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Book] 신간 소개 『책 사냥꾼의 도서관』 &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입력 2024-01-04 17:16 
앤드루 랭·오스틴 돕슨 지음 / 지여울 옮김 / 글항아리 펴냄
스코틀랜드 시인·소설가·문학평론가 앤드루 랭과 영국 시인이자 전기 작가 헨리 오스틴 돕슨이 쓴 이 책은 ‘책 도둑이 활개를 치던 아름다운 시절을 향해 시간여행을 떠난다.”
19세기 헌책방엔 책을 낚던 사냥꾼이 있었다
『책 사냥꾼의 도서관』
한때 책이 융성하던 시대가 있었다. 왕족과 성직자마저 희귀한 책을 탐내서 훔치던 시대다. 19세기 후반에는 특히 먼지투성이 헌책방을 헤집고 다니는 이들이 있었다. 필경과 인쇄, 책의 장정은 파리에서 고도로 발달했다. 단테는 파리에서 빛을 발한다고 일컬어지는 예술”이라고 설명했을 정도다. ‘책벌레 ‘책 사냥꾼으로 알려진 애서가들은 책을 찾아다니는 과정의 즐거움을 만끽했지만, 이 취미는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상당히 괜찮은 투자이기도 했다.
초보자들은 1635년판 『카이사르』에 큰돈을 치르는 실수를 하기 쉬웠지만, 그 책은 쪽 매김에 실수가 ‘없는 판본이었으므로 투자 가치가 적었다. 책 수집은 낚시와 닮았다. 강변을 거닐듯 런던과 파리 거리를 소요하다, 위풍당당한 고서점에서 낚싯대를 던져야 한다. 하지만 ‘대박은 눈에 띄지 않는 연못 같은 서점에서 나온다. 엘제비어판이나 옛 프랑스 희곡, 셸리의 초판본, 왕정복고 시대의 희극을 낚을 기회가 온다. 수십배가 오를 희귀본들이다.
파리에서 책 사냥에 가장 좋은 일시는 8월의 이른 아침. 오전 7시 반에서 9시 반에 고서적 노점상들은 새 책을 써내 진열한다. 고서적상의 대리인들은 노점을 찾아 싹쓸이를 한다. 이들이 아마추어 책 사냥꾼을 허탕치게 만드는 주범이다.
애서가와 책 수집가의 사연에 이어 유물로서 가치가 높은 책,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책인 필사본을 수집하는 이들의 지혜도 만난다. 중세의 서체나 책장 차례의 순서, 낙장을 조사하는 방법 등이다. 삽화가 들어간 책을 다룬 4장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거장 알브레히트 뒤러나, 영국의 대표 화가 윌리엄 터너 등이 그린 책 삽화에 관한 사연도 만날 수 있다.

타인과 소통을 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였던 책에 관한 믿기 힘든 이야기도 많이 소개된다. 그 시절엔 헌책방에서 우연히 루소가 보관해둔 페리윙클 꽃잎을 보고 밤잠을 못 이루던 수집가가 있었다.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한 도시의 책을 회오리바람이 나뭇잎을 모두 휩쓸어간 듯” 사들인 학자도 있었다. 어떤 책 도둑은 본인이 놓친 책을 포기하지 못해 책 수집가들을 습격하고 그들의 집을 불태워 버리기도 했다.
이들이 꿈꾼 건 한 가지였다. 세상의 진귀한 책들을 한데 모아둔 자신만의 도서관이다. 이 유쾌한 모험담을 만나면서, 한 가지 사실도 알게 된다. 이 지독한 애서가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접하는 책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작은 생명이 지닌 숭고한 이야기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 지음 / 최정수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마거릿 렌클은 온라인 잡지 「Chapter16」의 편집장으로 2015년부터 「뉴욕타임스」에 칼럼 연재를 시작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얻기 시작했고, 이 책을 출간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네 쪽 미만의 글들이 모여 보석 같은 패치워크를 이루는 이 책은 아름답고도 무심한 야생 생물들을 바라보면서 삶에 관한 지혜를 기록한 책이다.
미국 남부 지방 대가족 출신인 저자는 수많은 친척과 함께 성장해 왔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만큼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다. 죽음은 아름답게 찾아오는 경우가 별로 없다. 노쇠함은 늙어 가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에게도 짐을 지운다. 멋진 추억을 함께했던 기억들은 늙고 병든 몸을 가진 오늘 앞에서 쉽게 휘발해 버린다. 렌클은 자신과 남편을 키워 주었던 어른들을 돌보게 될 때마다 그렇게 지쳐 버리는 마음을 다독여야 했고, 그런 그녀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것이 바로 정원에 찾아오는 온갖 생물이었다.
집굴뚝새, 어치, 박새, 청설모와 같은 작고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며 저자는 지금껏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기쁨이나 오늘을 무사히 보내야 한다는 절박함마저 지니지 않은, 오직 ‘지금만을 향해 모든 에너지를 모으는 작은 동물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렌클은 이 작은 깨달음의 순간들을 공들여 묘사한다. 이 책 속의 자연 이야기와 인생 이야기는 마치 서로를 비유하듯 마주 보고 있는데, 독자는 그 비유를 통해 인간이 이 자연 세계의 일부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먹고 먹히는 새들의 먹이사슬에 관한 이야기는 베트남전에 얽힌 저자 가족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자연이 때로 소박하지만 기적적인 순간들을 선보일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 역시 작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기억을 남긴다. 어린 시절 성당에서 할머니의 손등을 주물렀던 기억은 이 책에서 가장 덧없이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다.
[ 김슬기 기자] /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2호(24.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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