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北 엘리트였던 박충권 의원이 두만강을 건넌 이유는? [나는정치인이다]
입력 2024-08-16 07:50  | 수정 2024-08-16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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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송주영 MBN 기자
출연 :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
녹화일 : 2024년8월14일(수)

[전문]
○ 앵 커> 여러분 안녕하세요? 송주영입니다. <나는 정치인이다> 이번 시간에는 22대 국회 유일하게 당선된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입니다. 탈북민 공학도 청년,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박충권> 안녕하십니까?

○ 앵 커> 네. 국회에 입성한 지 이제 5개월 조금 넘었나요?

● 박충권>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는 2개월 반 정도 됐고, 여의도에 입성한 것은 어떻게 보면 인재영입 시절까지 합치면 한 7~8개월 정도 됩니다.

○ 앵 커> 네, 어떠세요?

● 박충권> 정신이 없습니다. 과거 영입 인재 시절에 언론인분들, 기자분들이랑 인터뷰를 하게 되면 제가 가장 많이 했던 얘기가 그런 게 있습니다. 국회의원 도대체 뭐하냐. 맨날 싸우기만 하고 일을 안 하는 거냐. 그러면서 제가 이제 포부를 밝혔던 것은 나는 의원실을 꾸리게 되면 진짜 일하는 의원실, 만약에 당선이 된다면 일하는 의원이 한번 돼보고 싶다. 이런 말을 많이 했었거든요? 근데 정작 개원하고 시작하고 보니까, 그때 했던 말들을 정말 취소하고 싶어요. 기사들을 지우고 싶습니다.

○ 앵 커> 다 거둬들이고 싶으세요?

● 박충권> 이렇게 정신없고 이렇게 힘든지 몰랐습니다.

○ 앵 커> 너무 바쁘시죠?

● 박충권> 아플 수는 없고, 정말 비효율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앵 커> 그렇죠. 아침부터 저녁까지, 찾아오는 민원인들도 엄청 많잖아요?

● 박충권> 이제 보좌진이 일정 관리를 해주시는데, 하루종일 이제 정해진 일정 따라서 거의 뭐 뱅글뱅글 돌다 보면, 팽이처럼 돌다 보면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그냥 피곤해서 자거든요?

○ 앵 커> 곯아 떨어지시는구나.

● 박충권> 예. 자기 전에 딱 생각을 해보면 과연 오늘 하루종일 나는 어디 있었는가. 뭔가 마리오네트가 된 느낌이다. 이런 생각이 좀 자주 듭니다.

○ 앵 커> 의원님은 몇 호실이세요?

● 박충권> 915호입니다.

○ 앵 커> 915호. 초선이시기 때문에 의원실 선택은 못 하셨죠?

● 박충권> 아, 그렇죠. 선택은 못 하죠. 그래도 좀 배려를 해주셔서 9층. 고위층에 살고 있습니다.

○ 앵 커> 고위층. (웃음)

● 박충권> 최고위층은 아니지만, 고위층에 살고 있습니다.

○ 앵 커> 아니, 9층. 조금 의미가 있나요? 의원님 좀 이력이 특이하세요. 근데 제가 9층이라고 하는 거에 인연 있냐고 말씀드린 게, 2009년에, 그렇죠?

● 박충권> 9자.

○ 앵 커> 의원님 탈북하셨어요.

● 박충권> 그것보다 더 인연이 있는 게 있는데,

○ 앵 커> 뭐가 있을까요?

● 박충권> 뭐냐면 제가 북한을 떠난 날이, 두만강을 건넌 날이죠. 2009년 4월 10일 새벽 1시였어요.

○ 앵 커> 아, 그래요? 새벽 1시?

● 박충권> 근데 이번 총선이 4월 10일.

○ 앵 커> 어머.

● 박충권> 그리고 당선 확정이 거의 새벽 시간대에 났던 것 같은데,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녁 시간? 시간까지는 안 맞군요. 어쨌든, 날짜는 그랬습니다.

○ 앵 커> 그렇네요. 2009년 탈북했을 때 의원님 나이가…되게 젊어 보이셔서.

● 박충권> 우리 대통령님 (만)나이로 하면 당시에 23살? 정도에 왔습니다.

○ 앵 커> 23살이요? 그럼 그때 북한에서는 뭘 하고 계셨어요?

● 박충권> 그때는 이제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 1년 8개월 정도 이제 군수공장 연구소에 배치받아서 이제 적만 걸어두고 일은 안 했습니다.

○ 앵 커> 왜 적만 걸어두고 일은 안 하셨어요?

● 박충권> 그때는 이제 이미 생각이 바뀐 뒤라, 이제 더 이상 북한 정권 김정일 정권을 위해서 무기개발은 하지 않겠다. 이런 마음으로 이제 출근하지 않았고, 그러면서 탈북 준비를 했죠.

○ 앵 커> 북한에서 적만 걸어두고 일을 안 할 수 있나요? 선택할 수 있나요?

● 박충권> 조금 더 딜레이 됐더라면, 잡혀가지 않았을까. 특히나, 제가 졸업한 대학교와 그리고 배치받은 공장이 기밀등급이 좀 높은 방위산업 분야이기 때문에, 더 버텼더라면 아마 잡혀갔을 겁니다. 당의 어떤 방침과 지시를 어긴 자라는 죄명을 쓰고.

○ 앵 커> 의원님 나오신 대학이 김정은 국방종합대학교? 이 대학교가 그러면 우리나라로 치면 어느 대학교의 성격과 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물론, 딱 맞아떨어지는 대학이 있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한데 좀 이해도를 돕기 위해서.

● 박충권>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부연 설명을 하면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가 나라라고 할 수 있나요? 어쨌든, 우리 영토를 불법으로 장악하고 있는 저 세력 자체가 어떻게 보면 세계적으로 비슷한, 유사한 국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그런 국가이다 보니, 대학교 자체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대학교입니다. 그래서 비교하기가 정말 어렵고 굳이 비교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카이스트와 육사를 합쳐놓은 느낌.

○ 앵 커> 카이스트와 육사를 합쳐놓은 느낌?

● 박충권> 순수하게 공대로만 이루어져 있고 학생들은 전부 다 제복을 입고,

○ 앵 커> 제복을 입고?

● 박충권> 군인 신분이고,

○ 앵 커> 아, 군인 신분이에요?

● 박충권> 네. 군인 신분이고, 졸업해도 군 복무 경력 인정을 받고.

○ 앵 커> 그래요?

● 박충권> 커리큘럼은 카이스트와 다른 게, 온전하게 무기 개발에 포커싱이 되어있어요. 그래서 1963년에 김일성이 설립한 대학교인데 ICBM을 만들겠다는 목표 하나만 가지고 대학교를 설립한 겁니다.

○ 앵 커> 그래서 이게 좀 특이하더라고요. 이 ICBM만 연구하는 대학이다.라고 제가 들었는데, 그게 가능한가요?

● 박충권> 초반에는 ICBM만 주요 목표로 했는데 이제 역사가 흐르면서 학교가 좀 커지고 하다 보니까, 거의 모든 무기 체계를 다 연구합니다. 전공을 하는데 근데 핵심은 주요 주제는 ICBM이다. 그래서 모든 학과를 다 합치면 ICBM 하나 나온다 라고 보시면 되고, 그 외에도 뭐 여러 가지 뭐 무기들을 전공합니다. 4학부라고 숫자 ‘4라고 되어있는 학부가 있는데 여기는 상용무기 학부로 되어있어서 여기에 온갖 무기들이 다 들어있어요. 장갑무기 학과, 저격무기 학과, 해상무기 학과, 잠수함무기 학과, 어뢰 학과, 지뢰 학과 뭐 이런 여러 학과들이 쭉 다 포함이 돼 있는 그런 학부도 하나 있어요.

○ 앵 커> 의원님은 무슨 학부셨어요?

● 박충권> 저는 화학 재료공학부라고 있었는데, 이게 뭐냐면 ICBM이나 무기 체계들에 관한 소재를 개발하는 거예요. 최근에 뭐 이런 얘기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 북한이 ICBM을 완성했다고 하는데 과연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되느냐, 안 되느냐 이런 얘기가 있죠. 그 대기권 재진입체 소재도 저희 학과, 학부가 담당하는 거고, 그리고 뭐 고체연료 ICBM,

○ 앵 커> 네. 고체연료.

● 박충권> 고체연료도 저희 학부에서 하는 거고,

○ 앵 커> 아. 그럼 여기도 우리나라처럼 4년인가요?

● 박충권> 5년제입니다.

○ 앵 커> 5년제에요?

● 박충권> 제가 2003년에 입학해서 2007년에 졸업했어요.

○ 앵 커> 03학번이시네요.

● 박충권> 네. 03학번인데, 나이로 따지면 우리나라로 환산하면 저는 05학번입니다.

○ 앵 커> 아, 그래요?

● 박충권> 네. 북한은 2년 먼저 대학교 가거든요.

○ 앵 커> 아, 그래요? 그러면 우리나라가 몇 살에 학교를 가죠?

● 박충권> 우리나라는 20살에 가잖아요?

○ 앵 커> 그렇죠. 너무 오래전에 대학을 가서 기억이 안 났어요.

● 박충권> 북한은 17살 내지는 18살에 갑니다.

○ 앵 커> 일찍 가네요?

● 박충권> 네. 초등학교가 2년이 짧아요.

○ 앵 커> 아, 그래요? 일찍 가는구나. 6살 때 학교를 가나요? 그러면?

● 박충권> 그러니까, 초등학교가 우리나라는 6학년까지 있잖아요? 거기는 4학년까지 있어요.

○ 앵 커> 이 학교 가기 전에도 의원님 굉장히 영재였다고 제가 의원님에 대해서 좀 공부를 하면서 그리고 이제 이 학교 자체도 말씀하신 것처럼 보면 굉장히 이제 뭐 어쨌든, 북한 사회에서도 굉장히 엘리트들만 가는 이 학교인데 이렇게 탄탄대로가 보장된 곳에서 왜 굳이 탈북을 결심했는지?

● 박충권> 이거 참 질문 많이 받았었는데, 초반에 여의도 올 때 많이 받았었고요. 영입 인재 시절에.

○ 앵 커> 저희도 그렇지만 사실은, 북한에서도 의원님이 탈북하셨단 소리를 들으면 ‘왜 그랬지? 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양쪽에서 다.

● 박충권> 그랬을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졸업한 국방대 졸업생이 아직 대한민국에 온 사람이 제가 유일한 거로 알고 있고요. 아주 과거에 졸업하신 분이 한 분 계셨던 거로 알고 있는데, 아주 과거에. 그런 분이 하나 있었고 어쨌든, 제가 거의 유일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고, 그만큼 이제 어떻게 보면 북한 체제에 정말 이너서클에 있는 수호자들을 양성해내는 대학교고, 그쪽에서 그나마 나름 북한이라는 그 체제 안에서의 관점상으로 본다면 나름 미래도 보장이 되어있는, 그런 어떻게 보면 부류라고 봐야 되겠죠? 계층이라고 봐야 되나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상 제가 탈북할 이유는 없기는 하죠. 그런데 탈북을 한 이유가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끼게 된 겁니다. 그 체제 본질을 알게 된 거에요. 몰랐을 때에는 몰랐는데 알고 북한 체제의 본질을 딱 깨닫게 되니까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던 세계관이 완전히 180도 뒤집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나름 그래도 그 안에서는 말씀드렸다시피 미래가 그래도 탄탄대로였던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렇게 탄탄대로였던 미래가 완전히 암담한 미래로 바뀌는 거에요. 그리고 꿈도 희망도 다 잃었습니다. 깨달은 시점에는 정말 암담함을 느꼈고 너무 두렵고 너무 막막해서 거의 한 이틀 정도 밤잠을 못 잤어요. 심장이 너무 많이 뛰어가지고.

○ 앵 커> 그 두려움을 딱 느끼게 된 계기가 딱 있으신 거에요?

● 박충권> 체제 본질을 깨달았을 때죠. 그러니까, 제가 선이고 정의라고 믿었던 그 체제가 세상에 둘도 없는 악이다 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사실,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찾아서 목숨걸고 탈북했다 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더 말씀을 드릴까요? 체제를 어떻게 알았는가 이런 거?

○ 앵 커> 굉장히 계획을 탄탄하게 세워서 오셨다 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머리가 좋으시니까 계획도 되게 탄탄하게 세워서 오시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오셔서 한국에 오셔서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많이 다르셨어요? 아니면, 어느 정도 상상했던 모습이다?

● 박충권> 많이 달랐습니다. 진짜 많이 달랐고요. 제가 2009년 4월 13일 날 그러니까, 10일 날 두만강 새벽에 건너가지고 3일 만에 인천항으로 들어왔는데, 딱 들어와서 대한민국 사회를 보는 순간, 무슨 느낌이었냐면 그 흑백 TV를 보다가 터치패드 쓰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 앵 커> 그 정도로?

● 박충권> 그 정도 차이였어요. 제가 북한에서 상상했던 것의 거의 한 서너 배 정도 차이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발전해 있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아무래도 탈북을 결심하고 계획을 세웠을 거 아닙니까? 근데 사실, 계획을 잘 안 세워놓는 사람인데 목숨 걸고 가야 되고 정말 미지의 땅으로 가야 되다 보니까 계획이란 걸 세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은 어떤 사회인지 얼마나 발전해 있는지 그런 걸 토대로 내가 갔을 때 무엇을 해야 될까 이런 것들 생각하다 보니까, 그래도 한국에 대한 정보를 좀 이렇게, 저렇게 수집을 해서 봤단 말이죠? 발전해 있구나 라고 생각은 했는데도, 와보니까 너무 많이 발전해 있는 거에요. 딱 제가 예상했던 거에 서너 배?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제 탈북해서 막상 한국 사회를 경험 해보니까 제가 이제 공산권에서 사회주의국가에서 배운 바로는 자본주의는 민심이 굉장히 각박하다. 이렇게 배웠는데, 와보니까 이게 아닌 거에요. 너무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 거에요. 그 정말 공동체를 돌보는 그 따뜻한 손길들과 그런 마음들이 느껴져서 ‘야, 이거 참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다 또 다른 의미로. 최근에는 그때 제가 대한민국 왔을 때 느꼈던 우리 공동체의 따뜻함이 좀 많이 사라져가고 좀 많이 차가워지는 것 같아서 좀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안타깝습니다.

○ 앵 커> 왜 그런 따뜻함이 좀 사라지고 있다고 느끼세요?

● 박충권> 우리 정치가 너무 양극화되고 이제 진영화 되면서 이제 국민들이 반으로 쪼개지고 서로 간의 이제 대립을 하다 보니까, 이런 현상들이 좀 더 이게 부각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좀 우리 사회가 많이 발전하고 우리 경제가 많이 발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안정화돼 가면서 우리 청년들이 좀 더 이렇게 뭐랄까. 미래를 준비하기에 좀 더 각박해지면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가 싶은데요. 그래서 뭐 그런 것들이 제가 또 정치를 결심한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합니다.

○ 앵 커> 의원님은 적응을 잘하셔서 국회의원도 지금 되신 거잖아요? 사실은,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누구도 되기 쉬운 자리는 아니거든요.

● 박충권> 그렇죠.

○ 앵 커> 근데 국회의원이 되셨는데 이 정치를 되기도 어렵지만 되고자 라고 이렇게 결심하기도 사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제 굉장히 공적인 영역의 직업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기도 어렵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굉장히 공적 마인드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근데 내가 정치를 한번 해봐야겠다 라고 결심하시게 된 딱 계기, 이유 이런 거 뭐가 있을까요?

● 박충권> 제가 사실, 평소에 전혀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치를 한다? 예를 들어서, 뭐 글쎄요. 뭐 정부 기관에서 어떤 공무원으로 일하는 것은 뭐 상상해 볼 수도 있긴 하겠지만, 정치인이 된다 특히나, 국회의원이 된다 라는 것은 전혀 생각을 못 하고 살았어요.

○ 앵 커> 기업에서 연구원 하셨더라고요?

● 박충권> 예. 제 커리어가 그렇잖아요. 정치 준비한 커리어가 아니잖아요.

○ 앵 커> 그러니까요. 그래서 저는 무슨 활동가셨나? 해서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기업에서 연구원 하셨는데 왜 정치? 이렇게.

● 박충권> 그렇죠. 다만, 제가 이제 살아온 배경이 있고 탈북한 이유도 있고 하다 보니까, 항상 어떤 남북관계 문제라던가, 통일문제라던가 그리고 우리 사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어떤 정치 현안들에 대한 관심은 좀 있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여러 가지 청년들 모임을 하면서 이제 어떤 정치 현안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뭐 공부나 이렇게 연구라던가 이런 것들은 좀 해왔었고. 특히나, 남북관계 통일문제에 대해서 좀 많이 해왔었는데 하여튼, 뭐 정치를 입문한 계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정치를 하겠다.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전혀 정말 뜻밖의 국민의힘에서 인재영입 제안이 와서 그때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이제 결국 정치를 한번 해보자 라고 결심을 했는데 그 이유가 제가 이제 맨몸으로 대한민국에 오지 않았습니까? 맨몸으로 왔는데 이렇게 맨몸으로 온 정말 아무것도 아닌 저를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굉장히 따뜻하게 맞아주고 저를 품어주고 또 우리 대한민국의 공동체를 사랑하는 우리 따뜻한 애국 시민들께서 저를 굉장히 많이 도와주시고 이렇게 제가 성장하기까지 이끌어주고 기다려주셨단 말이죠? 그런 부분에 대한 제가 우리 사회, 우리 공동체에 보답해야 된다는 어떤 부채의식은 항상 마음속에 갖고 살았던 것 같아요. 물론, 이제 삶에 파묻혀서 여러 가지 삶의 현실적인 문제도 고민할때도 가끔 있을 때도 있긴 했지만, 그리고 이제 우리 한편으로 또 한 2017년 정도부터는 우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라는 위기의식도 느껴왔었고, 또 최근에는,

○ 앵 커> 어떤 점에서 위기의식을 느꼈어요?

● 박충권> 이게 왜냐면, 사법부 장악이라던가, 사법부 무력화라던가, 뭐 방송장악이라던가 예를 들어서, 삼권분립 체제에서 정말 무소용한 공수처 같은 것들도 막 야당이 단독으로 개설해서 만들고 삼권분립 체제가 분명하게 있는데 이것을 시스템을 좀 더 단점들을 보완할 생각을 하는 것이지, 이걸 무너뜨리고 뭔가 다른 걸 만들고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려고 한다? 그래 놓고 공수처가 만들어 놓고서도 최근에 공수처가 조사하고 있는 채 해병 특검 결과에 대해서도 못 믿겠다 라고 특검을 발의하고 이런 부분들. 이런 것들이 뭐 여러 가지로 많이 있었고 우리 기업체들, 우리 대한민국을 이렇게 발전하게 하고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지금의 국제적 위상을 있게 한 우리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점점 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부분, 그리고 우리 많은 이공계 출신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들, 특히나 AI 관련 인재들 같은 경우에는 40%가 외국으로 유출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부분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보니까, 내가 한번 해봐야 되겠다 이런 생각으로 한번 도전해봤습니다.

○ 앵 커> 의원님이 네 번째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이세요. 굉장히 상징성 있거든요? 그런 데다가 조금 특이한 게, 공학도 출신이시기도 하고 사실은 또 정치권에서는 탈북민 이전에 청년 정치인에 대한 상징성이 굉장히 큰데 그 상징성도 갖고 계시더라고요.

● 박충권> 그런 셈이죠.

○ 앵 커> 그래서 그런 굉장한 공통 분모의 중요한 상징성을 갖고 계신 분이구나 라는 생각이 오시기 전에 생각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제 우리나라, 지금 한국에서 의원님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도 있지만, 또 의원님을 북한 주민들이 의원님이 국회의원이 되신 걸 보면서도 아 어떤 메시지를 느낄까? 라는 생각도 좀 갖게 되더라고요.

● 박충권> 어떻게 보면 저의 어떤 지금까지의 인생 스토리가 어떻게 보면 인간승리가 아니겠습니까? 북한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다가 다 무너지고 다 포기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이 낯선 땅에 와서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가지고 국회의원으로까지 됐는데, 북한 주민들이 보기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땅. 대한민국이라는 체제를 굉장히 기회의 땅이고 체제라고 생각할 것이고, 또 굉장히 어떻게 보면 북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북한에서는 정말 빽이 있어야 되고 신분이 좋아야 되고 뭔가 이런 것들이 보장이 돼야만 가능한 그런 것이 대한민국에서는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고 한 개인이 노력한다면 이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자수성가할 수 있다는 굉장히 큰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특히나, 저와 같이 공부를 했던 국방대학교, 김정은 국방종합대학교에 동기들이나 선후배들 같은 경우에는 굉장한 충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왜냐하면, 저 친구가 왜 탈북 했을까부터 의문일 것이고, 그리고 탈북을 했는데 저기 가서 본인들은 아무리 지금 북한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을지라도, 저만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나이 또래 사람들이 그렇게 봤을 때 이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 세뇌돼서 북한 체제에 정말 깨닫지 못해서 북한 체제에 어떻게 보면 순종하고 그 체제를 위해서 일하는 국방대 졸업생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 될 것이고, 생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어서 그 체제에 부역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한줄기 큰 희망이 될 거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앵 커> 근데 의원님 소식을 북한에서도 들을 수는 있나요?

● 박충권> 제가 인터뷰도 많이 나오고 방송에도 많이 나가다 보면, 많이 나가지 않을까요? 어떻게 알겠습니까? 대북확성기 방송의 하나에 또 코너로 편성이 될 수도 있고.

○ 앵 커> 그렇겠네요..

[제작]
PD : 김경중, 김수영, 백빈, 김은, 정윤조, 김윤찬
작가 : 배준영
그래픽 : 양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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