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참작 여지 하나도 없지만" 최윤종 '사형 선고' 쉽지 않은 이유 [법원 앞 카페]
입력 2023-12-16 09:00 
최윤종 (사진=연합뉴스)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이 사건 범행은 동기 및 경위에 참작할 정상이 없고 범행 수법은 매우 잔인하고 흉포하며 피해는 말할 수 없이 심각합니다"

"재판장님, 범행 동기와 경위, 범행 수단, 결과, 범행 후 정황, 전혀 반성 없는 피고인의 태도, 사회 복귀 시 재범 위험성, 무엇보다 피해자 가족이 입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참고해 사형을 선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11일 이른바 '신림 등산로 살인사건' 범인 최윤종의 마지막 공판날 검사가 사형을 구형하며 한 말입니다.

수많은 극악무도한 살인범들에게 사형보다는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지만 최 씨 만큼은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게 검사 측 입장입니다.

하지만, 선고를 할 재판부 입장에서는 최 씨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많은 흉악범들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될 때마다 '왜 사형을 선고하지 않느냐'는 물음의 답이 되기도 할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참작할 여지가 없는 최윤종의 태도


11일 마지막 공판 당시 검사의 구형 전 최 씨에 대한 피고인 신문이 진행됐습니다. 법정 방청석에는 여러 취재진을 비롯해 최 씨에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유족들도 앉아 있었습니다. 최 씨의 신문 과정은 재판부도, 검사와 변호인도, 법원 직원들도, 방청석에 앉은 이들도 모두 탄식할 정도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최 씨가 반성은커녕 근거가 약한 고집을 부리는 모습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앞서 수사 과정에서 최 씨는 지난 8월 17일 서울 신림동 공원에서 발견한 여성을 성폭행할 목적으로 미리 준비한 철제 너클로 폭행했고, 피해자가 저항하자 경사로로 끌고 내려가 왼팔로 목을 감싼 뒤 체중을 실어 졸랐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자신이 목을 조른 적이 없고 단지 왼팔로 목을 감싼 상태에서 손으로 입만 막았다고 진술을 바꿨습니다. 부검의와 전문 감정인이 모두 목을 졸랐다는 결론을 냈음에도 최 씨는 끝까지 부인했습니다.

검사 : 경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목을 팔로 감싸 안고 위에서 체중으로 눌러 졸랐다고 스스로 재연한 사진이 있습니다.

최윤종 : 목을 조르진 않았습니다.


검사 : 부검 결과 목부위 외력으로 질식사 할 수 있다고 하는데 피고인만 아니라고 하네요?

최윤종 : 틀린 것 같습니다. 에휴.

검사 : 부검감정서 자문을 받은 교수도 후두 부위에 광범위한 출혈점이 있는 걸 보면 목 앞쪽 부위가 강하게 압박받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교수도 틀렸다고 보나요?

최윤종 : 잘못 보신 거 같습니다.

목을 조르지 않았다고 주장을 바꾼 건 '살해 고의'가 없었다, 기절시키려 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목을 조른 근거가 있는데도 계속 부인하자 재판부도 따졌습니다.

재판부 : 왼쪽 팔로 목을 감고 힘을 주면 굉장한 목 압박이 갈 거 같은데 이것도 목조른다고 표현할 수 있지 않나요?

최윤종 : 저는 힘이 빠져서 힘을 강하게 주진 않은 거 같습니다. 당시에 힘이 없어서.

재판부 : 힘을 강하게 주진 않았는데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해도 저 자세가 유지됐다는 건가요?

최윤종 : 유지는 됐던 것 같습니다.


반성도 피해회복 의지도 없다

서울중앙지법 (사진=연합뉴스)

살해의 고의가 없었다고 부인한 데 이어 최 씨는 반성의 기색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검사 : 본인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는 없고 목 부위에 외력이 가해졌다는 부검의나 법의학 교수 의견은 있어서 증거는 있는데 피고인이 계속 객관적 증거가 없는 허위 주장을 하는 게 피해자 유족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해봤나요?

최윤종 : 후…안 좋게 보실 거 같긴 해요.

최 씨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변호인의 질문에서도 최 씨는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변호인 : 피고인 본인은 자신이 잘못했다, 유가족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이런 걸 알고 있죠. 앞으로 피해회복을 위해 본인이 해야 할 노력이 뭐라고 있을 것 같은 데 뭘 할 건가요?

최윤종 : 그건 나가봐야 알 것 같아요.

변호인 : 구치소 안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있죠?

최윤종 : 반성문 많이 쓰겠습니다.

변호인 : 지금까지 몇 번 썼죠?

최윤종 : ….

재판장 : 법원에 제출된 건 한 건이고 딱 한 장입니다.

이 장면을 직접 지켜본 피해자의 친오빠는 엄벌을 탄원했습니다.

피해자 오빠 : 작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올해 동생까지 이렇게 돼서 어머니께서는 지금 분리수거 같은 것도 못하고 집에만 계십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동생이 어머니와 매일 통화하고 했었는데 동생이 그리 된 게 어머니께서는 자꾸 본인 탓이라 하십니다.

피해자 오빠 : 목을 조른 게 아니라고 하는 데 제가 부검감정서 수백 번 읽어봤습니다. 그럼 동생이 자기 목을 조른 것도 아니고 목을 안 졸랐다니 그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갑니다. 저는 가해자 저 사람이 합당한 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동생은 이미 갔지만 앞으로 이런 피해자가 안 생기게 꼭 벌을 제대로 받아야 이런 일을 잠재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도 겁을 먹고 안 저지르지 않을까요. 벌을 엄중하게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피해자 오빠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재판장까지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형보다 무기징역 가능성 커"

최 씨의 이런 태도,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데다 범행 일부마저 부인하고 있는 모습을 고려하면 검사의 주장대로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해도 문제가 없어 보일 듯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사형보다 무기징역 선고 가능성이 조금 더 크다는 게 법조계 반응입니다.

대법원은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기준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서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사형의 선고는 범행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형벌의 목적에 비추어 누구라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

범인의 연령, 직업과 경력, 성행, 지능, 교육정도, 성장과정, 가족관계, 전과의 유무,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사전계획의 유무, 준비의 정도, 수단과 방법, 잔인하고 포악한 정도, 결과의 중대성, 피해자의 수와 피해감정, 범행 후의 심정과 태도, 반성과 가책의 유무, 피해회복의 정도, 재범의 우려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철저히 심리하여야 하고, 그러한 심리를 거쳐 사형의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사정이 있음이 밝혀진 경우에 한하여 비로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 대법원 판례

범인의 성장 환경부터 전과가 있는지, 범행 동기나 계획, 범행 방법의 잔인함, 이후 반성 여부 등 거의 모든 조건을 참작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본 최 씨의 모습으로는 사형 선고 조건에 거의 근접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의 흉악범 선고에는 한 가지 적용되는 기준이 있습니다. '기존 사형수와의 비교'입니다. 범죄의 잔혹성이나 중대성이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가 돼야만 비로소 사형선고를 할 수 있다는 게 추세입니다.

일례로 들 수 있는 게 '인천 미추홀구 강도연쇄살인 사건' 권재찬의 경우입니다. 권 씨는 2003년 전당포 살인사건으로 15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뒤 2021년 여러 절도 범행을 저지르다가 지인을 폭행하고 목졸라 살해했고, 피해자 시신 유기를 도운 지인을 또다시 둔기로 살해하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권재찬 (사진=연합뉴스)


이에 1심 법원은 권 씨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2심과 대법원은 무기징역으로 감형했습니다. "기존 사형수와 비교할 때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였습니다.

반성이 없다는 건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죄책이 없다고 주장하는 건데 피고인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 점, 잔혹성 면에서 이 사건은 수면제를 사용해 살해한 만큼 잔혹성 기준에는 해당하지 않는 점, 지난 20년 간 사형 판결 18건을 보면 불특정 다수를 살해하거나 기획 살인인 경우가 많고 강도상해 등 전과도 있어 죄질이 중한 경우가 많은 점, 살인까지 계획했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고 반성하는 점,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누구라도 사형에 처하는 게 정당한 것이라고 인정할 만큼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는지 사형이라는 형벌은 지나친 게 아닌가 생각된다.

- 인천 미추홀구 강도연쇄살인 권재찬 2심 선고


최윤종도 검색한 사형수는 어땠나

최 씨는 범행을 저지르면서 본인도 사형을 염두에 뒀는지 앞선 사형수를 검색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바로 지난 2014년 발생한 '22사단 총기난사 사건' 흔히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이라 불리는 임도빈 병장을 검색해본 겁니다.
현장검증 당시 임도빈 병장 (사진=연합뉴스)


5명이 살해당하고 9명이 중경상을 입은 임 병장 사건을 두고 대법원은 "최전방 군복무의 현실 등을 감안하더라도 무고한 동료 병사 등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이 사건과 같이 잔혹하게 다중 살상행위를 저지른 피고인에 대해 비난 가능성을 경감하는 건 정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2016년 사형을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비교해볼 만한 사건은 임 병장보다 1년 앞서 2015년 사형이 확정된 대구 중년부부 살인사건 범인 장재진이 있습니다. 전 여자친구의 부모를 흉기와 둔기로 잔인하게 살해하고 전 여자친구도 크게 다친 뒤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게 된 사건이었죠. 장 씨에게는 이미 집행유예형 전과도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반성하고 있다고 하지만 피해자들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살해당했고 남은 피해자의 피해회복 노력을 기울였다고 볼 자료가 없는 점을 고려하면 극형이 불가피하다"며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장 씨와 임 병장 이후 약 7년이 흐른 현재까지 추가로 사형이 확정된 건은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권재찬도, 지난해 서울 지하철 신당역에서 피해자를 스토킹하고 살해한 전주환도, 택시기사와 전 여자친구를 연이어 살해한 이기영도 무기징역에 그쳤죠.

이번 최윤종 사건 피해자 유족 측을 대리한 정혜성 변호사는 법정에서 "재판장님이 얼마나 범죄와 형벌의 균형 사이에서 고민하시는지, 중형 선고에 얼마나 신중에 신중을 기하시는지 안다"면서도 "이번 사건과 범죄로 일반 국민의 공포 호소와 같은 정의 실현으로 얻는 공익이 피의자 신체의 자유보다 작다고 볼 수 없다, 엄벌을 선고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습니다.

다만 정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기자와 만나 "목을 졸라 살해한 방식이 앞선 다른 사형수의 범죄와 비교할 때 잔혹성에서 미치지 못한다고 재판부가 판단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며 현실적으로 사형 선고가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안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

앞서 언급한 권재찬 사건 2심 재판부는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면서도 "사형은 지나치지만 무기징역보다는 무거운 형이 규정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사형을 선고하지 않더라도 가석방이 될 수 있는 무기징역을 선고하기엔 또 너무 가벼운 게 아닌가 고민을 선고에 담은 거죠.

이기영 사건 재판부도 비슷한 지적을 했습니다. 2심 선고 당시 재판부는 "무기징역의 경우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지만 잔혹한 사건임을 고려해 가석방 심사를 엄격히 하면 형벌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걸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가 없는 만큼 가석방 심사를 엄격히 하는 걸 대안으로 언급한 건데 사실상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필요성을 지적한 걸로 해석이 됩니다.

정 변호사는 "판결문에는 넣을 수 없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관련 지적들이 재판부 선고에서 나오는 만큼 이번 최윤종 사건 재판부도 이런 지적을 해주실 수는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말했습니다.

내년 1월 22일 최윤종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올 예정입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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