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Book『패턴 시커』 & 『영화의 이론』
입력 2024-03-18 11:12 
사이먼 배런코언 지음 / 강병철 옮김 / 디플롯 펴냄
패턴 탐구에 뛰어난 자폐인은 발명왕이 많았다『패턴 시커』
전설의 영화이론서 국내 발간『영화의 이론』

앤디 워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자폐적 성향을 가졌음에도 뛰어난 체계화 능력을 통해 높은 성과를 이뤄냈다. 『패턴 시커』는 뇌 유형, 진화, 유전자와 성호르몬, 발명에 관한 경쟁 이론 등 자폐와 발명 사이에 놓인 방대한 주제를 다룬다.
패턴 탐구에 뛰어난 자폐인은 발명왕이 많았다
『패턴 시커』
알은 4살까지 말을 못했다. 입이 트이고 나서도 다른 아이와 달랐다. 왜? 왜? 왜?” 보는 것마다 집요하게 물었고, 토머스 그레이의 ‘시골 묘지에서 읊은 만가를 쉬지 않고 낭송했다. 교사가 두 손을 들고 포기하자 엄마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집과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며 독학을 하게 된 알은 늘 자신만의 패턴으로 세상을 이해했다. 무언가를 배우면 실험을 해야 했고, 도서관의 책도 맨 아래 서가부터 위쪽으로 한 권도 빠짐없이 읽어야 했다. 12살에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읽고 물리학을 독학한 알은 15살에는 모스 부호에 완전히 빠졌다.
직감적으로 패턴을 파악하는 능력을 타고난 알은 16살에 집을 떠나 전화 교환원으로 일하며 돈을 벌었다. 그는 이 해에 첫 발명품을 내놓았다. 무인 전신국 사이에서 모스 부호로 신호를 전송하는 자동 중계기라는 장치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는 끊임없이 발명을 계속했다. 놀랍게도 자폐인들은 많은 경우 뛰어난 패턴 탐구자인 경우가 많으며, 이 재능은 발명과 연관성이 있다.
케임브리지대 발달정신병리학 교수 사이먼 배런코언은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자폐적 특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자녀 또한 자폐인 비율이 더 높았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예를 들어 에디슨은 ‘만일-그리고-그렇다면 패턴으로 1만 번씩 검토하는 연구와 실험을 통해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며 수많은 발명품을 쏟아냈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또한 이 패턴을 반복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힘을 찾아냈다.

저자 배런코언은 이 책을 통해 비언어적 시각 지능 검사에서 자폐인은 비자폐인보다 40% 더 빨리 패턴을 감지했다는 로랑 모트롱의 연구와 자폐인이 과학 기술 공학 수학을 공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점을 밝힌 2013년 실리콘밸리 연구 결과도 소개한다.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낡은 세계관으로, 신경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들을 분류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인간의 다채로운 인지능력을 옹호하는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며 자폐인을 옹호한다. 모든 사람은 천재다. 하지만 나무에 오르는 능력을 기준으로 물고기를 평가한다면, 그 물고기는 평생 스스로 멍청하다고 여기며 살아갈 것이다.”
전설의 영화이론서 한국에도 나왔다
『영화의 이론』
영화는 물리적 실재를 기록하고 드러낼 때 가장 영화다워진다.” 영화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 전설의 영화 이론서가 한국에 상륙했다. 영화이론가이자 철학자인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의 기념비적 저서가 한국에 출간된 것.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지음 / 김태환·이경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펴냄
유대계 독일인이던 크라카우어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뒤 세 권의 주저를 집필했다. 그는 『칼리가리에서 히틀러로』와 『영화의 이론』, 그리고 유작인 『역사: 끝에서 두 번째 세계』를 남겼다. 특히 이 책은 영화 비평과 이론의 지평을 180도 바꾼 기념비적 저서로 평가받는다.
크라카우어는 영화 매체 고유의 특성을 탐구하는데 그가 보기에 영화의 본질은 가시적인, 혹은 잠재적으로 가시적인 물리적 현실을 기록하고 드러낸다는 점에 있었다. 크라카우어는 300여 편에 달하는 영화들을 사례로 제시하며 영화의 세부 요소들을 고찰하면서 자신의 테제를 구체적으로 입증해 보인다.
한때 크라카우어의 이론은 지나간 과거의 것으로 치부되거나 ‘순진한 리얼리즘 이론이라는 식의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영화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생리학적 접근 방식과 같이 선구적인 사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영화 연구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읽히고 있고,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는 책이다.
국내에서는 다소 늦게 소개된 감이 있다. 이번 책의 출간을 계기로 더욱이 바이마르 시대에 저술한 초기작들도 국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크라카우어에 대한 보다 활발한 독서와 입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글 김슬기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2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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