기록을 세웠고 총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 총장도 호남 출신으로서는 PK, TK에서 유일하게 제가 총장까지 역임을 했죠.
○ 앵 커> 초고령 초선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대체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 했더니, 62년생이시더라고요. 그런데 들어오시는 거 보면서는 너무 패기 있고 에너지가 넘치셔서 '62년생이라고 본 것 같은데?' 라고 잠깐 생각을 했거든요.
● 김대식> 제가 사실은 59년생이에요. 59년생인데 호적에 62년생으로 돼 있습니다. 왜 그렇느냐. 얼마나 시골이었으면 옛날에는 사람들이 태어나가지고 많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항아리에 넣어서 뒷동산에 묻고 이렇게 했는데 그때는 뭐 출생신고라는 것도 없었죠. 그래서 한 2~3년 안 죽으면 살 건지 보고 동네 이장이 출생신고를 한 거야. 그러니까 우리 동네에 몇십 명이 생일이 똑같아.
○ 앵 커> 아, 그래요?
● 김대식> 생일이 똑같아. 왜 그러냐면 제가 생일이 3월 달인데 8월 달로 호적이 돼 있거든요? 그러면 뭐냐, 동네 이장이 출생신고하는 날이 한꺼번에 다 생일이야. 그러니까, 그런 정도였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까지 우리 요즘 젊은 사람들이 기억을 못 할지 모르겠는데 호롱불에서 공부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전깃불이 들어올 정도로 촌이었고 저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 단체 사진 찍은 것이 제 첫 사진입니다. 그때는 사진이 없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제가 사진을 많이 찍습니다. 왜? 그 사진에 한이 맺혀가지고. 그래서 몇 시에 태어난 줄도 몰라요. 시계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어려운 역경 속에서 제가 이렇게 왔단 말했죠. 그래서 결국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제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늘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적과의 싸움이 아니고, 또 주변과의 싸움이 아니다. 모든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을 이겨야 반드시 자기가 목표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고 성공이라는 개념이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은 뭐냐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고 빨리 포기하기 때문에 그렇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저는 저녁에 잘 때 어떤 줄 아십니까? 왜 지금 자야 되는가. 아침이 빨리 와야 되는데. 아침이 기다려지는 거예요.
○ 앵 커> 잠자는 것도 아까우세요?
● 김대식> 아까운 거예요. 잠자는 것도 아까워. 빨리 아침이 되면 좋겠다. 나는 오늘 아침이 되면 또 내일 MBN에 지금 <나는 정치인이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데 이런 설렘이 있잖아요. 설렘.
○ 앵 커> 초선 같지 않은 중진 같은 초선이다. 이런 또 수식어도 있으시잖아요. 국회로 오시기 전에 이 과정이 사실은 다양한 정치 경력이 있어서 그게 내재화되어있기 때문에 초선 같은 느낌이라기보다는 경륜이 느껴진다는 평가인 것 같아요.
● 김대식> 저는 국회의원 아닌 사람이 싱크탱크 여의도 연구원장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국회의원과 다선들, 3선 다선들이 해왔던 자리 아닙니까? 제가 20대 여의도 연구원장을 했는데 그때도 저는 굉장히 참 열심히 뛰었어요. 사실은 여의도 연구원장은 장관급 예우를 해줍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도 연봉도 받지 않고
○ 앵 커> 왜 안 받으셨어요?
● 김대식> 받지 않고 저는 자원봉사(volunteer)로 하겠다. 왜냐면 보수가 살아가야 될 길, 내가 앞으로 어떤 정책을 가지고 가야 될 길, 연구소 싱크탱크는 이렇게 가야 된다는 것을 저는 지시하고 싶었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그때 제 파트너가 누구였냐면 민주연구원에 지금 김민석 의원이 민주연구원 원장하고 제가 여의도 연구원장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도 제가 여의도 연구원 20대 원장 하면서 최초로 원장이 민주연구원을 찾아가는 퍼포먼스가 있었어요. 그래서 같이 대화도 많이 하고 이렇게 했는데 저는 보수 우파가 진보 좌파한테 배워야 될 점이 두 가지가 있다고 늘 이야기를 해요. 첫째, 자기희생이 우리는 없다. 저쪽은 자기희생이 있다. 두 번째, 우리는 사람을 키울 줄 모른다. 저쪽은 사람을 키울 줄 안다. 이것은 우리가 진보 좌파들에게 배워야 된다. 이런 걸 제가 설파를 했어요. 설파를 하고 또 보수의 정책은 우리가 하고 진보의 정책은 민주연구원에서 하고 그래서 국민이 바라봐서 이게 옳냐, 이게 틀리냐. 이런 것은 모든 언론에서 생중계한다는 조건 아래 같이 토론을 한 번 해보자. 이런 제안도 제가 했죠. 그래서 저는 정치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국민을 바라보고 국민이 원하는 바로 정치를 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요즘 제가 늘 쓰는 말이 있습니다. 국회의원들,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걱정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 앵 커> 그렇죠.
● 김대식> 그런데 오히려 거꾸로 요즘은 우리 국민이 정치인들을 걱정해서 되겠습니까? 이러면 건전한 국가가 아니고, 건전한 정치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정치인들이 좀 한 번 겸손하게 우리 국민의 말씀을 청취를 해서 이제는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저는 이 여의도 연구원장 할 때도 그랬고 그래서 지금 쭉 오면 여야 국회의원들 제가 굉장히 많이 압니다. 그래서 아마 초선 같지 않은 중진이다. 이렇게 여의도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 앵 커> 여의도 연구원장 시절에 민주연구원장 최초로 만나서 대화했다. 의원님 고향과 지역구의 특성을 놓고 봤을 때도 영호남 가교역할을 기대하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들이 있었는데 또 여야 소통 가교역할을 기대하는 거 아니냐 싶은 생각도 들고 그 일환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야 초선 의원들 모임에서 의원님께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을 대표하는 대표 역할을 지금 하고 계신 거잖아요? 이 역할을 하면서 포부가 있으실까요?
● 김대식> 우리가 초선이 44명이에요. 108명 중에서 44명이면 어떻게 보면 최대의 정족수를 가지고 있잖아요.
○ 앵 커> 3분의 1이 넘어요.
● 김대식> 예. 사실 넘어요. 선배들 얘기가 역대 초선 의원들 중에서 가장 그래도 스펙이나 여러 면에서 경험이나 이런 좋은 분들이 들어왔다. 많다. 이렇게 평가하더라고요. 그래서 초선 의원들의 모임 속에서 '우리는 좀 다른 방향으로 한 번 정치를 한 번 해보자. 정말로 정치라는 게 뭐냐. 국민과 같이 동행하는 거 아니냐' 비가 오면 우산을 씌워주고 눈이 오면 눈을 같이 맞고 또 태풍이 오면 어깨동무하고 막아내는 것이 정치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런 점을 우리가 좀 색다르게 해보고 두 번째는 초선 의원들이 다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분들이 왔어요. 예를 들어 기후 문제, 반도체 문제, 그 다음 교육 문제, 경제 문제 이러한 다양한 분들이 왔기 때문에 이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공부 모임을 좀 하자. 그리고 자기 주제를 발표하자. 이렇게 되면 44명 중에서 한 명이 발표하니까 43명이 간접 공부가 되잖아요. 그래서 국회의원들도 그동안에 쭉 공부해왔고 자기 경험도 쭉 관리해왔지만 공유를 하게 되면 이게 정말 정책하는 데도 필요하고 확장성도 있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도 노력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야당 민주당 초선 의원 대표에게 같이 하자. 같이 공부를 하자. 이렇게 제안을 좀 또 해놓고 있는 형편이죠. 왜냐면 지금 여야가 너무 극한적인 대립이잖아요. 이래서는 안 되는 거죠. 우리가 조선왕조 500년 모든 역사를 보더라도 전쟁터에서도 적과의 싸움에서 적과의 동침도 있잖아요. 같이 또 이렇게 하면 술을 한잔하고 밥을 같이 먹으면서 또 풀어나가고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감정이 없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정책 부분이 부족하면 같이 풀어나가고 이러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국민이 안정하고 정치인들을 믿고 생활할 거 아닙니까?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거거든.
○ 앵 커> 예전에는 여야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정말 격하게 논쟁해도 본회의가 딱 끝나면 고생했어. 등 두들겨주고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이렇게 하면서 이제 대화들을 하셨는데 최근에 모 국회의원한테 들으니까 그 국회 목욕탕 있잖아요? 목욕탕에서도 서로 대화를 길게 안 한다는 거예요. 그만큼 대화가 단절됐다는 건데 정치라는 건 소통이 기반이 돼야 되는 곳인데 그 정도가 안되면 바라보는 국민 입장에서는 많이 불안하고 걱정이 되죠. 사실.
● 김대식> 아마 제가 제일 소통 많이 할걸요?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한 서른여섯 명 정도 식사 벌써 했어요. 벌써 했고 그리고 본회의장 들어갈 때 제가 먼저 인사합니다. 거울은 절대 먼저 웃지 않는다. 내가 웃어야 거울이 따라 웃는다.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상대성 원리인데 가서 어느 어느 의원님 잘 계셨습니까? 하면 반갑게 해요. 그것을 먼저 우리가 저는 실천하는 편이고 처음부터 저는 소통하고 화합하고 협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본회의장에서 딱 나오면 오른쪽은 여자 화장실이 있어요. 왼쪽은 남자 화장실이 있어요. 남자 화장실 쪽에는 민주당 의원들의 휴게실이 있고 여자 화장실에는 국민의힘 휴게실이 있어요. 그러면 내가 화장실 갔다가 손 씻고 와서 여기는 뭐 이렇게 맛있는 거 많이 먹어. 그러면 또 들고 와서 우리 이거 어디서 갖고 왔냐고 그러면 민주당에서 갖고 왔다. 우리 것 좀 갖다 주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게 되면 절대 서로가 언성도 없고 대립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위원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교육위원인데 교육위에서도 정말 그런 싸움 없이 참 협치하고 그렇게 하고 제가 7개월이 됐잖아요. 7개월 동안에 단독법을 2개, 그다음에 공동법을 5개, 총 7개를 통과시켰어요. 다 협치 아니겠어요? 그렇게 하자 이거지. 우리가 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공복들인데 싸워가지고 또 이렇게 해서 뭐 하겠느냐. 좀 그렇게 하려고 하면 뭐를 하느냐. 민주당에서 다수당을 갖고 있잖아요. 다수당이잖아요. 다수당이 조금 양보할 거는 양보하고 협치할 거는 협치해야 되는데 일방통행, 단독 드리블 그리고 일방 독주. 이렇게 가니까 우리 어떻게 보면, 집권당이라고 해도 우리가 소수당이에요. 속수무책이야.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야. 야, 이런 결과구나. 현재까지 우리가 해왔던 방식대로 좀 선배들이 그래도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국회에서 싸우더라도 끝나고 나면 그래. 고생했어. 김 의원 고생했지. 가자.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렇게 하면서 또 풀고 또 싸울 건 싸우고 또 대립할 건 대립해야죠. 왜 균형과 견제가 맞춰줘야 되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 너무 일방적인 독재 하니까 지금 민주당 지지율도 지금 날아가고 이재명 대표 지지율도 내려가는 거 아닙니까? 지금.
○ 앵 커> 지금 22대 초선 어느 때보다도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있고 소위 말해 양질의 초선 의원들이 많다고 말씀주셨는데 조금 불편한 질문일 수 있는데 22대 한정해서 말씀드리는 건 아니에요. 최근 경향성으로 놓고 보면 여야 모두 초선 의원들이 조금 과거보다는 파이팅이 떨어진다. 이런 평가들이 있어요. 가령, 초선은 좀 설익고 거칠어도 당내 혁신 정책에 대해서 각을 세운다든가 이런 게 좀 예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좀 그게 없다. 이런 얘기들이 나오고는 있는데 저도 정치부를 좀 출입하면서 그 흐름에 동의하는 편이에요. 사실은. 변화의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 김대식> 그렇습니다. 아주 좋은 지적 하셨는데 그동안 오랫동안 그 정치 현장에서 뛰어보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데 제가 볼 때는 민주당 같은 경우에 보면 일극 체제입니다. 이재명 대표의. 그러니까, 어떤 입김이 나오지도 않아요. 그리고 어떤 투표를 해보면 투표도 이탈이 없어요. 국민의힘은 집권당이라고 하면서 너무 소수당이에요. 만약에, 집권당이란 거 없으면 소수 정당으로 전락을 해요. 몇 명이서 입김을 내죠. 입김을 내죠. 그 입김을 내는 것은 혁신과 개혁의 입김이 아니라, 우리 당의 정책에 대한 거예요. 제가 의총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국회의원 300명이 누구나가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다.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겠어요? 냈는데 나는 민주당에게 부러운 게 하나가 있다. 뭐냐. 민주당은 딱 당론이 결정이 되면 한 표도 흐트러진 게 없어요. 근데 우리는 당론이 결정돼도 흐트러져. 표가 이탈이 있어. 이거는 정당 정치에 맞지 않다. 나는 국회의원이요. 개별적으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지 않습니까? 사실은.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자기가 반대를 해도 우리가 소수당이기 때문에 집권당이지만 국회에서는 소수당이잖아요. 소수당이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여야가 대치 국면에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단결, 단합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자기 의견이 조금 맞지 않더라도 당론이 결정되면 당론을 따라주는 것이 정당 정치에 맞다. 민주주의라는 게 뭐겠어요. 49% 반대와 51% 차이, 2%로 가지 않겠어요. 2%로 간 겁니다. 대통령이라고 다 좋아합니까? 대통령 싫어하는 사람 있잖아요. 이재명 대표라고 다 좋아합니까? 싫어하는 사람 있잖아요. 우리 당이라고 좋아합니까? 싫어하는 사람 있잖아요. 그러한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야. 그러나 정당 정치라는 건 그러한 것을 하나로 집약해가지고 한목소리, 원보이스로 내라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하려고 하면 나는 정당의 당 대표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미국처럼. 원내대표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혁신이다. 뭐다. 혁신이라는 게 뭐예요. 굉장히 어렵잖아요. 지금까지 혁신 혁신 계속 부르죠. 혁신은 가죽 껍데기를 벗기는 것이 혁신이잖아요. 그만큼 어렵다는 거거든. 그래서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이게 혁신이고 다른 목소리를 침묵을 다수의 침묵을 지킨다고 해서 혁신 안 한다?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도적으로 이러한 부분을 조금 탈피해야 혁신의 목소리가 거기서 나온다. 저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지금 하는 행동이 혁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지금 여야가 대치 상태에서 여야 국회의원들, 야당 국회의원들하고 서른여섯 명이랑 밥을 먹을 정도로 협치하겠다. 통합하겠다. 싸우지 않겠다. 섬김의 정치 하겠다. 이게 혁신 아니겠습니까? 뭔가 제도적으로 틀을 바꾸고 뭐 이렇다고 해서 혁신이다. 이런 거보다도 조용하면서 하나하나 바꿔나가는 것이 저는 혁신이다. 이렇게 저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게 뭐냐. 기득권층을 버리는 거거든요. 무슨 제도를 바꾸고 출판기념회 하지 않는 것이 혁신이다. 왜 그렇습니까? 그럼 미국은 혁신이 되는 겁니까?
- 인터뷰 인용 보도시 MBN 유튜브 '나는 정치인이다'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MBN에 있습니다.
진행 : 송주영 MBN 기자
출연 : 김대식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
방송일 : 2025년2월13일(목)
[전문]
○ 앵 커> 여러분 안녕하세요. 송주영입니다. <나는 정치인이다> 이번 시간에는 최초 호남 출신 부산 국회의원이십니다. 여당 초선의원 대표도 맡고 계신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 김대식 의원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김대식>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 앵 커> 조금 전 소개를 드렸는데 고향은 야당 텃밭인 전남 영광, 지역구는 여당 텃밭인 부산 사상구. 정치 역사상 처음이에요. 그래서 헌정사상 최초 호남 출신 부산 의원이다. 이런 수식어가 붙었는데 개인적으로 기분이 어떠세요?
● 김대식> 그렇습니다. 저는 고향이 영광이고 함평중학교를 졸업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럼 왜 서울로 오지 않고 부산으로 갔느냐. 부산 갈 차비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목포행 완행열차가 아니고 부산행 완행열차를 타고 밤새도록 부산에 도착했죠. 그래서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시작했습니다.
○ 앵 커> 그때가 몇 살 때신 거예요?
● 김대식> 열여섯 살 때죠. 막노동을 시작하고 제가 부모로부터 중학교를 졸업하고 단돈 1천 원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공부도 주경야독했고 그리고 대학도 야간을 마쳤고 그러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죠. 왜 이렇게 됐냐면 고등학교도 주경야독하면서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달동네가 있었잖아요. 달동네에 새벽 1시에 저를 부르는 거예요. 새벽 1시에 불러서 '대식아. 지금 이 시간에 모든 사람들이 자고 있는데 너는 깨어 있어야 한다. 이 사람들이 공부할 때 공부하고 이 사람들이 잘 때 공부해라. 그것이 자네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다' 이런 말씀을 듣고 제가 30년 동안 4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습니다. 낮잠도 잔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제가 일본 국비유학생 시험에 합격을 해서 일본에 유학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됐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부산의 많은 사람들, 한 사람의 소중함, 제가 이제 교수 총장을 35년을 했습니다. 그 중간에 제가 정부의 부름을 받고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도 하고 차관급인 민주 대통령 직속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도 하고 그리고 이제 국민권익위원회부위원장에 있죠. 국민의 고충과 기업의 애로를 듣고 해결해주는 암행어사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을 하면서 전국을 돌고 민주평통 하면서 해외 108개국을 돌면서 많은 그런 경험을 좀 쌓았죠. 그러면서 이번에 우리 장제원 의원의 지역구고 지난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거기에서. 제가 이렇게 캐치 프레이즈를 걸었죠. 저는 국회 가면 싸우지 않겠다.
○ 앵 커> 싸우지 않겠다?
● 김대식> 화합하고 통합하는 정치를 하겠다. 섬김의 정치를 하겠다. 이렇게 부르짖었죠. 그것을 우리 위대한 부산 사상구민들이 저를 인정해주고 선택을 해주신 것 같아요. 부족하지만, 그래서 저는 헌정사상 아버지가 호남이 아니라, 본인이 호남 출신으로서 헌정사상 보수당의 텃밭인 PK에서 그것도 부산에서 최초로 당선된 기록을 세웠고 총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 총장도 호남 출신으로서는 PK, TK에서 유일하게 제가 총장까지 역임을 했죠.
○ 앵 커> 초고령 초선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대체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 했더니, 62년생이시더라고요. 그런데 들어오시는 거 보면서는 너무 패기 있고 에너지가 넘치셔서 '62년생이라고 본 것 같은데?' 라고 잠깐 생각을 했거든요.
● 김대식> 제가 사실은 59년생이에요. 59년생인데 호적에 62년생으로 돼 있습니다. 왜 그렇느냐. 얼마나 시골이었으면 옛날에는 사람들이 태어나가지고 많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항아리에 넣어서 뒷동산에 묻고 이렇게 했는데 그때는 뭐 출생신고라는 것도 없었죠. 그래서 한 2~3년 안 죽으면 살 건지 보고 동네 이장이 출생신고를 한 거야. 그러니까 우리 동네에 몇십 명이 생일이 똑같아.
○ 앵 커> 아, 그래요?
● 김대식> 생일이 똑같아. 왜 그러냐면 제가 생일이 3월 달인데 8월 달로 호적이 돼 있거든요? 그러면 뭐냐, 동네 이장이 출생신고하는 날이 한꺼번에 다 생일이야. 그러니까, 그런 정도였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까지 우리 요즘 젊은 사람들이 기억을 못 할지 모르겠는데 호롱불에서 공부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전깃불이 들어올 정도로 촌이었고 저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 단체 사진 찍은 것이 제 첫 사진입니다. 그때는 사진이 없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제가 사진을 많이 찍습니다. 왜? 그 사진에 한이 맺혀가지고. 그래서 몇 시에 태어난 줄도 몰라요. 시계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어려운 역경 속에서 제가 이렇게 왔단 말했죠. 그래서 결국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제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늘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적과의 싸움이 아니고, 또 주변과의 싸움이 아니다. 모든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을 이겨야 반드시 자기가 목표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고 성공이라는 개념이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은 뭐냐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고 빨리 포기하기 때문에 그렇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저는 저녁에 잘 때 어떤 줄 아십니까? 왜 지금 자야 되는가. 아침이 빨리 와야 되는데. 아침이 기다려지는 거예요.
○ 앵 커> 잠자는 것도 아까우세요?
● 김대식> 아까운 거예요. 잠자는 것도 아까워. 빨리 아침이 되면 좋겠다. 나는 오늘 아침이 되면 또 내일 MBN에 지금 <나는 정치인이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데 이런 설렘이 있잖아요. 설렘.
○ 앵 커> 초선 같지 않은 중진 같은 초선이다. 이런 또 수식어도 있으시잖아요. 국회로 오시기 전에 이 과정이 사실은 다양한 정치 경력이 있어서 그게 내재화되어있기 때문에 초선 같은 느낌이라기보다는 경륜이 느껴진다는 평가인 것 같아요.
● 김대식> 저는 국회의원 아닌 사람이 싱크탱크 여의도 연구원장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국회의원과 다선들, 3선 다선들이 해왔던 자리 아닙니까? 제가 20대 여의도 연구원장을 했는데 그때도 저는 굉장히 참 열심히 뛰었어요. 사실은 여의도 연구원장은 장관급 예우를 해줍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도 연봉도 받지 않고
○ 앵 커> 왜 안 받으셨어요?
● 김대식> 받지 않고 저는 자원봉사(volunteer)로 하겠다. 왜냐면 보수가 살아가야 될 길, 내가 앞으로 어떤 정책을 가지고 가야 될 길, 연구소 싱크탱크는 이렇게 가야 된다는 것을 저는 지시하고 싶었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그때 제 파트너가 누구였냐면 민주연구원에 지금 김민석 의원이 민주연구원 원장하고 제가 여의도 연구원장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도 제가 여의도 연구원 20대 원장 하면서 최초로 원장이 민주연구원을 찾아가는 퍼포먼스가 있었어요. 그래서 같이 대화도 많이 하고 이렇게 했는데 저는 보수 우파가 진보 좌파한테 배워야 될 점이 두 가지가 있다고 늘 이야기를 해요. 첫째, 자기희생이 우리는 없다. 저쪽은 자기희생이 있다. 두 번째, 우리는 사람을 키울 줄 모른다. 저쪽은 사람을 키울 줄 안다. 이것은 우리가 진보 좌파들에게 배워야 된다. 이런 걸 제가 설파를 했어요. 설파를 하고 또 보수의 정책은 우리가 하고 진보의 정책은 민주연구원에서 하고 그래서 국민이 바라봐서 이게 옳냐, 이게 틀리냐. 이런 것은 모든 언론에서 생중계한다는 조건 아래 같이 토론을 한 번 해보자. 이런 제안도 제가 했죠. 그래서 저는 정치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국민을 바라보고 국민이 원하는 바로 정치를 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요즘 제가 늘 쓰는 말이 있습니다. 국회의원들,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걱정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 앵 커> 그렇죠.
● 김대식> 그런데 오히려 거꾸로 요즘은 우리 국민이 정치인들을 걱정해서 되겠습니까? 이러면 건전한 국가가 아니고, 건전한 정치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정치인들이 좀 한 번 겸손하게 우리 국민의 말씀을 청취를 해서 이제는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저는 이 여의도 연구원장 할 때도 그랬고 그래서 지금 쭉 오면 여야 국회의원들 제가 굉장히 많이 압니다. 그래서 아마 초선 같지 않은 중진이다. 이렇게 여의도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 앵 커> 여의도 연구원장 시절에 민주연구원장 최초로 만나서 대화했다. 의원님 고향과 지역구의 특성을 놓고 봤을 때도 영호남 가교역할을 기대하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들이 있었는데 또 여야 소통 가교역할을 기대하는 거 아니냐 싶은 생각도 들고 그 일환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야 초선 의원들 모임에서 의원님께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을 대표하는 대표 역할을 지금 하고 계신 거잖아요? 이 역할을 하면서 포부가 있으실까요?
● 김대식> 우리가 초선이 44명이에요. 108명 중에서 44명이면 어떻게 보면 최대의 정족수를 가지고 있잖아요.
○ 앵 커> 3분의 1이 넘어요.
● 김대식> 예. 사실 넘어요. 선배들 얘기가 역대 초선 의원들 중에서 가장 그래도 스펙이나 여러 면에서 경험이나 이런 좋은 분들이 들어왔다. 많다. 이렇게 평가하더라고요. 그래서 초선 의원들의 모임 속에서 '우리는 좀 다른 방향으로 한 번 정치를 한 번 해보자. 정말로 정치라는 게 뭐냐. 국민과 같이 동행하는 거 아니냐' 비가 오면 우산을 씌워주고 눈이 오면 눈을 같이 맞고 또 태풍이 오면 어깨동무하고 막아내는 것이 정치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런 점을 우리가 좀 색다르게 해보고 두 번째는 초선 의원들이 다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분들이 왔어요. 예를 들어 기후 문제, 반도체 문제, 그 다음 교육 문제, 경제 문제 이러한 다양한 분들이 왔기 때문에 이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공부 모임을 좀 하자. 그리고 자기 주제를 발표하자. 이렇게 되면 44명 중에서 한 명이 발표하니까 43명이 간접 공부가 되잖아요. 그래서 국회의원들도 그동안에 쭉 공부해왔고 자기 경험도 쭉 관리해왔지만 공유를 하게 되면 이게 정말 정책하는 데도 필요하고 확장성도 있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도 노력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야당 민주당 초선 의원 대표에게 같이 하자. 같이 공부를 하자. 이렇게 제안을 좀 또 해놓고 있는 형편이죠. 왜냐면 지금 여야가 너무 극한적인 대립이잖아요. 이래서는 안 되는 거죠. 우리가 조선왕조 500년 모든 역사를 보더라도 전쟁터에서도 적과의 싸움에서 적과의 동침도 있잖아요. 같이 또 이렇게 하면 술을 한잔하고 밥을 같이 먹으면서 또 풀어나가고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감정이 없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정책 부분이 부족하면 같이 풀어나가고 이러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국민이 안정하고 정치인들을 믿고 생활할 거 아닙니까?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거거든.
○ 앵 커> 예전에는 여야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정말 격하게 논쟁해도 본회의가 딱 끝나면 고생했어. 등 두들겨주고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이렇게 하면서 이제 대화들을 하셨는데 최근에 모 국회의원한테 들으니까 그 국회 목욕탕 있잖아요? 목욕탕에서도 서로 대화를 길게 안 한다는 거예요. 그만큼 대화가 단절됐다는 건데 정치라는 건 소통이 기반이 돼야 되는 곳인데 그 정도가 안되면 바라보는 국민 입장에서는 많이 불안하고 걱정이 되죠. 사실.
● 김대식> 아마 제가 제일 소통 많이 할걸요?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한 서른여섯 명 정도 식사 벌써 했어요. 벌써 했고 그리고 본회의장 들어갈 때 제가 먼저 인사합니다. 거울은 절대 먼저 웃지 않는다. 내가 웃어야 거울이 따라 웃는다.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상대성 원리인데 가서 어느 어느 의원님 잘 계셨습니까? 하면 반갑게 해요. 그것을 먼저 우리가 저는 실천하는 편이고 처음부터 저는 소통하고 화합하고 협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본회의장에서 딱 나오면 오른쪽은 여자 화장실이 있어요. 왼쪽은 남자 화장실이 있어요. 남자 화장실 쪽에는 민주당 의원들의 휴게실이 있고 여자 화장실에는 국민의힘 휴게실이 있어요. 그러면 내가 화장실 갔다가 손 씻고 와서 여기는 뭐 이렇게 맛있는 거 많이 먹어. 그러면 또 들고 와서 우리 이거 어디서 갖고 왔냐고 그러면 민주당에서 갖고 왔다. 우리 것 좀 갖다 주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게 되면 절대 서로가 언성도 없고 대립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위원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교육위원인데 교육위에서도 정말 그런 싸움 없이 참 협치하고 그렇게 하고 제가 7개월이 됐잖아요. 7개월 동안에 단독법을 2개, 그다음에 공동법을 5개, 총 7개를 통과시켰어요. 다 협치 아니겠어요? 그렇게 하자 이거지. 우리가 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공복들인데 싸워가지고 또 이렇게 해서 뭐 하겠느냐. 좀 그렇게 하려고 하면 뭐를 하느냐. 민주당에서 다수당을 갖고 있잖아요. 다수당이잖아요. 다수당이 조금 양보할 거는 양보하고 협치할 거는 협치해야 되는데 일방통행, 단독 드리블 그리고 일방 독주. 이렇게 가니까 우리 어떻게 보면, 집권당이라고 해도 우리가 소수당이에요. 속수무책이야.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야. 야, 이런 결과구나. 현재까지 우리가 해왔던 방식대로 좀 선배들이 그래도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국회에서 싸우더라도 끝나고 나면 그래. 고생했어. 김 의원 고생했지. 가자.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렇게 하면서 또 풀고 또 싸울 건 싸우고 또 대립할 건 대립해야죠. 왜 균형과 견제가 맞춰줘야 되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 너무 일방적인 독재 하니까 지금 민주당 지지율도 지금 날아가고 이재명 대표 지지율도 내려가는 거 아닙니까? 지금.
○ 앵 커> 지금 22대 초선 어느 때보다도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있고 소위 말해 양질의 초선 의원들이 많다고 말씀주셨는데 조금 불편한 질문일 수 있는데 22대 한정해서 말씀드리는 건 아니에요. 최근 경향성으로 놓고 보면 여야 모두 초선 의원들이 조금 과거보다는 파이팅이 떨어진다. 이런 평가들이 있어요. 가령, 초선은 좀 설익고 거칠어도 당내 혁신 정책에 대해서 각을 세운다든가 이런 게 좀 예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좀 그게 없다. 이런 얘기들이 나오고는 있는데 저도 정치부를 좀 출입하면서 그 흐름에 동의하는 편이에요. 사실은. 변화의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 김대식> 그렇습니다. 아주 좋은 지적 하셨는데 그동안 오랫동안 그 정치 현장에서 뛰어보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데 제가 볼 때는 민주당 같은 경우에 보면 일극 체제입니다. 이재명 대표의. 그러니까, 어떤 입김이 나오지도 않아요. 그리고 어떤 투표를 해보면 투표도 이탈이 없어요. 국민의힘은 집권당이라고 하면서 너무 소수당이에요. 만약에, 집권당이란 거 없으면 소수 정당으로 전락을 해요. 몇 명이서 입김을 내죠. 입김을 내죠. 그 입김을 내는 것은 혁신과 개혁의 입김이 아니라, 우리 당의 정책에 대한 거예요. 제가 의총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국회의원 300명이 누구나가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다.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겠어요? 냈는데 나는 민주당에게 부러운 게 하나가 있다. 뭐냐. 민주당은 딱 당론이 결정이 되면 한 표도 흐트러진 게 없어요. 근데 우리는 당론이 결정돼도 흐트러져. 표가 이탈이 있어. 이거는 정당 정치에 맞지 않다. 나는 국회의원이요. 개별적으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지 않습니까? 사실은.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자기가 반대를 해도 우리가 소수당이기 때문에 집권당이지만 국회에서는 소수당이잖아요. 소수당이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여야가 대치 국면에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단결, 단합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자기 의견이 조금 맞지 않더라도 당론이 결정되면 당론을 따라주는 것이 정당 정치에 맞다. 민주주의라는 게 뭐겠어요. 49% 반대와 51% 차이, 2%로 가지 않겠어요. 2%로 간 겁니다. 대통령이라고 다 좋아합니까? 대통령 싫어하는 사람 있잖아요. 이재명 대표라고 다 좋아합니까? 싫어하는 사람 있잖아요. 우리 당이라고 좋아합니까? 싫어하는 사람 있잖아요. 그러한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야. 그러나 정당 정치라는 건 그러한 것을 하나로 집약해가지고 한목소리, 원보이스로 내라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하려고 하면 나는 정당의 당 대표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미국처럼. 원내대표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혁신이다. 뭐다. 혁신이라는 게 뭐예요. 굉장히 어렵잖아요. 지금까지 혁신 혁신 계속 부르죠. 혁신은 가죽 껍데기를 벗기는 것이 혁신이잖아요. 그만큼 어렵다는 거거든. 그래서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이게 혁신이고 다른 목소리를 침묵을 다수의 침묵을 지킨다고 해서 혁신 안 한다?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도적으로 이러한 부분을 조금 탈피해야 혁신의 목소리가 거기서 나온다. 저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지금 하는 행동이 혁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지금 여야가 대치 상태에서 여야 국회의원들, 야당 국회의원들하고 서른여섯 명이랑 밥을 먹을 정도로 협치하겠다. 통합하겠다. 싸우지 않겠다. 섬김의 정치 하겠다. 이게 혁신 아니겠습니까? 뭔가 제도적으로 틀을 바꾸고 뭐 이렇다고 해서 혁신이다. 이런 거보다도 조용하면서 하나하나 바꿔나가는 것이 저는 혁신이다. 이렇게 저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게 뭐냐. 기득권층을 버리는 거거든요. 무슨 제도를 바꾸고 출판기념회 하지 않는 것이 혁신이다. 왜 그렇습니까? 그럼 미국은 혁신이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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