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Book] 신간 소개 『볼트와 너트』 & 『나의 미국 인문 기행』
입력 2024-02-16 14:52 
『볼트와 너트』 로마 아그라왈 지음 / 우아영 옮김 / 어크로스 펴냄
매혹적인 건축물 이야기를 들려준 『빌트』의 저자인 구조공학자 로마 아그라왈의 신작이 나왔다. 다리, 터널, 기차역, 마천루 등을 설계하고 있는 저자는 자신을 평생 매료시켜 온 주제를 마침내 책으로 써냈다.
못과 바퀴…가장 단순한 도구가 세상을 지배한다
『볼트와 너트』
손가락보다 작은 못 속에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숨어 있다. 인류는 약 8,000년 전 석기시대부터 금속을 캐내기 시작했고 구리와 주석을 혼합한 청동을 통해 강한 재료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가장 오래된 청동 못은 기원전 3,400년 전의 것으로 이집트에서 발견됐다. 이를 통해 배와 전차를 조립했다. 못은 원래 나무 조각을 잇는 데 쓰였다. 인도산 철을 쓰는 로마의 못은 품질이 좋고 크기가 균일하기로 유명했다. 숙련된 금속공들은 철을 1,300도 이상을 달궈 눈부신 백색으로 빛날 때 망치로 두드려 머리를 만들었다. 망치에 정확한 힘을 실어 정확한 방향으로 내리쳐야 하는 어렵고 복잡한 노동이다.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유럽에서 못 제조 기술은 수 세기 동안 귀한 기술로 취급됐다. 산업화 이전 영국은 목재 주택이 일반적이던 북아메리카 등의 식민지로 못 수출을 금지하기도 했고, 이 지역에선 이사할 때 살던 집에 불을 질러 잿더미 속에서 못을 수거할 정도였다. 17세기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방화를 막기 위해 집을 살 때는 못의 개수를 계산해 지급하라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미국 건국 주역인 토마스 제퍼슨은 대통령이 되기 전 못 공장을 차렸다. 400명이 넘는 노예들은 하루에 1만 개의 못을 만들었다.
나중에 나사가 등장해 못이 더 큰 힘을 지탱할 수 있게 됐지만, 만들기는 훨씬 더 어려웠다. 그 뒤 얇은 금속판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못과 나사는 리벳으로 대체됐다. 냄비를 만들던 리벳이 더 크고 강해지면서 금속판, 선박, 교량을 이어 붙일 수 있게 됐다. 기술자들은 리벳과 나사를 합쳐 더 쉽게 쓸 수 있는 볼트를 발명했다. 건물, 공장, 트랙터, 자동차, 세탁기 등 곰속 조각을 이어 붙여야 하는 모든 물건에는 못, 나가, 리벳, 볼트가 쓰인다. 저자가 구조 엔지니어로 6년간 일한 런던의 최고층 빌딩인 더 샤드(The Shard)를 견고하게 고정한 것도 바로 볼트다. 건설에 쓰이는 지름 20㎜ 볼트 하나는 약 11톤의 인장 하중을 견딘다. 런던 이층버스의 무게다.
저자에 따르면 거대하고 복잡한 현대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작고 단순한 7가지 발명품이 있다. 못, 바퀴, 스프링, 자석, 렌즈, 끈, 펌프다. 이것들은 다양한 반복과 형태를 거쳤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경이로운 발명품이기도 하다. 팬데믹 시기에 집에 갇혀 물건을 분해해본 저자는 이 7가지가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기 이유식을 만드는 믹서기는 기어와 톱니바퀴로 돌아갔다. 볼펜은 스프링과 나사, 회전하는 구가 중심이었다. 딸을 낳을 때 체외수정을 도와준 건 렌즈였다. 전화와 인터넷에는 자석이 필수품이었다. 고층 건물, 공장, 자동차, 인공위성 등 더 복잡한 물건의 기초도 언제나 이 7가지였다.
이 책은 엔지니어링이 과학과 디자인과 역사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책을 덮고 나면 묵묵히 실험실과 컴퓨터 앞에서 씨름하는 이름 없는 엔지니어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작은 사물들에 얽힌 이야기다. 영국왕립학회 과학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른 책이기도 하다.
인문학자가 기록한 제국의 속살
『나의 미국 인문 기행』
『나의 미국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 최재혁 옮김 / 반비 펴냄
이제 내 나이를 생각하면 앞으로 미국을 여행할 기회는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먼 옛날 기억의 단편도 되살아났다. 좋은 기억만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라는 인간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는, 그런 절실한 기억이다.”
이런 마음을 품고 떠난 미국 여행은 정말로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2023년 12월18일, 디아스포라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세상을 떠나자,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했다. 그리고 이 ‘나의 인문 기행 시리즈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책은 우리 시대의 경계인, 서경식의 유작이 됐다.
이 책에서 그가 전작에서 다뤄온 주제들에 더해, 자유와 환대의 기치를 내건 미국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세계가 마주한 암울한 현재에 대한 사유가 특히 빛난다. 서경식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재난과 전쟁 범죄, 국가 폭력의 끔찍한 현실 속에서 도덕의 거처”를 묻는다. 책에서 저자는 세 개의 시간대를 오가며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극심해지며, 전쟁 도발이 먹구름처럼” 드리운 세계에 대한 깊은 염려를 표한다. 동시에 에드워드 호퍼, 조지 벨로스, 디에고 리베라, 벤 샨, 피카소, 로라 포이트러스 등 미국에 족적을 남긴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도 탐구한다.
자신이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예술 작품을 떠올리며 ‘선한 아메리카, 더 나아가 ‘선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사유의 단상을 전한다.
[ 김슬기 매일경제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7호(24.2.13·2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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