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갱단 천지' 아이티 주민들, 칼 들었다…자체 방어
입력 2024-03-19 12:54  | 수정 2024-03-19 13:02
마체테(날이 넓은 큰 칼)를 들고 있는 아이티 시위자(자료사진) / 사진=연합뉴스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서 갱단이 수도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며 극심한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주민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자체 방어에 나서고 있다고 미국 CNN 방송이 어제(18일, 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현재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80%가 갱단에 장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도에선 매일 경찰과 갱단 간에 전투가 벌어지고 주민들이 두려움에 외출을 자제하면서 시내 도로는 텅 빈 상태입니다.

갱단은 이달 초부터 공항·경찰서·정부 청사·교도소 등을 잇따라 공격하고 있고, 도시 전역의 식량·연료·물 공급을 막고 있습니다.


그나마 현지 경찰이 수도 전역에서 한 블록씩 통제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기업과 학교들은 연이어 문을 닫았습니다.

주민들은 집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해 자가격리를 하고, 공포·불신·분노에 휩싸여 있다고 CNN은 전했습니다.

이달 초 일터에서 돌아오다 갱단의 총격을 받아 다리를 다친 47세 여성은 병원에서 한 인터뷰에서 "아들들이 계속되는 폭력에 겁이 나 병원에 찾아오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여덟살, 열세살 난 아이들이 집에 남아 있는데 누가 밥이라도 챙겨주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

갱단의 요구 사항이었던 아리엘 앙리 총리가 지난주 사임하고,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 과도위원회 구성을 놓고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해결책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고 CNN은 지적했습니다.

치안 부재 속에서 포르토프랭스의 일부 구역 주민들은 '브와 케일'(bwa kale)로 알려진 자경단 운동으로 갱단에 맞서고 있습니다.

자경단원들은 마체테(날이 넓은 큰 칼)로 무장하고 지역 경찰과 공조하면서 갱단과 싸우거나 이들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포르토프랭스 카나프 베르 구역은 자경단 덕분에 그나마 평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경단에 속한 한 대원은 CNN 인터뷰에서 "갱단의 반복적인 공격 시도를 격퇴했다"면서 "마체테와 맨주먹으로 무장한 채 갱단을 막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경찰은 "자경단을 잘 알고 있으며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면서 "자경단이 경찰서를 갱단의 공격에서 구하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때론 자경단이 갱단 단원들을 붙잡아 잔인하게 살해하고 불태우는 보복 사건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갱단 단원이나 일반 범죄인로 의심되는 수백 명이 자경단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격화하는 아이티 반정부 시위 2024.2.9 / 사진=연합뉴스

한편 갱단의 공격을 피해 집을 떠난 주민들이 머물고 있는 수용소 상황도 한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주민들은 비좁고 위생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공립학교 등의 수용소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생활하고 있으며, 토착 주민들과도 충돌을 빚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토착 주민들은 대규모 외부인 유입으로 자신의 지역이 갱단의 공격 목표가 될 것을 우려해 이주민들을 꺼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이주기구(IOM)는 "아이티에서 불신 분위기가 심화해 전통적인 사회안전망이 파괴되면서 사람들이 오갈 곳이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박혜민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floshml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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