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6곳의 도시를, 도시별로 다섯 편의 작품씩, 총 80권의 동서양 명저를 통해 탐구하는 지적인 여행 초대장이다.
이 책은 최초의 ‘현대적 도시라고 호명할 수 있는 런던, 작가들이 발견한 낙원이었던 파리, 아우슈비츠의 상흔이 안개처럼 깔린 크라쿠프, 식민지 시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콩고와 나이지리아, 내전의 아픔이 여전히 유효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민자들의 메트로폴리스 뉴욕… 그리고 홀로 존재하는 외딴섬들과 그 너머까지 여행한다. 이 도시와 나라들을 버지니아 울프로 시작해 찰스 디킨스와 코난 도일, 마르셀 프루스트와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란츠 카프카와 파울 첼란, 제임스 조이스와 마거릿 애트우드를 거쳐 J.R.R 톨킨에 이르기까지 총 여든 명의 작가가 쓴 작품 속 시선을 따라 수차례 새롭게, 그리고 자유롭게 일주한다.
소위 방구석 기행을 통해 저자가 알려주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들은 어떻게 도시를 창조하고 도시는 어떻게 작가를 창조하는지 만난다. 유럽의 전쟁 유산과 그 밖의 제국의 우산들, 이주와 디아스포라 문제를 만나며, 호메로스의 서사시부터 일본의 하이쿠(일본의 정형시) 등 시의 전통에 살아 있는 유산들을 만난다.
오르한 파묵의 경우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묘사했던 오스만 제국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살고 있는 작가다. 이중적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파묵은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서 셰큐레의 아들 이름을 오르한으로 짓기도 한다. 유쾌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위해 오르한이 하지 못할 거짓말은 없다”고 슬쩍 독서법을 알려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9학년(중학교 3학년)이었던 1968년 봄, 영어 선생님이 준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였다. 18세기 영국의 살아있는 풍경과 허구의 세계로 초대하는 이 책에 매료되어 이 어린 독서가는 천국에서의 나날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세계문학의 경계를 확장하는 과감한 도전을 이 책에서 선보인 것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독자들도 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자국의 경계를 넘어 과감히 모험을 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는 부정적이든 짐짓 긍정적이든 문화적 고정 관념에 굴복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고 작품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시장 메커니즘에 대항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과정에 개입하려 한다.”
월세 30만 원을 아끼려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은 1991년생 청년이 있다. 천안의 리첸스 빌라 1004호에 입주한 그는 전세 사기로 어느 날 집에 날아온 경매 통지서를 통해 전세 보증금을 날린 사실을 통보받았다.
전 재산을 잃은 뒤 시청, 법원, 경찰서, HUG, 주거복지재단을 쫓아다니며 써 내려간 820일의 기록을 담았다. 사기 범죄는 바보들이나 당하는 줄 알았던, 그래서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던 저자가 자신의 인생에 벌어진 일을 처절하리만치 솔직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 현 시대에 대한 고발문이자 투쟁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 책은 2020~2021년 당시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인천 미추홀구와 더불어 전국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로 손꼽혔던 천안 지역 피해자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르포르타주의 성격도 지닌다. 시급 1만2,000원으로 전세 사기를 당한 뒤 날린 보증금 5,800만 원을 벌려면 총 4,833시간을 아르바이트해야 한다. 저자는 신세를 한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 집회 참석, 언론 인터뷰, SNS 기록 등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 책 또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글 김슬기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04호(23.11.14) 기사입니다]
격리된 방안에서 떠난 세계 문학 여행
모든 책을 완독한 그와의 대화는 내겐 항상 큰 즐거움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터키의 거장 오르한 파묵이 이렇게 찬사를 보내는 남자가 있다. 데이비드 댐로쉬 하버드대 비교문학 교수는 격리의 나날들을 책에 파묻혀 보냈다. 코로나19로 방 안에서 틀어박혀 오로지 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을 상상한다. 쥘 베른의 『80일의 세계 일주』 속 영웅 필리어스 포그의 여행에 영감을 받은 저자는 소외된 시공간 속에서 수십 혹은 수백 권의 시와 소설 작품들과 함께 머릿속의 탐험을 시작했다.이 책은 최초의 ‘현대적 도시라고 호명할 수 있는 런던, 작가들이 발견한 낙원이었던 파리, 아우슈비츠의 상흔이 안개처럼 깔린 크라쿠프, 식민지 시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콩고와 나이지리아, 내전의 아픔이 여전히 유효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민자들의 메트로폴리스 뉴욕… 그리고 홀로 존재하는 외딴섬들과 그 너머까지 여행한다. 이 도시와 나라들을 버지니아 울프로 시작해 찰스 디킨스와 코난 도일, 마르셀 프루스트와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란츠 카프카와 파울 첼란, 제임스 조이스와 마거릿 애트우드를 거쳐 J.R.R 톨킨에 이르기까지 총 여든 명의 작가가 쓴 작품 속 시선을 따라 수차례 새롭게, 그리고 자유롭게 일주한다.
소위 방구석 기행을 통해 저자가 알려주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들은 어떻게 도시를 창조하고 도시는 어떻게 작가를 창조하는지 만난다. 유럽의 전쟁 유산과 그 밖의 제국의 우산들, 이주와 디아스포라 문제를 만나며, 호메로스의 서사시부터 일본의 하이쿠(일본의 정형시) 등 시의 전통에 살아 있는 유산들을 만난다.
오르한 파묵의 경우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묘사했던 오스만 제국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살고 있는 작가다. 이중적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파묵은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서 셰큐레의 아들 이름을 오르한으로 짓기도 한다. 유쾌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위해 오르한이 하지 못할 거짓말은 없다”고 슬쩍 독서법을 알려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9학년(중학교 3학년)이었던 1968년 봄, 영어 선생님이 준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였다. 18세기 영국의 살아있는 풍경과 허구의 세계로 초대하는 이 책에 매료되어 이 어린 독서가는 천국에서의 나날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세계문학의 경계를 확장하는 과감한 도전을 이 책에서 선보인 것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독자들도 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자국의 경계를 넘어 과감히 모험을 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는 부정적이든 짐짓 긍정적이든 문화적 고정 관념에 굴복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고 작품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시장 메커니즘에 대항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과정에 개입하려 한다.”
전세로 들어간 1004호에서 일어난 일
최지수 지음 / 세종서적 펴냄
입사도, 퇴사도, 기숙사를 선택한 것도, 전셋집을 얻은 것도 모두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었다. 알아볼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알아보고 신중하게 판단했지만 전셋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내 멘탈은 망가졌다. 그럼,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건 모두 내 잘못인가.”월세 30만 원을 아끼려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은 1991년생 청년이 있다. 천안의 리첸스 빌라 1004호에 입주한 그는 전세 사기로 어느 날 집에 날아온 경매 통지서를 통해 전세 보증금을 날린 사실을 통보받았다.
전 재산을 잃은 뒤 시청, 법원, 경찰서, HUG, 주거복지재단을 쫓아다니며 써 내려간 820일의 기록을 담았다. 사기 범죄는 바보들이나 당하는 줄 알았던, 그래서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던 저자가 자신의 인생에 벌어진 일을 처절하리만치 솔직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 현 시대에 대한 고발문이자 투쟁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 책은 2020~2021년 당시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인천 미추홀구와 더불어 전국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로 손꼽혔던 천안 지역 피해자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르포르타주의 성격도 지닌다. 시급 1만2,000원으로 전세 사기를 당한 뒤 날린 보증금 5,800만 원을 벌려면 총 4,833시간을 아르바이트해야 한다. 저자는 신세를 한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 집회 참석, 언론 인터뷰, SNS 기록 등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 책 또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글 김슬기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04호(23.11.14) 기사입니다]