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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성은 왜 트레이드 후보가 됐을까?…시계추를 1년 전으로 돌려보니 [김한준의 재밌는 야구]
입력 2024-01-07 23:31  | 수정 2024-01-07 23:40
고우석(26)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합류하면서 샌디에이고는 명실상부 '한국인 팀'으로 바뀌었습니다. MLB(메이저리그) 최고의 수비력을 인정받은 '어썸킴' 김하성(29)과 함께 투타 모두에서 한국인 빅리거의 활약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샌디에이고와 계약한 고우석.
사진 = 샌디에이고 SNS.

문제는 김하성과 고우석의 동행에 남은 시간이 짧아보인다는 점입니다. 현재 샌디에이고는 김하성을 트레이드 블록에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시즌 공격에서 한 단계 스텝업에 성공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현지 최고 스타 중 한명이 된 김하성을 '갑자기' 다른 팀으로 보내려 하는 겁니다.

사실 현재 샌디에이고 입장에서 김하성의 트레이드는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깝습니다. 샌디에이고는 1년 전 무모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벌인 '선수 사재기'와 기존 선수들의 연장계약에 몰두했는데, 그때의 청구서가 날아왔기 때문입니다.

SD와 11년 계약을 맺은 잰더 보가츠.
사진 = 샌디에이고 SNS.
잰더 보가츠의 시세보다 높은 파격 계약…2루로 밀린 김하성


지난 2022 12월 8일 모두를 의심케 하는 계약이 발표됐습니다. 샌디에이고가 FA 유격수 잰더 보가츠(31)를 11년 2억 8,000만 달러에 영입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당시 샌디에이고는 유격수 포지션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슈퍼스타이자 팀의 코어였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25)가 불미스러운 일로 2022년 결장한 사이 김하성이 유격수 주전 자리를 굳혔습니다.

2021년까진 '유격수 알바'를 자주 하던 제이크 크로넨워스(29)도 김하성이 유격수로 완전히 안착하면서 2루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러니까 보가츠 영입 당시 샌디에이고는 3루의 매니 마차도(31), 유격수 김하성, 2루수 제이크 크로넨워스 등 1루수를 제외한 내야 주전이 완벽하게 짜여져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샌디에이고가 유격수인, 그것도 유격수 수비에서 의문 부호가 있던 보가츠를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영입한 겁니다. 당시 보가츠는 6~7년 정도에 1억 6,000만 달러에서 2억 2,000만 달러 정도의 계약이 예상됐었는데, 11년 2억 8,000만 달러라는 시세보다 많이 높은 금액으로 데려왔습니다.

이러다 보니 시장에선 '역시 매드맨'이라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샌디에이고의 단장 AJ 프렐러(46)는 예상할 수 없는 트레이드나 파격적인 계약을 자주 벌여 '매드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매드맨이니 가능한 계약이라는 평가였습니다.

SD와 역시 11년 계약을 맺은 매니 마차도.
사진 = 샌디에이고 SNS.
매드맨의 폭풍 질주…마차도의 연장 계약에 이어 크로넨워스까지도 연장


그럼에도 보가츠 계약은 '오버페이'라는 평가 속에서도 당시 팀의 주전 3루수 매니 마차도의 잔여 계약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마차도는 2022시즌 후 옵트아웃(FA 신청)할 수 있었는데, 마차도가 이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주전 3루수가 이탈하는 만큼, 보가츠를 '마차도의 장기적 대안'으로 영입했다는 해석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렐러 단장은 매드맨 답게 여기서 또 하나 놀라운 계약을 체결합니다. 지난해 2월 마차도와 11년 3억 5,000만 달러라는 연장계약을 맺은 겁니다. 마차도가 40세가 넘을 때까지 유효한 사실상의 '종신계약'을 체결한 겁니다.

그러니까 마차도와 보가츠에게 내야의 포지션 2개를 무조건 배당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린 겁니다.

SD와 7년 계약을 맺은 제이크 크로넨워스.
사진 = 샌디에이고 SNS.
매드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김하성을 제외하면 사실상 유일하게 남아 있던 내야 요원 크로넨워스와도 지난해 4월 7년 8,000만 달러에 연장계약에 성공한 겁니다. 마차도와 보가츠처럼 천문학적인 규모는 아니었지만, 분명 적지는 않은 액수였습니다. 특히 크로넨워스가 보가츠의 영입으로 2루에서 1루로 자리를 옮긴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계약이었습니다.

야수 4명 연봉만 10억 5천만 달러인데 '긴축 정책'까지 시작


그리고 내야수 3명에 대한 연이은 계약은 현재의 김하성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샌디에이고가 컨트롤할 수 있는 기간이 2년이 남아 있던 지난해까진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김하성이 올 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게 되는 만큼, 이제 샌디에이고는 내야진에 대한 정리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김하성은 지난 시즌 맹활약으로 FA가 되면 총액 1억 달러 이상의 계약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미 내야수 3명에게만 7억 1,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쓴 샌디에이고가 김하성에게 1억 달러 이상을 다시 베팅할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원래 유격수였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의 계약(14년 3억 4,000만 달러)까지 포함하면 샌디에이고가 야수의 연봉으로 보장한 금액은 10억 5,000만 달러에 이릅니다. 우리 돈으로 1조 3,8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입니다. 김하성과는 이번 시즌 후 현실적으로 결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리그 정상급 2루수로 뛰어오른 김하성.
사진 = AFP 연합뉴스
샌디에이고가 작년과 기조가 달라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해까지의 샌디에이고는 사치세를 납부하는 일이 있더라도 좋은 선수들을 끌어모으는 '윈나우' 체제였습니다. 실제로 지난 시즌 샌디에이고는 MLB 구단 중 3번째로 많은 연봉을 기록하면서 사치세 기준(페이롤 2억 3,300만 달러)을 넘기며 사치세를 납부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피터 세이들러 구단주가 향년 63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구단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세이들러가 떠나자 구단은 바로 '긴축 정책'에 들어갔습니다. 올 시즌 후 FA가 되는 후안 소토(25)를 트레이드해 버린 게 단적인 예입니다.

지난 시즌 후 FA가 된 팀의 에이스 블레이크 스넬(31)과 철벽 마무리 조시 헤이더(29)를 붙잡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은 큰 돈을 쓰지 않겠다는 기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2루수로 준수했었던 제이크 크로넨워스.
사진 = 샌디에이고 SNS.
영양가 없는 '1루수' 크로넨워스, 2루 자리를 내줘야 하는 SD


여기에 크로넨워스가 지난해 1루수 전향 후 성적이 급전직하한 것도 문제입니다. 공수 모두에서 준수한 2루수였던 크로넨워스는 1루로 자리를 옮긴 뒤 말 그대로 리그 최악 수준의 1루수로 가치가 급락했습니다.

지난 2022년 2루수로 타율 0.239, 17홈런, OPS(출루율+장타율) 0.722, wRC+(조정 득점 생산력) 110을 기록했던 크로넨워스는 작년에는 타율 0.229, 10홈런, OPS 0.689, wRC+ 92로 뒷걸음질 했습니다.

다만 크로넨워스의 타격 실력 자체가 줄었다고 보긴 애매했습니다. 2루수로 출전했을 때는 타율 0.288, OPS 0.812, wRC+ 126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1루수로 출전하면서 타격까지 영향을 준 모습이었습니다.

2루에는 김하성이 있는 샌디에이고로선 이제 결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버렸습니다. 올해도 김하성을 그대로 2루에 기용하면서 1루수 크로넨워스에 대한 기대를 해 보느냐, 아니면 크로넨워스를 살리기 위해 크로넨워스를 2루수로 다시 이동시키느냐 입니다.

올해가 지나면 팀을 떠날 가능성이 큰 김하성과 36세까지 팀과 보장계약이 돼 있는 크로넨워스 중 누구를 선택하느냐 인데, 이 질문에서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보가츠의 영입 순간부터 김하성의 트레이드는 필연이었을 수도 있다.
사진 = 샌디에이고 SNS.
'어썸킴'에게 중요한 건 팀이 아닌 유격수 포지션


어찌 보면 김하성의 트레이드는 예정돼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보가츠와 마차도에 이어 크로넨워스까지 연장계약을 한 순간, 샌디에이고의 장기 내야 구상에는 김하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건 김하성의 트레이드 여부가 아닐 것 같습니다. 트레이드는 사실상 이뤄질 가능성이 큰 만큼, 김하성이 어느 팀으로 가는지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김하성은 리그 정상급 수비력을 입증했음에도 샌디에이고의 특별한 사정 때문에 2루수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포지션 전향 후에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하지만 FA 시장에서 가장 인기 많은 야수의 포지션은 당연히 유격수입니다. 김하성이 올해에도 2루수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겠지만, 같은 성적이라면 2루수보다는 유격수가 훨씬 낫습니다. 시장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2루수 김하성이 아닌, 유격수 김하성으로 풀타임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주전 유격수가 필요한 팀으로 트레이드되는 게 김하성 입장에선 훨씬 좋은 선택지입니다. 김하성을 응원하는 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수비력을 갖춘 야수에게만 주어지는 빅리그 30개의 주전 유격수 자리에 코리안 빅리거가 한 자리 차지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김하성은 올 시즌 어느 팀의 유니폼을 입을까요. 남은 오프시즌, 한국인 MLB 팬들에겐 최고의 관전 포인트일 것 같습니다.
샌디에이고와의 이별이 다가온 듯한 김하성.
사진 = 샌디에이고 SNS.
◆ 김한준 기자는?
=> MBN 전 스포츠팀장
2005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스포츠부 등에서 일했습니다. 야구는 유일한 취미와 특기입니다.


[ 김한준 기자 / beremoth@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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