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MBN 문화가산책] 대한민국 히로뽕 유통의 역사를 쫓다…'뽕의 계보'
입력 2024-08-21 15:23  | 수정 2024-08-21 16:14
뽕의 계보 [사진=팩트스토리]
'히로뽕 유통왕'을 추적한 최초의 한국 논픽션
3년간 전·현직 마약 유통업자 40여 명 대면 인터뷰

지난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연간 마약 사범의 숫자가 2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지난해 단속된 마약류 사범의 수는 2만 7,611명. 최근 5년간 단속된 마약사범이 평균 연 1만 7,000명대로 유지됐지만 최근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마약 사범 10명 중 6명 이상이 20·30대 청년으로 나타나는 등 범행을 저지르는 연령대도 차츰 낮아지고 있어 마약 유통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성이 점증되고 있습니다.

책 '뽕의 계보'는 현직 기자가 '히로뽕'(필로폰)이 국내에 유입된 60년의 역사를 추적하며 필로폰 유통왕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최근 확산하고 있는 비대면 텔레그램 유통망 등을 통해 마약이 한국 사회에 파고드는 현장을 담아낸 범죄 논픽션입니다.


저자 전현진이 만 3년간 추적해 대면 인터뷰한 전·현직 마약 유통업자만 40여 명이며 서면을 주고 받거나 통화를 한 유통업자의 수는 이보다도 더 많습니다.

인터뷰와 동시에 동시에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이들의 증언을 꼼꼼하게 교차 검증한 저자는 '1호 히로뽕 사범'이자 재일조선인인 정강봉, 한때 히로뽕 세계의 거물이라 불렸으나 쓸쓸한 죽음을 맞은 김동일, 지금은 주류가 된 비대면 텔레그램 유통망을 만든 '로뽕이'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작성했습니다.

책 속에는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부산항에서 세탁을 거쳐 동남아와 해외 각지로 마약이 흘러갔던 '코리아 루트'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한국산 히로뽕' 등에 대한 통시적인 서술은 물론, 마약 유통업자들의 관행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히로뽕 세계의 최소 단위는 0.07g입니다. 약 1400회 투약량인 히로뽕 100g을 구해 판매할 능력이 되는 유통업자도 많지 않은 가운데 1㎏을 정기적으로 다뤄 그 세계에서 '거물'로 손에 꼽히는 유통업자들을 만난 저자는 마약 업자가 큰 돈을 벌 것 같지만, 결국 그 끝은 불행한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감옥에서도 접견이나 편지 등을 통해 끊임없이 거래를 지휘하는 유통업자들이지만 그들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한 예로, 이른바 '뽕의 계보'에 이름을 남긴 김동일은 무연고자 장례로 생을 마감했으며 그의 유해가 어디 있는지는 아는 이가 없습니다.

마약왕의 이야기라고 소개했지만 결국 뽕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인간들의 이야기이며 마약왕도 히로뽕이 낳은 또 다른 피해자일지 모른다는 저자의 말은 숨가쁘게 펼쳐지는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 읽은 독자들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합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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