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위직 아닌 경찰’의 재산등록 의무, 과도한가? [법원 앞 카페]
입력 2024-03-24 09:00 
영화 '베테랑' 한 장면. 황정민이 분한 서도철 형사. (사진=연합뉴스, CJ엔터테인먼트)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지난 2015년 개봉환 영화 ‘베테랑 기억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당시 1,300만 명이 넘게 극장을 찾은 초대형 흥행작이었죠. 주인공은 배우 황정민 씨가 분한 서도철 형사로 경찰관이었습니다. 소속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2팀으로 나옵니다.

강력팀 소속 형사로 현장을 누비는 서 형사의 계급이 뭔지 기억하시는 분들 계실까요? 바로 ‘경사입니다. 계급장은 무궁화 봉오리 4개입니다. 서 형사처럼 경사 계급은 현장 실무를 주로 뛰는 베테랑 직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사 계급 경찰관들이 헌법재판소를 찾은 일이 있었습니다. 하위직인 자신들이 고위직처럼 재산등록 의무를 져야 하는 게 부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사는 이제 현장 실무직에 불과"

지난 2021년 경찰관 1만 3,000여 명은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공직자윤리법과 같은 법 시행령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문제가 된 법령은 이렇습니다.


공직자윤리법

다음에 해당하는 공직자는 재산을 등록해야 한다.
-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특정 분야의 공무원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특정 분야의 공무원은 다음 사람을 말한다.
- 경찰공무원 중 경정, 경감, 경위, 경사

이와 별도로 총경 계급은 시행령이 아닌 공직자윤리법에서 재산등록 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치안감 이상 고위직은 재산 ‘공개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궁화 봉오리 4개로 된 경사 계급장 (사진=연합뉴스)

2022년 경찰 통계 기준으로 경찰 총인원 127,595명 중 경사 계급은 21,751명으로 약 17%를 차지합니다. 경사를 포함한 재산등록·공개 대상자를 모두 합치면 91,243명으로 전체 경찰의 72%를 차지하죠. 헌법소원을 낸 경찰관들은 전체 경찰관의 3분의 2 이상이 재산등록 대상이라는 점, 보통 ‘간부로 불리는 경위 이상이 아닌 실무직인 경사 계급까지 재산등록 대상으로 규정한 건 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일반 공무원은 4급 이상부터 재산등록 의무를 가지는데 7급 공무원에 준하는 경사 계급에 의무를 준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고, 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으로 경찰관의 비위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과한 의무 부여로 사유재산에 대한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당한다는 점도 위헌 근거로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사 계급의 위상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헌법소원을 낸 경찰관 측 대리인은 헌법소원 청구 당시에 경사 계급에 재산등록 의무를 지우는 법이 만들어진 1990년대에는 경사에게도 1차적인 판단권이 있었지만 이제는 경사가 일반 실무자급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위직이라도 경찰 권한 여전히 크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헌재 판단은 어땠을까요? 지난달 28일 헌재는 약 3년 만에 판단을 내놨습니다. 결론은 재판관 전원일치 기각.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헌재는 하위직 경찰관이라도 비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봤습니다.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이 등록의무자의 범위를 비교적 하위직 공무원인 경사 계급까지 규정한 것은 하위직 경찰공무원이라고 하더라도 대민접촉이 많은 업무를 담당하고 직접 공권력을 집행할 권한이 있어 상대적으로 비리 개연성이 크므로, 재산상태를 감시함으로써 부정부패를 사전에 예방하고 그 결과로 경찰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여 경찰공무원의 책임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인 바, 그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 헌재 결정

나아가 헌재는 하위직이라고 하더라도 경찰관의 권한이 여전히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영란법 도입으로는 경찰관의 비위 가능성을 차단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도 봤습니다.

경찰관의 직무범위는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 범죄피해자 보호, 경비, 주요 인사 경호 및 대간첩․대테러 작전 수행,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교통단속과 교통 위해의 방지, 외국 정부기관 및 국제기구와의 국제협력, 그 밖에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로 광범위하여 경찰관의 권한이 축소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 헌재 결정

실제 경찰관 비위 사건 중에는 경사 계급이 연루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유흥업소에서 생기는 불법과 관련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한 예로 지난 2019년 당시 강남경찰서 소속 김 모 경사는 서울 강남 클럽의 미성년자 출입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브로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가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바 있습니다.

지난 2021년 나온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 불법 업소 단속 정보 유출로 징계를 받은 경찰관이 17명이라는 집계가 나온 적 있습니다. 17명 중 가장 높은 계급은 경감으로 2명이었고, 경위가 11명이었습니다. 나머지 4명은 경사 계급이었습니다. 경사 계급도 윗 계급 간부들 못지 않은 권한이 있으므로 재산 등록이라는 감시 장치가 충분히 필요하다고 헌재는 본 겁니다.

마지막으로 헌재는 고위직처럼 재산을 ‘공개하는 게 아니라 ‘등록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사생활 비밀 침해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재산등록 의무, 오히려 확대 가능성도

하위직 경찰관들이 재산 등록 제도를 문제삼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0년에도 제주 지역 경찰관이 이번과 같은 헌법소원을 냈지만 당시에도 헌재는 이번과 같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하위직 경찰관들과 헌재의 판단 차이는 경찰 조직 내부와 외부 간 인식에 괴리가 있다는 걸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21년 헌법소원이 제기된 뒤 김창룡 당시 경찰청장은 경찰 내부에서 재산 등록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직접 경찰 내부 게시판에 "헌재 심사 과정에 맞춰 대응하겠다"고 적기도 했습니다.

반면, 경찰 밖에서는 오히려 경찰의 재산등록 의무를 더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습니다. 앞서 한국토지주택공사 부동산 투기 사태가 벌어진 이후 국회에서는 재산 등록 의무를 '모든 공무원'에게 확대하는 법안이 발의됐고, 현재 상임위 심사를 거치고 있습니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면 재산등록 의무는 현행 '경사 이상'을 포함해 경장과 순경까지 확대됩니다.

마침 최근 일부 경찰관의 음주운전이나 폭행사건 등이 잇따르면서 윤희근 경찰청장이 직접 엄중 조치를 선언하는 일이 벌어지는 등 여론도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헌재 판단에 힘이 더 실리는 분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