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법 "아동성폭력 피해자 檢분석관 면담 영상, 증거 안돼"
입력 2024-04-21 10:15  | 수정 2024-04-21 10:29
대법원 / 사진=연합뉴스

대검찰청 진술분석관이 수사 과정에서 성범죄 피해 아동과 면담한 영상 녹화물을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친모와 계부 등이 미성년자인 피해자를 성적으로 학대한 사건에서 이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2009년생인 피해자는 자신의 친모와 계부, 지인들로부터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수 차례 성폭력과 학대를 당했습니다.

이에 피해자의 친모와 계부, 지인들은 성폭력처벌법과 아동복지법 등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성폭력범죄처벌법에 따라 아동이 피해자인 경우 법원이나 수사기관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기 위해 진술 내용에 관한 의견 조회가 필요합니다.

검사는 대검찰청 진술분석관에게 피해자 진술 신빙성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습니다.

대검 진술분석관은 주로 물증 없이 피해자의 진술만 있는 성범죄 등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역할을 합니다.

진술분석관은 피해자와 면담하면서 그 내용을 녹화했고, 검사는 녹화물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재판의 쟁점은 이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였습니다.

원칙적으로 형사재판에서 사건 관련 진술은 직접 경험한 사람이 법정에 출석해 말한 것만 증거로 쓸 수 있습니다. 이 외에 남에게서 전해 들은 말이나 진술이 담긴 서류는 '전문증거'로 증거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형사소송법은 몇 가지 예외로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합니다.

형사소송법 제312조에 따라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판단할지, 아니면 수사 과정 외의 진술로 보고 313조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할지 여부였습니다.

검사는 진술분석관의 면담 녹화물이 수사 과정 외에서 나왔으므로 313조를 적용해 증거능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검 진술분석관은 수사관이 아니고, 피해자와 면담한 것일 뿐 수사나 조사한 게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1·2심과 대법원은 일관되게 녹화물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면담이 검사의 요청으로 이뤄졌고, 진술분석관은 대검 소속이며 면담 장소도 지방검찰청 조사실이었던 점 등을 고려해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행위로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영상녹화물은 피의자신문조서나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가 아니고, 피고인 또는 피고인이 아닌 자가 작성한 진술서도 아니므로 형사소송법 제312조에 의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작성된 것은 조서·진술서의 형태만 허용하므로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쓸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아동 피해자 진술의 경우 수사기관이 수사기관 소속이 아닌 관련 전문가에게 의견을 조회하거나, 재판에서 의사·심리학자 등 관련 전문가의 의견조회를 받아 신빙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1심과 2심에서 피해자의 계모에게는 징역 8년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명령 40시간과 취업제한 10년을 선고했습니다.

피해자 계부에게는 무죄를 선고하고, 계모의 지인에게는 징역 7년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명령 40시간과 취업제한 10년을 선고했습니다.

또 다른 지인에게는 징역 3년 6개월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명령 40시간, 취업제한 5년을 명령했습니다.

[강혜원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ssugykk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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